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권미란 기자]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시행된 1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남은 4년간 정책 지속가능성 여부를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정부와 환자단체는 보장성 강화를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의료계는 건보 보장성 강화정책의 주요 문제점을 재차 지적하며 대립했다.
한국보건행정학회는 8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미래 보건의료제도 발전방안 모색’을 주제로 2018 전기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문재인 케어의 지속 가능성’을 주제로 한 세션1과 ‘문재인 정부 1년 보건의료 정책평가’에 대한 세션2가 두 곳의 발표장에서 동 시간에 진행됐다. 세션1에서는 정부와 환자 단체가 건보 보장성 강화 확대를, 세션2에서는 의료계가 건보 보장성 강화 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문재인 케어)은 모든 의학적 비급여를 건강보험에 편입해 국민 부담이 큰 선택진료 폐지, 상급병실에 건강보험 적용,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확대 등 3대 비급여를 해소하고 새로운 비급여의 발생을 차단, 관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 정부는 정책 안착을 위해 오는 2022년까지 총 30조6000억원의 재정을 투입해 3800개의 비급여 항목을 급여화 하겠다고 발표했다.
혼합진료 금지‧참조가격제 도입 등 건보 보장성 강화 확대 주장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정우 부연구위원은 급여와 비급여 진료를 같이 하는 혼합진료를 금지하고 비급여 항목에 대한 참조가격제를 도입하는 등 건보 보장성 강화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정우 부연구위원은 "매년 1%p씩 보장률을 높였을 때 2022년에 건강보험 보장률은 약 68% 수준에 달하고 추가 소요액은 28조1000억원이다"라며 "당초 문재인 케어는 공약을 통해 2022년에 70% 보장률 달성을 위해 필요한 추가 소요액을 30조6000억원으로 추산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문 케어의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재정 투입 계획으로 추산한 30조6000억원에서 무리 없는 추계라는 것이다. 이는 연세대 보건과학대 보건행정학과 정형선 교수가 7개월 전 내놓은 ‘문재인 케어의 재정적 지속가능성 평가 결과’에서 발표된 내용으로, 신 부연구위원은 여전히 유효한 수치라고 했다.
다만 "이 수치는 정태적 분석에 의한 결과이므로 향후 공급자와 환자의 반응에 따른 동태적 변화를 관찰하고 목표치를 수정,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공급자들을 달래기 위한 상대가치점수 부여, 인상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역외상센터 수가 인상 ▲수면다원검사와 양압기 급여화 ▲의원급 의료기관 수술 야간‧공휴일 30% 가산 ▲신생아중환자실 간호관리료 차등제 등급신설 등 선심성 급여화와 가격 인상이 건보 재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내년도 환산지수도 예년보다 평균 2.37% 인상됐고 건정심에서의 의원과 치과의 인상률 조정 수준에 따라 그 이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신 부 연구위원은 “의사협회의 요구에 밀려 적극적으로 기존 비급여를 축소, 금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가 불필요한 서비스까지 급여화하지 않더라도 남은 비급여까지 그대로 인정돼서는 안된다. 혼합진료 불인정의 원칙을 부분적으로라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신규 급여항목의 가격 설정이 시장 가격을 지지해주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초음파 가격의 경우 급여화 이후 일반 9만6000원, 정밀 14만2000원으로 정해졌다. 급여화 하지 않았을 경우 향후 시장에서 절반 이하로 가격이 떨어졌을 것이다. 참조가격제 등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와 함께 서울대 보건대학원 권순만 교수도 비급여를 양상 하는 공급자 유인 구조를 바꾸고 급여화를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보장성 강화 정책에 긍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권순만 교수는 “건강보험의 보장 항목이 서서히 늘어나는 동안 새로운 의료서비스와 기술이 시장에 진입해 비보장항목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며 “비급여의 안전성, 효과성, 질 등에 대한 검증과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정작 보장성 강화 정책의 효과는 미미했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재정적인 측면에서 현 비급여 양산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재정적 지속가능성은 필연적으로 낮을 수밖에 없다”며 “획기적인 급여확대를 위해서는 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 다만 진료비 지불제도 등의 개편을 통해 보혐료 인상 수준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보장성 정책의 가치판단과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이 근거를 제시하되 가치판단은 일반 대중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며 “단순한 조사에 그치지 않고 토론을 통해 깊이 숙고해야 한다”고 했다.
권 교수는 “진료비 지불의 포괄화를 수반하지 않은 급여확대는 장기적으로 재정적 지속가능성이 낮다”며 “또 고령화시대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항목별 급여확대는 오히려 분절화를 야기할 수 있어 묶음 또는 통합서비스 제공이 보장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기술 발전에 따라 지속적으로 비급여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의료기술 발전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비용효과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부담-저보장-저수가’ 적정수준으로 전환해야”
이와 반대로 대한의사협회 성종호 정책이사는 "비급여의 급여화에 앞서 저부담-저보장-저수가 체계를 적정수준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성 정책이사는 “한국 급성기 의료 질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은 비급여가 기여한 부분도 있다”며 “보장성 확대를 위해서는 안전성, 유효성, 경제성 등에 대한 명확한 원칙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는 모든 비급여를 ‘예비급여’라는 명목하에 제도권으로 편입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예비급여화하면서 저수가 기조유지, 횟수 등 제한을 두는 것은 의사의 진료권과 환자의 수진권을 침해한다”고 비판했다. 기존 선별급여제도와 다르지 않으나 선별급여의 문제점은 개선하지 못하면서 환자의 본인부담률만 높인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이 안정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재정의 충분성과 지속가능성이 보장돼야 한다”며 “정부는 보장성 강화 소요재정을 30조6000억원으로 밝혔지만 세부 지출 내역은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현행 저수가로 인해 원가보전율이 낮은 것도 문제다. 비급여의 급여화에 앞서 수가현실화부터 이뤄져야 한다”며 “급여화 시에는 의료서비스 질 저하를 방지하기 위해 합리적인 급여기준이 설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저부담-저보장-저수가’ 체계가 국민과 의료계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이를 적정수준으로 전환하는 등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이용균 겸임교수도 병원경영 악화를 우려하며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의 문제점을 되짚었다. 이 겸임교수는 “의료전달체계 개선 없이는 비급여의 급여화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게 의료계와 정부의 공통의견이다”라며 “보장성 강화 정책은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유발해 수가개선, 의료전달체계 등 1차 의료기관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소병원 역시 보장성 강화 대책에서 소외될 경우 1차뿐만 아니라 2차 의료기관도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전반적인 환자 비용부담이 줄어들 경우 대형병원이나 수도권으로 진료가 몰려 공공의료기관이나 경쟁력이 취약한 병원들은 환자수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겸임교수는 의료기관에서 안전강화, 통합간병간호서비스 등 차등보상제 도입에 의한 인력충원과 시설투자비가 증가하면서 경영악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우려했다.
이에 “의학적 근거가 높은 순서대로 급여화를 적용하고, 예비급여라는 명목으로 정부가 가격과 빈도를 통제할 경우 원가보상과 예비급여에 대한 적정수가가 주어져야 한다”며 “비급여의 급여화는 의료기관의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 현상을 전제로 정책추진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