중증 외상환자 치료지침은 환자가 사고를 당한지 한 시간 이내에 치료해야 한다. 이는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이국종 교수도 ‘골든타임이란 말은 틀렸고 골든아워(Golden Hour)가 맞다’라며 강조하는 부분이다.
영국 런던, 98.5%가 1시간 이내 중증외상센터로 이송
13일 영국 NHS(국가보건서비스, National Health Service)의 외상환자 이송 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런던에서 발생한 중증외상 환자 6068명 중 98.5%가 1시간 이내에 런던 내 4곳의 중증외상센터로 이송됐다.
영국은 응급전화 999번의 신고에 따라 구급차가 5분 이내에 현장에 출동했다. 지난해 사고 현장에서 응급구조사는 33분49초(중앙값, median)동안 적절한 응급처치를 했다. 사고 신고부터 계산하면 38분13초였다. 영국은 법적으로 응급구조사의 응급처치를 허용하고 있다.
외상환자 중 둔상 환자(4326명) 응급처치에 38분55초가 걸렸고 창상 환자(1539명)는 17분06초가 걸렸다. 환자들은 응급처치를 마친 다음 20분 안에 병원에 이송됐다. 이들이 모든 외상센터에 도착한 시간은 17분 14초(중앙값)였다. 병원별로 보면 킹스칼리지 14분05초, 성조지병원 15분46초, 로열런던병원 17분50초, 성마리병원 18분43초 등이다.
이들 병원은 환자가 도착하기 전에 환자 상태에 맞게 치료 준비를 마친다. 환자가 도착하자마자 컴퓨터 단층촬영(CT)을 찍는 동시에 수술에 들어간다. 환자들이 응급처치부터 병원 이송, 치료 시작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이 넘지 않았다. NHS는 “대부분의 환자는 이송부터 치료까지 무조건 1시간을 넘지 않았다“라며 ”오로지 6명만 1시간을 넘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전체 환자 중에서 성마리병원으로 간 비율은 32.5%(1639건)였고 로열런던병원 32.1%(1615건), 킹스칼리지 18.8%(949건), 성조지병원 16.6%(835건) 등이었다. 영국은 27개의 중증외상센터를 두고 있으며 런던에는 이들 4개 병원이 있다.
한편 영국에서 추락, 교통사고 등 외상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시간은 오후 4시~7시 59분(22%)과 오후 8시~11시 59분(22%)이었다. 요일별로는 토요일이 16.2%로 가장 높았다. 사고 장소로는 길에서 발생한 외상사고가 3150건, 집 1955건, 직장 211건, 대중교통 147건 등이었다.
서울, 구급차 이송은 빠르지만 응급실 ‘전전긍긍’
최종 치료 제공 시간이란 환자 발생을 신고한 이후 응급실까지 이동시간과 병원 전원 시 이동시간, 응급실에 머문 시간을 더한 값이다. 다시 말해 환자가 발생한 다음 실제로 최종 치료를 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에서 중증 외상환자의 응급실 이송시간은 37분11초였다. 하지만 환자가 응급실에 머문 시간은 3시간 23분(중앙값)이었다. 이미 응급실에 입원한 환자가 많아서였다. 이는 전국 수치(2시간 34분)보다 49분 길었다.
우리나라는 소방대원이 현장에서 응급처치를 하지 않고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한다. 교통이 좋은 서울에선 구급차 이송 자체는 빠르지만 환자를 분류하는 체계가 없어 일단 가까운 병원의 응급실로 이송했다. 이때 해당 병원에 외과의사가 없는 등의 문제로 중증 외상환자를 치료할 수 없으면 환자를 이른바 ‘빅5병원’으로 다시 이송하는 문제가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환자가 빅5병원으로 한 번 더 옮기면 치료가 더 지연됐다. 환자가 빅5병원으로 전원할 때 최종 치료 제공 시간을 보면 서울대병원은 무려 14시간 45분(환자 311명)이었고 삼성서울병원 12시간 28분(365명), 서울아산병원 12시간 20분(386명), 세브란스병원 9시간 36분(708명)이었다.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상황실에 접수된 전국 응급실 전원건수는 지난해 1365건이었고 올해 7월까지도 1328건에 달했다.
