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는 페이스북에서 의사 입장에서 진솔한 심정을 전하고 있는 외과 전문의 'Antonio Yun(엄윤 원장)의 진료실 이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진료실 현장에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에피소드와 그 속에 담긴 의사의 고심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진료실 이야기는 각 에피소드별로 몇 회에 나눠서 연재됩니다. 독자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기대 바랍니다.
외과의사의 기도 #3.
출혈이 계속되고 있을때는 아무리 혈액이나 수액을 때려 부어도 혈압이 잘 잡히지 않지만 일단 출혈 부위가 결찰이 되면 혈압은 급격하게 안정화된다.
이후부터는 말이 부드러워진다.
" 자 이제 천천히 합시다. 고생했어요. 자 saline 더 주시겠어요? "
스물 일곱 병의 생리식염수(27L, 2만7000cc)를 다 쓰고 수술침대 주위는 온통 물과 피 천지이고 수술가운과 그 속에 입고 있는 수술복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진다.
" 에이... 다음부턴 에이프론을 입고 해야지, 빤쓰까지 다 젖었네...
야... 너 남는 빤쓰 있냐? "
" 안 맞으실 겁니다. 과장님."
" 쳇... 새끼... 지꺼 빤쓰 주기 싫으니까..."
다음부터의 수술과정이야 별로 쓸 말도 없다.
JP drain(배액관) 하나를 Rectovesical pouch(직장과 방광 사이 : 서 있을때 복강내에서 가장 낮은부위)에 하나 넣고 복벽을 닫고 수술을 마쳤다.
" 마취과장님. 환자는 괜찮은가요? "
의례적인 질문에 그저 미소로만 답을 받는다.
수술실에서 나오니 보호자들이 와 있다.
" OOO 환자의 보호자분이신가요? "
" 예, 선생님. 수술은 어떻게 됐어요? 잘 끝났나요? 살 수 있어요? 애 아빠는 왜 안나와요? "
질문을 쏟아낸다.
얼마나 가슴 졸였을까...
" 예, 수술은 잘 됐구요. 지금 마취 깨우는 중이니까 곧 나오실거고
나오시면 하루 이틀은 중환자실에 계실거예요. 출혈량이 많아서
수술시에 혈압도 많이 떨어지고 했었는데 다행히 잘 마쳤습니다.
너무 걱정 마시구요, 대량출혈과 대량수혈로 인한 합병증만
나타나지 않는다면 큰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
" 아이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
보호자들끼리 부둥켜 안고 운다.
" 중환자실로 가신 다음에 정리되는대로 보호자 면회를 하실 수 있게 해 드릴거예요. 그때까지만 잠깐 기다리시구요."
" 예...예..."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합장을 하는 보호자들을 뒤로하고 계단을 내려가 커피 한 잔을 빼고는 병원 뒤 주차장 쪽으로 향했다.
수술시간 2시간 30분.
밖으로 나오니 초여름이지만 쌀쌀한 새벽공기.
어스름하게 해가 떠오르는 여명.
" 후.... "
담배 한 모금에 커피 한잔이 이렇게 후련하고 행복할 수가 있을까....
지나가던 원무과 직원이 낄낄거리며 묻는다.
" 과장님. 바지에 오줌싸셨어요? ㅋㅋㅋ"
" 응, 그래, 쌌다. 똥도 쌌는데 냄새는 안나냐? "
" 얼른 옷 갈아 입으세요.ㅋㅋㅋ"
다시 수술방 탈의실로 올라와서 홀라당 젖은 팬티를 훌러덩 벗어 쓰레기통에 넣고는 수술복 바지를 입었다. 아랫도리가 시원하다...
중환자실.
환자를 옮긴 뒤 정리가 어느정도 되었지만
마취중 넣었던 환자의 인공기도는 아직 그대로 꽂혀있다.
" 마취과장님이 아직 self(자발호흡)가 완벽하게 안 돌아왔다고 튜브는 오늘 오후 쯤 보고 빼시재요...."
" 알았어요."
아직 감고 있는 눈.
인공기도는 ventilator(인공호흡기)에 연결되어 맑아졌다 흐려졌다를 반복하고 있고,
JP drain, EKG(심전도) monitor, pulse oxymeter(산소포화도 측정기), Foley(소변줄), L-tube(비위관 : 소위 '콧줄'), 침대에 묶여진 양손과 양발...
트럭 운전사라 한다.
새벽같이 물건을 떼어다 거래처 여러곳에 넘기려 이 쉰 새벽에 운전을 하고 가다가 난 사고...
누군가의 남편이자, 누군가의 아들, 또 누군가의 아버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에 피곤함을 무릅쓰고 새벽부터 이 삭막한 도시에 뛰어들었겠지...
평소 내 모습을 아는 분들은 이런 얘기를 들으면 의외라고 생각하거나,
" 헹... 니가...? "
라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난 수술 전에 손을 씻으며 항상 기도를 한다.
주님, OOO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술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께서 항상 함께 하시어
인간의 손이 아닌 주님의 손으로 수술하게 하시옵고,
환자가 퇴원하는 날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잘 퇴원하여
환자가 퇴원할 때에 주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주님의 의사가 되도록 허락하옵소서.
주님. 이 일을 행하는 것이
주께 영광 돌리기 위한 것임을 잊지 말게 하시고,
말씀대로 따르리니 주께서 인도하소서.
주께서 홀로 다스리시며, 홀로 주관하시나이다.
중환자실 환자 앞에서...
한가지 기도를 더했다.
주님.
이 환자는 데려가지 마시고 제게 주세요...
안다.
의사는, 특히 Surgeon은
환자 앞에서 철저히 객관적이고 냉철한 자세를 유지해야 하며,
어떤 순간에라도 합리적 판단을 방해할지도 모르는 편견이나 감정을 가져서는 안된다.
우리는 치유자가 아니라 조력자일 뿐...
천명에 따라야만 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 할 뿐이다.
그러나...
의사도, Surgeon도 사람이다.
내 환자 하나를 잃을 때마다
가슴엔 하나의 칼집이 남는다.
그 수많은 흉터가 하나 하나 남을때마다
내 의사로서의 수명도 하나 하나 사라져 가겠지만...
그래도 외과의사는 손에 잡은 그 칼을 놓지 않을 것이다.
비록 신과 맞서야 하는 경우에라도...
-끝-
※’Antonio Yun의 진료실 이야기'의 저작권은 저자인 외과 전문의 엄윤 원장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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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의 기도 #1.
외과의사의 기도 #2.
외과의사의 기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