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의정갈등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명 '해외 의과대학 졸업생 모셔오기' 작업에 착수하고 있다.
한국의 젊은의사들에게 다양한 기회가 제공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전공의 사직 등 젊은의사들이 병원 현장을 대거 이탈한 상황에서 유능한 국내 의료 인재들이 해외로 대거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대부분 전공의들이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서도 복귀하지 않으면서 향후 이들의 미국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USMLE 면제하고 의사 임시면허 발급하는 미국 주 급증
30일 미국 현지 의료전문 매체인 하스피탈 리뷰(Hospital Review)와 메드페이지 투데이(Medpage Today)에 메디게이트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까지 총 15개 주에서 해외 의대 졸업생이 미국에서 미국의사면허시험(USMLE)을 면제해 의사 자격을 획득할 수 있도록 입법을 추진 중이거나 입법 개정을 마쳤다.
대표적으로 테네시주는 7월 1일 법 개정을 통해 면허시험과 전공의 과정을 이수하는 대신 공인된 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의료시설에서 2년간 임시면허로 일을 한 뒤 정식 면허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일리노이주도 테네시주와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2025년 1월부터 시행된다. 대부분의 내용이 비슷하지만 일리노이주는 의료취약지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규정이 포함돼 있다.
또한 앨라배마와 콜로라도주 등은 해외 의대 졸업생의 미국 전공의 과정을 기존 3년에서 2년으로 줄여주는 법안을 만들었다.
이 같은 미국 내 법 개정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이유는 미국에서도 의사 부족 문제가 심각한 화두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과대학협회(AAMC)가 2024년 3월에 발표한 '의사 공급, 수요'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2034년까지 최대 12만4000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의사 부족 문제가 대두되면서 미국 내 해외의대 출신 의사 비율은 2004년에 비해 2021년 30% 가까이 늘어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다.
미국 고용통계국(bureau of labor statistics)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 내 외국인 의사 비중은 27%에 달한다. 미국 내 의사 인종 비중은 백인(60.5%) 다음으로 아시아계(22.2%)가 많다.
한국 젊은의사들이 미국에 진출할 동기도 충분하다. 한국에 비해 미국 의사들의 근로시간이 훨씬 짧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워라벨(Work and Balance)를 중시하는 젊은의사들 사이에선 미국 의료시스템이 인기가 많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한국 의사의 주당 평균 근로 시간은 61.5시간에 달하는 반면, 미국은 47.9시간에 그쳤다(한국고용정보원, 미국 고용통계국).
근무시간은 한국에 비해 적지만 평균 임금은 미국이 월등하다.
미국 의료 전문가 온라인 네트워킹 서비스 '닥시미티(Doximity)'가 공개한 '2023년 미국의사 급여 보고서(2023 Physician Compensation Report)'에 따르면 전문 분야별 평균 급여가 높은 의사는 78만8313달러(한화 10억4096만원)을 받는 신경외과 의사였고, 2위와 3위는 70만6775달러(한화 약 9억3329만원)을 받는 흉부외과 의사, 62만4043달러(한화 약 8억2404만원)을 받는 정형외과 의사가 차지했다.
4위는 57만1373달러(한화 약 7억5449만원)을 받는 성형외과의사, 5위는 55만7632불(한화 약 7억 3635만원)을 받는 혈관외과의사 였다.
이를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서 밝히고 있는 연평균 의원급 임금과 비교해 보면 대략 2~3배 정도 차이가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10억을 넘게 받는 미국 신경외과 의사와 달리 한국 신경외과 의사 연봉은 3억 7000만원 수준이고, 흉부외과(9억3000만 vs 4억8000만원)도 사정이 비슷하다. 가정의학과는 미국의사가 3억5000만원 가량이고 한국의사는 1억5000만원 수준으로 급여는 2.5배 가량이다.