병원 도착 전 외상환자 분류, 병원은 환자 맞을 준비해야
영국은 999번으로 전화를 하면 응급의료, 화재, 소방 등으로 역할을 나눈다. 응급의료에 대해서는 응급장비가 있는 구급차와 함께 법적으로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응급구조사가 출동한다.
영국 NICE(국립보건임상연구소) 가이드라인에서는 병원 이송 단계에서 중증 외상센터로 가는 환자를 정확히 분류한다. 가이드라인은 “중증 외상 환자로 분류되면 일반적으로 중증외상센터로 가는 것이 적당하다”라며 “이를 위해 응급구조사 등은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각 중증외상센터들과 긴밀하게 연락해야 한다”고 밝혔다.
가이드라인은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사전 정보를 받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한다. 이때 병원에서 미리 수집해야 하는 정보는 환자의 연령과 성별, 사고 시각, 손상 기전, 의심되는 손상, 바이탈사인(활력 징후), 치료 이력, 응급실 도착 추정 시간, 특이 사항, 구급대 신고자 신고시간 등이다.
가이드라인은 “병원에 도착하는 것만으로 손상 범위를 판단하기 어렵다”라며 “잠재적으로 숨겨진 위험을 막기 위해 중증외상센터에 CT 등의 검사를 받도록 한다”고 했다.
영국은 2021년까지 외상환자 치료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선 환자 이송 시간을 최소화하고 외상 치료지침(Pathway)을 점검한다. 환자 치료 과정을 상세한 기록으로 남기고 의사동료 평가(Peer Review)를 강화한다. 중증 외상 네트워크 ‘TARN’에 모든 환자 정보를 공유한다.
서울 외상센터 설립보단 기존 병원 역할 필요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우리나라의 질병 이외의 사고사(운수사고, 추락사고, 자살 등) 비율은 인구 10만명당 57.8명으로 영국(2013년) 24.5명, 독일 23.4명, 일본 30.0명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에 비해 2배 높았다. 응급실에서 사망하는 중증 외상환자 수는 2011년 951명에서 2016년 1407명으로 늘고 있다.
오제세 의원은 “중증 외상환자는 신고부터 최초 응급실로 이송까지가 중요하다”며 “허술한 이송과 전원 때문에 치료 시기를 놓쳐 사망하는 환자가 없도록 국립중앙의료원 재난응급의료상황실과 119구급상황관리센터 간 협조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에서도 중증외상센터를 만들고 여기로 이송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시간과 비용의 문제가 따른다. 국립중앙의료원이 2022년 서울 서초구 원지동에 250병상 규모의 외상센터를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설립 계획이 불투명하다. 또 원지동은 서울 도심에서 떨어져 서울 지역의 모든 환자를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추가로 외상센터를 만드는 것보다 빅5병원 등이 중증외상센터에 참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11일 국회 복지위 김상희 의원(더불어민주당) 주최로 열린 '권역외상센터 긴급 토론회'에서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에 외상센터 유무를 넣겠다는 방침을 발표하기도 했다.
수도권의 한 권역외상센터 전담 전문의는 “서울에 새롭게 외상센터를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며 “서울은 교통이 혼잡하고 기존 병원이 많아 외상센터에 나서는 병원에 권역외상센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쪽으로 이송체계를 만들면 될 것” 이라고 했다.
빅5병원의 한 보직자는 “권역외상센터 지원금 100억원 가량에 비해 추가로 시설이나 인력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라며 “게다가 외상은 수가가 낮아 적극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보직자는 “병원은 민간에서 투자했는데 정부가 외상센터같은 공공 영역을 강요할 수는 없다”라며 “정부가 정말 외상환자 치료에 의지가 있다면 외상센터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수가를 인상하고 진료비 삭감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