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대한전공의협의회 박지현 전 회장은 지난 8월 의료계 파업 당시 매일 같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 주인공이다. 그는 주도적으로 ‘젊은의사 단체행동’을 기획하고 실행하면서 정부의 잘못된 의료정책을 바로잡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미약하게나마 올바른 의료계의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인력과 재정난에 허덕이면서도 꿋꿋이 달려왔다고 밝혔다.
박지현 전 회장은 지난 15일 메디게이트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투쟁의 중심에서 올바른 의료를 외치던 대전협 회장에서 일반 전공의의 삶으로 돌아간 소감을 이 같이 밝혔다.
20년만의 전공의 투쟁은 절반의 성공으로 막을 내렸다. 박 전 회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의 날치기 합의로 인해 전체 전공의들이 목표했던 투쟁의 최종 성과는 끝내 달성되지 못했다.
그리고 나서 9.4 의정합의 이후 병원 복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내부 의견 조율에 실패하며 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 집행부가 전원 사퇴하는 극단적 상황도 맞이했다. 박 전 회장은 당시 상황을 두고 “파업이 무너졌다. 무작정 버티기에 돌입하는 것은 목표 없이 때 쓰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전 회장은 파업에 있어 누구보다 강경한 입장에 있었다. 전체 전공의들을 대신해 모든 책임을 져야하는 수장으로서 그들이 믿는 가치를 위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더 그는 직접 시작한 일을 제대로 마무리 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도 가장 아쉽다는 속내도 털어놨다.
“박지현의 투쟁은 끝났지만 전체 전공의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아직 투쟁이 끝나지 않았다고 봤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제24기 집행부가 투쟁 바통을 이어받아 더 많은 변화의 시작을 열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특히 새로운 집행부에게는 정부의 정책적 가짜 쇼맨십과 진짜 행보를 간파하고 전공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타이밍을 결정할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하다는 제언도 덧붙였다.
Q. 대전협 회장직이 마무리 됐다. 최근 어떻게 지내고 있나.
병원에서 일하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다. 특히 새로운 집행부에 인계를 준비 중이다. 통장 인계 말고는 아직 시작도 못한 상태다.
Q. 단체행동을 마친 현재 소감은.
투쟁에 많은 시간을 집중했고 1년간 많은 것들을 했다. 임기 마지막에 투쟁에 집중하면서 전공의 수련 등 다른 회무를 하지 못한 것도 아쉽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전공의법 개정안 발의도 앞두고 있고 수련규칙 표준안 개정 등에도 공을 들였다. 이런 일들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다시 누군가 회무를 이어받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안도 얻는다. 임기를 시작하며 말했던 것이 회장 하나만 잘난 것이 아니라 좋은 팀, 훌륭한 집행부를 만들고 싶었다. 이 말은 지킨 것 같다.
Q. 전공의법 개정안 발의를 앞두고 있다고 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밝혀달라.
전공의법 처벌 수위 자체를 높이는 것이다. 더불어 국가가 전공의를 지원할 수 있다고 돼 있는 부분을 지원해야 한다로 수정하고 수평위 구성에 대한 개정도 준비하고 있다.
Q. 단체행동의 마무리를 제대로 매듭 짓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나.
박지현의 투쟁은 끝났지만 전체 전공의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후 투쟁 과정을 새로운 집행부가 잘 이끌어 갔으면 한다.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의 날치기 합의 때문에 우리의 파업이 무너졌지만 당시 상황에서 태세를 전환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목표 없이 떼 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봤다.
당시 굳이 공식 발표나 루머 등에 대응하지 않은 것도 의협은 의협이고 우리는 대전협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내 손으로 직접 마무리하지 못해 아쉬운 것도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전공의와 의사사회가 선택한 것이라면 그들의 템포에 맞춰 또 다른 결과를 가지고 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 아쉽지만 이것도 큰 경험이고 많은 깨달음이었다.
Q. 단체행동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재정 부족과 인력 부족 크게 두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초창기에 투쟁 성금은 1억 2000만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첫 젊은의사 단체행동 준비에 1억 6000만원이 필요했고 이 때문에 처음 의협에 도움을 요청하게 됐다. 인력 부족과 관련해서는 다들 전공의들이다 보니 파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참 많이 힘들었다. 매일 일과를 끝내고 의협회관 8층에 본부를 차려놓고 밤새 회의를 하면서 일했다. 특히 실무를 맡을 인원도 부족했다. 많은 이들이 비상대책위원회에 지원했지만 협상, 문서 정리, 포스터 디자인 등 적재적소의 인력을 배치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Q. 단체행동 이외 대전협 회장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회무는.
서울대 전공의 미이수 사태다. 임기 시작과 동시에 수련평가위원회에서 이 문제로 늘 싸웠다. 그러나 수평위 위원구성 자체가 문제가 많았고 잘 고쳐지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전공의 비중 자체가 적어 수평위 내에서 재기능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또 힘든 점이 있었다면 회의 일정을 아침7시, 오후2시 이런 식으로 급작스럽게 공지가 내려온다. 아무리 공문이 있어도 개인 휴가 등을 사용하고 참석해야 했다. 회의 분위기도 강압적이고 힘든 점이 많았다.
Q. 최근 전공의를 폭행한 교수가 병원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공의들이 폭행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신고 자체도 잘 되지 않고 병원 차원에서 무마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 수평위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이 난무한다. 의료계 혼란을 틈타 해운대백병원은 교수의 직위해제를 감봉 3개월로 낮췄다. 또한 병원들은 공간이 협소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기 어렵다는 얘기만 하고 있다. 병원들이 반성해야 한다.