이 같은 여러 이유 등을 고려해 사직 전공의인 대한의사협회 오건룡 자문위원은 지난 26일 토론회에서 미국을 캐나다, 일본, 싱가포르와 함께 젊은의사들이 진출하기 좋은 국가로 꼽기도 했다.
USMLE·Alternate pathway 등 준비 하는 젊은의사 늘어…해외진출 회의적 시각도 존재
실제로 미국의사를 꿈꾸는 한국의 젊은의사들도 늘고 있다. 한 사직 전공의는 "주변에 USMLE를 신청하는 전공의들이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현재 미국 텍사스 UT 사우스웨스턴 메디컬 센터(UT Southwestern medical center)에서 근무하는 황지민 내과 전공의는 "요즘 확실히 관심이 뜨겁다. 개인적으로도 사직 전공의라는 신분을 밝히며 USMLE를 준비 중이며 미국 병원과 매칭 생각 중에 있다고 문의가 많이 온다"며 "이번 의정갈등 상황으로 인해 관심이 많아졌다는 한국의 젊은의사들이 많아졌음이 실감된다"고 말했다.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의사모임(공의모) 박지용 대표는 "예전엔 막연히 미국에 가야겠다고 말만 하는 이들이 많았다면 최근엔 실제로 미국으로 떠나면 득실이 어떻게 되는지 진지하게 분석하는 분위기"라며 "이젠 한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미국의사가 선택할 수 있는 큰 옵션이 된 듯하다"고 말했다.
한 영상의학과 교수는 "Alternate pathway라고 해서 영상의학과 등 일부 과는 원래 미국 내 별도 트레이닝을 받지 않아도 임시 면허를 주는 제도가 있다. 해당 제도를 활용해 미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젊은의사들의 해외 진출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유능한 국내 의사들이 정부의 의대증원 등 정책 강행으로 인해 도망치듯 해외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취지다.
사직 전공의인 임진수 의협 기획이사는 "지금 있는 의사들은 악마화하며 기껏 대안으로 들고 나온 것이 졸속으로 10년 뒤에 의사를 대량 양산해서 길러내겠다는 것이니 사실상 정부가 젊은의사들의 탈조선을 부추기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비판했다.
임 이사는 "정부가 의사들이 지적하는 문제를 전문가인 당사자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미봉책으로 해결하려 한다. 이는 사실상 한국을 의사 수출 국가로 전락하게 만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임시 의사면허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황지민 전공의는 "미국의사에 대한 뜨거운 열기와 별개로 실제 미국으로 건너오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미국 현지에선 면허시험과 전공의 과정을 면제하는 법안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며 "임시면허가 주어진다고 해도 결국 타주로 이사를 가거나 직장을 구할 때 어떤식으로든 외국의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여지가 있다는 여론이 많다. 이런 부분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로스엔젤레스 제네럴 메디컬 센터(Los Angeles General Medical Center/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근무 중인 박주얼 소청과 전공의도 "현실적으로 외국의사가 진출할 수 있는 전문과가 한정돼 있다. 대부분 내과로 진출하고, 수술과에 합격하기는 지원자가 특출나지 않으면 어렵다"며 "신분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데 미국 영주권이 없다면 비자를 받아 수련을 받아야 하고, 영주권을 받으려면 전문의가 된 이후 의료취약지역에서 3년을 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미국 의사는 "현재 미국에서 진행되는 IMG(해외의대졸업생) 끌어오기 전략이 과대 광고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IMG는 미국 의료계에서 매우 취약한 위치에 있다. 정규 레지던트 수련과 보드 취득 정도는 해야 이 시스템 안에서 외부인으로서 무시 당하지 않고 자리잡을 수 있다"며 "결국 다른 루트를 통해 일하게 되는 의사는 적은 급여를 받거나 의료취약지에 묶여 있어야 할 가능성이 크다. 홈 그라운드가 아니라면 적어도 현지에서 다 하고 있는 정도 수준은 맞춰야 한다. 그 것이 바로 미국 레지던트 수련"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