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의정합의가 이뤄지고 이틀동안은 그냥 눈물만 흘렀다. 20년만의 단체행동으로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바꿔보겠다던 젊은 의사들은 허탈감에 빠지고 분열됐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서연주 부회장이 24일 침묵하던 대전협 집행부를 대표해 '9.4 의정합의' 과정에 대해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의협이 졸속 합의 이후 대전협에 책임을 전가하면서 남아있던 일말의 신의마저 깨졌고 더 이상 진실을 감추고 있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연주 부회장과 연락이 닿은 것은 23일 늦은 저녁이었다. 서 부회장은 의협 집행부의 발언에 대해 해명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의협 박종혁 총무이사는 "대전협 집행부가 투쟁 동지인 의협을 불신하는 태도를 지속적으로 보였으며 범의료계 4대악 저지투쟁 특별위원회(범투위) 논의 구조도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서 부회장이 그토록 밝히고 싶었던 진실의 핵심은 대전협을 탓하던 의협은 정작 그동안 마치 더불어민주당 편인 것처럼 행동하고 투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협이 의료계를 대표하는 공식 대표기구인 데다 투쟁과 협상에 방해가 될 수 있어 꾹꾹 참아왔다고 털어놨다.
이어 그는 “의협이 왜곡된 의료사회에 대한 대안이 무엇인지 근본적 해결방안을 고민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의협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파업을 끝내려는 의지만 가득했다"라며 "의협이 대체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의협은 우리 편이라기보다 마치 여당 측에 서있는 것 같은 입장을 보였다"고 말했다.
서 부회장은 "의협 최대집 회장은 3차 총파업이 진행되면 많은 환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했다. 최대집 회장은 3차 총파업 전에 투쟁이 마무리되면 자신이 6개월만 실형을 살면 되지만 파업이 3차를 넘어가면 10년에서 15년 이상 감옥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서연주 부회장은 "의협이 대전협에 책임전가를 하고 대전협이 의협에 협조적이지 않았다고 하지만 오히려 내부 분열을 조장하고 편 나누기를 한 것은 의협이다"라며 "의협과 박능후 장관의 밀실 회담 이후 오히려 대전협은 전공의 때문에 협상이 결렬됐다는 식으로 매도 당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내부분열로 보일까봐 그동안 말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협이 지금의 구조가 유지되고 최대집 회장과 현 집행부의 잔재가 남아 있다면 튼튼한 의정협의체는 절대 만들어질 수 없다고 본다"라며 "젊은 의사들이 모두 다시 하나될 수만 있다면, '옳은 가치'와 '바른 의료'로 의료사회의 정의를 구현해 낼 수만 있다면 그 무엇도 아깝거나 두렵지 않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서연주 부회장은 상당히 격앙돼있으면서도 차분하게 투쟁과 협상 과정에서 느낀 의협의 문제점을 요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대전협이 의협으로부터 겪었던 일에 대한 정확히 사실을 알리기 위해 박지현 회장과 서연주 부회장의 메신저 캡처도 공개했다.
①대전협이 선두투쟁 나선 이유, 의협이 6월 의대정원 확대 등에 안일한 대처로 불신이 생겼기 때문
서 부회장은 파업 이전인 6월에 이미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을 두고 의협의 안일한 대처로 강한 불신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6월 말 목포가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이 목포의대 설립을 두고 국회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었는데 의료전문가들의 패널 참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대전협 박지현 회장은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조승현 회장과 공조해 문제의 당사자인 의대생, 전공의들이 직접 패널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김원이 의원실로부터 거부당했다.
대전협은 결국 의협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의협으로부터 돌아온 것은 "국회토론회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이었다. 의협 방상혁 상근부회장은 "김원이 의원실의 개최 의도가 명확하고, 초청도 없고, 참석해도 왜곡될 수 있다는 의견 속에 무대응했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에 대해 전공의들은 크나큰 의문을 품었다. 의료악법에 대해 전문가적 견해를 밝히기 위해 참여하겠다는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주장을 의협이 공식적으로 막아섰기 때문이다. 대전협은 무대응으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강하게 문제제기를 통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서 부회장은 "당시 기억에 따르면 의협 송명제 대외협력이사는 왜 해당 문제에 관여하지 않느냐는 박지현 회장의 질의에 정무적 판단이라고 일축했다"며 "알고보니 송명제 이사는 목포 출신으로 김원이 의원과 상당한 친분이 있었다. 모종의 정치적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 부회장은 "문제의 당사자들이 패싱당한 상황에 대해 부당함을 느낀 박지현 회장은 의협 산하 의료전문지인 '의협신문'과 관련 문제점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했다"며 "그러나 보도 30분 전 기사를 낼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는 송명제 이사가 기사 삭제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결국 이후 8월 14일 1차 전국의사총파업이 진행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 대전협은 이에 앞선 8월 7일 선두 투쟁을 발표했다. 김원이 의원실 국회토론회 사건 이후 의협을 믿기 어려웠고, 전공의들이 문제의 당사자인 만큼 선제적 단체행동을 하는 것이 맞다는 내부 의견에 따른 것이다.
