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신중지약 도입을 앞두고 정부가 공급망 관리 방안을 내놨다. 의약품이 어디로 공급됐는지 추적하고, 도매상과 의료기관에서 불법으로 유출되는지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임신중지약의 불법 유통을 막겠다는 방향은 타당하다. 그러나 진료 현장에서 기다리는 답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약을 복용한 여성이 도움이 필요할 때, 누가 어떤 절차로 진료할 것인가.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설명에는 의약품 공급내역과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 자료 분석, 개인 간 불법 거래 감시 등이 포함됐다. 시판 후 사용성적조사를 포함한 위해성관리계획(RMP)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약의 유통 경로는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반면 공개된 설명만으로는 복용 전 평가와 복용 이후 관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 충분히 알기 어렵다. 안전관리를 이야기하려면 약을 공급받는 순간부터 필요한 사후 진료를 받기까지 환자가 거치게 될 과정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가장 먼저 구체화할 것은 임신중지약의 사용성적조사다. 조사 대상과 규모, 관찰 기간, 평가항목이 정해져야 한다. 추가 처치나 응급실 방문, 중대한 이상사례를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 추적 관찰에서 이탈한 환자는 어떻게 파악할 것인지도 필요하다. 진료실로 다시 찾아온 환자의 기록만으로 실제 사용 결과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
의사회가 임신중지약의 전수 등록·조사를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내에서 임신중지약의 사용을 시작하는 단계부터 결과를 빠짐없이 확인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전수조사의 필요성과 실행 가능성, 개인정보 보호와 의료현장의 부담은 함께 논의할 수 있다. 정부가 다른 조사 방식을 택한다면 그 설계로 필요한 안전성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근거를 설명해야 한다.
임신중지약 가교임상 면제 여부와 판단 근거도 명확히 밝혀야 한다. 가교임상 면제를 결정한다면 어떤 해외 자료를 검토했고 국내 적용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다. 면제 자체가 곧 안전성 검증의 부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 진료 환경에서 추가로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제시해야 한다. 허가 전 근거 검토와 시판 후 조사의 역할을 모호하게 섞어서는 안 된다.
특히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연구계획뿐만이 아니다. 복용 전에는 임신 주수와 자궁외임신 가능성, 병력과 복용 약물 등을 적절히 평가해야 한다. 복용 후에는 예상 가능한 증상과 신속한 진료가 필요한 상황을 구분해 안내해야 한다. 이러한 평가와 설명을 누가 맡고, 필요한 검사와 추가 처치로 어떻게 연결할지 진료지침에 담겨야 한다.
초음파도 임상적으로 필요한 경우 적절히 활용할 수 있도록 기준을 정해야 한다. WHO는 모든 환자에게 초음파를 임신중지의 선행조건으로 요구하는 데 반대하면서 개별 상황에 따른 필요성은 인정한다. 국내 지침도 근거에 따라 필요한 평가가 누락되지 않도록 마련해야 한다.
야간과 휴일에 임신중지약이 지급될 경우 대응도 특히 중요하다. 환자에게 연락처를 알려주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상담을 거쳐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실제로 환자를 받을 기관이 있어야 한다. 전원이 필요할 때 전달할 정보와 기관별 역할도 정해져야 한다. 처방한 의료기관의 진료시간이 끝났다고 환자의 도움 요청까지 멈출 수는 없다.
허가와 위해성관리는 식약처, 진료체계는 복지부 소관이라는 설명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정부 내부의 업무는 나뉠 수 있지만 환자는 하나의 연속된 진료를 받아야 한다. 관계부처가 공동으로 마련할 지침과 응급진료 연계 방안, 각 기관의 책임과 준비 일정을 공개해야 한다.
임신중지약 처방에 따른 의료진의 법적 책임도 구체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처방과 설명, 이상사례 대응, 응급 전원 과정에서 어떤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적정한 진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결과와 주의의무 위반을 구분할 기준이 필요하다. 이는 포괄적인 면책 요구가 아니다. 환자의 권리와 의료진의 의무를 함께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불법 유출 점검 역시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처방량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의료기관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정상적인 진료와 불법 유통을 구분하고, 의료기관이 사실관계를 설명할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이상사례를 성실하게 보고하는 일이 불이익에 대한 우려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시판 후 조사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려는 임신중지약 DUR의 활용도 이런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 불법 유출 정황을 확인하는 데 더해 중복 투약 등 의료진의 확인이 필요한 사항을 알리는 기능을 검토할 수 있다. 다만 DUR이 임상 평가를 대신할 수는 없다. 반복 처방에는 추가 처치 등 임상적 사유가 있을 수 있으므로 맥락을 확인해야 하며, 임신중지와 관련된 민감한 건강정보는 엄격하게 보호해야 한다.
임신중지약 도입 이후의 재평가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조건부 허가를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그 여부와 별개로 허가에 부과할 안전관리 의무와 재평가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무엇을 근거로 사용 조건을 유지하거나 변경할 것인지 정해져 있어야 한다. 판단에 필요한 자료는 공급이 시작되는 때부터 축적돼야 한다.
FDA 등 해외 규제기관의 평가를 반영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특정 해외 결론을 미리 전제하기보다 검토 대상 자료와 국내 제품·사용 조건의 관련성을 설명하고, 새로운 안전성 정보가 확인됐을 때 허가사항과 진료지침에 반영할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는 임신중지약과 관련해 아직 공개되지 않은 대책이 있다면 공개하고, 마련 중이라면 책임 부처와 완료 시점을 제시해야 한다. 동시에 비용과 지역별 진료 접근성, 비밀보장에 대한 우려 때문에 여성이 제도권 의료를 이용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살펴야 한다.
임신중지약 도입의 준비 수준은 허가 일정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약을 복용한 여성이 무엇을 안내받고, 문제가 생겼을 때 어디에서 진료받으며, 그 결과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가 기준이 돼야 한다. 정부의 다음 발표에서는 공급망 점검 계획과 함께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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