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얼마나 전화를 많이 받았는지 아세요? 정세균 국무총리도 저한테 전화하더라고요. 아니, 국회라는 것은 합의를 해야 되는 거고 지난번에 토의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문제가 많다고? 그런데 원내수석끼리 합의한 사항을 갖다가 그것을 무시하고 상임위에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김승희 의원, 2020년 2월 19일 보건복지위원회 회의록 중)
[메디게이트뉴스 서민지 기자] 20대 국회 때 정세균 국무총리가 공공의대 설립 관련 법안 처리를 강행하기 위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야당의원들에게 전화로 압박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2일 메디게이트뉴스가 올해 2월 19일 열린 제20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록을 확인한 결과, 여당의원과 총리가 반대하는 야당의원들을 강하게 설득해온 것은 물론 당시 법안 논의도 절차적 과정을 무시한 채 다수의 여당 의원들이 논의·표결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법안소위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초기 확산에 따라 감염병 관련 법안들을 긴급히 처리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이나,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오제세, 윤일규, 인재근 의원 등의 같은 당 법안소위 위원의 서면동의를 받아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5건의 법률안을 추가 상정해 심의·처리하는 안건이 상정돼 논란이 일었다.
5건의 법안은 국립보건의료대학 및 국립보건의료대학병원의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안(이정현 의원 대표발의), 국공립공공의료전담 의과대학 및 국공립공공의료전담 의과대학병원의 설치·운영 등에 관한 법률안(박홍근 의원 대표발의),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기동민 의원 대표발의),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용호 의원 대표발의) 및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김태년 의원 대표발의) 등이다.
당시 복지위 법안소위 위원장이었던 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의사일정 변경 동의에 대해서는 국회법 제77조 단서조항 및 동법 제71조, 제57조제8항에 따라서 토론 없이 표결하도록 돼 있다"고 주장하며 표결, 토론 여부 등의 의사를 물었다.
이에 대해 당시 야당 위원인 미래통합당 김승희 의원은 "법안소위 자체도 원내수석부대표들의 합의에 의해 열렸는데, 이미 수차례 토론을 해서 처리되지 못한 공공의대 관련 법안을 간사 간 협의도 없이 다시 상정시키는 것도 예외적"이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김 의원은 "현재 코로나19(우한폐렴) 사태로 환자가 15명 나온 긴급한 상황이다. 그런데 여러 쟁점이 많고 충분한 논의가 필요한 사안을 이렇게 급박하게 밀어 넣어서 추진하려는 것은 반대"라고 공공의대법안 상정에 강하게 반대했다.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는 시점인만큼 국민의 생명과 안전과 관련된 법안을 예외적으로 상정·토론하는 것은 허용할 수 있지만, 대학교 신설이라는 10년에 달하는 장기적 관점이 필요한 사안을 갑작스럽게 처리하려는 여당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미다.
당시 통합당 소속 법안소위 위원 김순례 의원 역시 "지금 국민들이 코로나19를 굉장히 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 살신성인으로 현장에 맞서고 있는 복지부차관까지 모인 자리에서 간사 간 합의도 없는 공공의대법안 처리 강행을 요구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면서 "국민들도 이 부분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야당 측의 이의제기에도 의사 출신인 민주당 윤일규 의원, 공공의대 설립 지역(전북 남원) 의원인 김광수 의원 등은 "감염 역시 공공의료 분야인만큼, 공공의대가 필요하다"며 "이미 충분히 논의된 법안들이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토론을 해서 조속히 처리하자"고 했으며, 기동민 법안소위 위원장도 해당 법안 처리를 위한 절차를 이어가겠다는 의견을 표출했다.
김승희 의원은 또다시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 공약을 이루기 위해 우한 사태와 밀접한 관계가 없는 사안을 왜 올렸느냐"면서 "의대 설립은 누가 가르치냐부터 시작해 매우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급한 시기(코로나19)에 논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거듭 반대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동민 소위원장이 해당 안건을 표결에 부쳤고, 결국 수적으로 우세한 여당 의원과 전북을 지역으로 둔 김광수 의원까지 잇따라 찬성하면서 공공의대 설립 관련 5건의 법률안을 의사일정으로 상정하는 의제가 가결됐다.
통합당 김순례, 김승희 의원 등은 "말도 안 되는 표결이다. 양심들이 없다"고 정회를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김승희 의원은 "정세균 국무총리를 비롯해 상당히 많은 전화를 받고 있다"며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을 밝혔다.
이날 법안소위를 비롯해 공공의대 관련 법안들을 논의할 때마다 김승희 의원이 반대입장을 피력하면서, 전북 지역 주민들과 정부여당으로부터 항의와 민원에 시달려온 것이다.
김승희 의원이 계속 반발을 이어가자 기동민 의원은 "김승희 의원 혼자 회의를 하느냐", 김상희 의원은 "왜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팔팔 뛰고 난리야"라며 격앙된 목소리를 냈고, 찬·반 의견이 몇 번 더 오간 뒤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소위가 산회됐다.
한편, 이처럼 강한 반발 속에서 20대 국회에서 폐기된 공공의대 설립법안은 21대 국회에서 민주당 김성주 의원 등에 의해 다시 발의됐다. 21대 국회는 민주당이 180석을 얻은 만큼 사실상 공공의대 관련 법안들이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 상황이다.
더욱이 정세균 총리가 공공의대 설립에 반대한 20대 야당 국회의원들에 압박 전화를 했던 것처럼 여당 의원들은 물론 정부까지 나서 공공의대 설립법안 통과에 힘을 실을 전망이다.
공공의대 설립을 비롯해 의대정원 증원, 첩약급여화, 비대면 진료 등의 의료정책 추진폐기를 촉구하며 전공의들이 파업에 들어갔지만 정부는 정책 철회가 어렵다는 완강한 입장을 내놓으면서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