Q. 취임 당시에 임신전공의 역차별 문제 중점 공약이었다. 현실적으로 개선에 어려움이 있었나.
임신 전공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정의당 등과 국회 토론회도 준비했고 실태조사 등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체행동이 이뤄지면서 모두 중단된 상태에서 마무리됐다. 현재는 임신 전공의에게 수련이 부족하다며 추가수련을 얘기하고 있는데 이는 근본부터 잘못됐다. 현재는 수련을 절대 시간만으로 평가하고 있다. 항목별로 부족한 부분만 추가로 수련한다거나 이수할 수 있도록 하는 기준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23기 집행부는 기수연차별 수련 과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복지부와의 협상과정에서도 단체행동과 별개로 연차별 수련과정 체계화를 주장했다.
Q. 회장을 지내며 인간 박지현에게도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회장이 되고 글을 쓰지 말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페이스북은 하지 않았고 트위터는 간간히 이용했다. 그러나 최대집 회장이 당선된 이후 인간 박지현과 회장 박지현을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회장 최대집을 아무리 지지하려고 해도 인간 최대집에게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적어도 부끄러운 회장이 되진 말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한의사들과 친해보인다는 이유로 평소 즐겨입던 한복도 입지 못했다.
Q. 특히 SNS를 자주 이용하는 것 같다. 박지현에게 SNS란 무엇인가.
'관종'의 필수 아이템이라고 본다. 이용하기도 하고 이용 당하기도 한다. 페이스북은 연령층 자체가 전공의가 아닌 어르신분들이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나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스타는 계정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공개, 나머지 하나는 비공개 계정이다. 트위터는 익명을 가장해 사고치고 싶을 때 가장 많이 이용한다.
Q. 박지현 전 회장은 집행부 이사와 부회장을 거쳐 회장이 된 케이스다. 경험이 부족한 현 집행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
당연히 우려되는 부분은 있다. 그러나 전공의들은 생각보다 그렇게 의존적이지 않다. 집행부마다 색깔이 다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도 있고 못하는 일도 있을 것인데 못하는 일은 또 누군가 역할을 대신해서 할 것으로 본다. 집행부가 바뀐다고 전공의 회무가 망가진다는 견해는 전공의가 빠지면 병원이 망가진다는 견해와 같다.
Q. 최근 새로운 집행부에 대한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온다.
회무를 진행하는 것은 회장의 능력에 달려있다. 다만 경험의 차이는 있다. 병원에서도 외과 4년차가 하는 수술을 급하게 가르친다고 새로 들어온 인턴이 잘 해낼 수 있진 않다. 이해와 경험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전임인 이승우 회장도 23기 집행부 임기 도중 회무와 관련해 전화 한통 하지 않았다. 대전협 역사상 앞선 회장이 이후 집행부에 개입하는 것은 간섭이라고 여겨진다.
Q. 기존 집행부의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지적에 대한 견해는.
대의원총회를 한 번 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굉장히 중요한 회의이기도 하고 그만큼 권한을 갖는 것인데 회의를 자주 연다고 해서 권위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절차의 간소화나 다양성을 고민해볼 수는 있지만 이런 핑계로 대의원총회를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소수의 결정이라고 보는 것은 핑계다. 채널과 창구가 필요하다는 점은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 때문에 대의원총회가 폭력적이고 의사결정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Q. 의대생 국시 문제와 관련해 투쟁을 다시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보는지.
집행부가 할 수 있다고 하면 하는 것이다. 이는 집행부가 그려나가야 할 그림이다. 물론 의대생 본인들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지만 적당한 시기에 협박이 아닌 정말 칼을 뽑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칼을 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도 있다.
Q. 대전협에 대한 전공의들의 관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투표율이 조금 아쉽다는 견해가 있다.
전공의들이 현안에 관심을 갖고 대전협에 참여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다. 이번 단체행동을 계기로 국민들이 전공의의 존재를 알게 됐고 매일 사회, 정치면을 장식했다. 이런 의미가 있었지만 단체행동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사표현이 투표율로 반영됐을 수도 있다. 이 또한 존중한다.
Q. 현재 정부와 여당의 발언과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보나.
이번 정부와의 협상, 의협을 통해 정책적 쇼맨십을 배웠다. 이제 의원들의 사소한 발언 등에 크게 신경쓰지 않게 됐다. 이런 것도 정치의 일환이다. 실속 없는 도발에 다 넘어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진짜와 가짜를 가려서 보고 진짜 목소리를 내야할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 최근 정부와 여당의 움직임을 보면 전공의들의 파업 자체가 그들의 자존심에 큰 스크래치를 남겼다는 점을 느낀다.
Q. 전공의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전공의들이 있었기에 23기 집행부가 일할 수 있었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다사다난했던 한해를 보냈다. 후회없을 1년이었고 향후 역사적 의의가 무엇이든 전공의 사회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본다. 그 관심과 열정을 잃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Q. 전임 회장이 현 회장에게 한마디 한다면.
회장과 부회장은 굉장히 다르다. 회장은 모든 것을 책임지며 리더십이 필요한 자리다. 어떻게 보면 이번 집행부는 안티(anti) 박지현으로 대변될 수도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회장 본인이 더 중심을 제대로 잡아야 할 것이다. 집행부와 회원들이 어떤 입장을 내더라도 이를 뒤집을 수 있는 게 리더이고 회장이다. 단체행동을 하면서 매 순간 내린 결정이 다 회장의 결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모두 내가 납득할 수 있고 책임질 수 있을 때 비로소 최종 결정을 내렸다.
조심해야 할 점은 주변에 대전협을 이용하려고 하는 나쁜 이들이 많다. 어떤 것이 옳은 가치이고 진짜인지 가려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