다만 서 부회장은 선두 투쟁을 밝힌 뒤 의협이 문제제기를 해왔을 때 투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의협 측에 최대한 협조했고 이 때문에 의협도 전적으로 대전협을 돕기로 했다고 밝혔다.
즉 전공의들이 선두 투쟁 이후 의협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대전협도 8월 14일 1차 전국의사 총파업에 총력을 기울이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전협은 의협의 입장을 고려해 전공의들의 선두투쟁이 의협의 동의 하에 진행됐고 최대집 회장 등 집행부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밝히기로 했다. 대전협이 선두 투쟁으로 파업의 물꼬를 틀고 다음으로 의협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전력이었다.
서 부회장은 "8월 7일 단체행동을 진행하는데, 장소 섭외와 물품 지원 등 의협 총무팀과 공보이사의 도움이 아주 컸다. 당시까지 의협은 전공의의 단체행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했고 서로간의 관계도 매우 우호적이었다. 7일 처음 시작된 젊은 의사 단체행동의 성공적 개최는 결국 8월 14일 투쟁의 성공 여부에도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②의협의 미온적인 투쟁 준비, 2차 총파업은 최대집 회장의 독단적 결정
서연주 부회장은 대정부 투쟁 과정에서도 미온적인 의협의 태도에 답답함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에 따르면 8월 14일 전국의사 총파업 준비 과정 또한 상당 부분 전공의들의 몫이었다. 투쟁 물품 요청부터 시작해 피켓에 들어갈 문구까지 대전협 집행부의 적극적인 참여로 진행됐다.
서 부회장은 "생각보다 많은 의사들이 참여해 입장이 지연되는 등 첫 번째 파업으로 부족함을 여실히 느꼈다. 스피커 보완, 물품 충당 등 해결안을 끊임없이 제시했으나, 의협 집행부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느긋하고 준비작업도 극소수만 담당했다"며 "총파업 당일 여의대로의 대부분도 젊은 의사들과 의대생들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 부회장은 14일 파업이 끝난 뒤 8월 26~28일 2차 전국의사 총파업 시기와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전공의들이 배제됐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의협 집행부조차 2차 파업 시기가 26일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최대집 회장이 독단적으로 2차 총파업 일정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서 부회장은 "의사 총파업은 의협이 주최하는 행사였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파업을 적극적으로 준비했던 의협 임원이나 시도의사회장 등은 아무도 없었다"며 "결국 선두투쟁 이후 힘을 보태기로 한 전공의들이 주도적으로 1차 파업을 추진했고 내부적으로 이럴 바에 의협과 분리해 우리끼리 파업을 진행하자는 얘기도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14일 의사 총파업은 의협이 주최하는 집회였다. 그런데 의협의 일부 이사와 직원을 제외하고는 전부 대전협 비대위 집행부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팔찌와 유인물을 나누고 있었다. 평소 목소리 높이던 임원진들의 얼굴은 왜인지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대전협 비대위 입장에서 14일 집회는 육체적으로 더욱 힘들고 지친 하루로 기억됐다. 내부적으로는 의협에 대한 비판도 나왔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의사들이 다같이 함께 할 수 있어 벅차고 기뻤다며 서로를 격려했다"고 밝혔다.
③박능후 장관과 의협 협상단이 맥주 한잔 하고오더니…대전협이 협상에 재뿌렸다는 가짜뉴스 유포
서연주 부회장은 의협과 복지부의 잠정합의안에 대전협이 반대 의견을 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히려 의협이 먼저 전공의들을 배제한 채 복지부와 밀실 회담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가짜뉴스까지 유포됐다는 것이다.
서 부회장에 따르면 2차 총파업을 이틀 앞두고 의협과 대전협 집행부는 8월 24일 보건복지부와 실무협상을 진행했다. 당시 의료계는 '철회' 또는 '중단과 원점 재논의'를 요구했으나 복지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협상이 결렬됐다.
이후 25일 새벽, 대전협 집행부가 떠난 뒤 복지부 박능후 장관과 의협 협상단만 따로 여의도 모 음식점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면서 회담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를 두고 언론은 일제히 정부와 의협이 집단휴진을 철회하는 잠정합의안을 마련했지만 전공의들이 이를 거부하면서 파업이 지속된다는식의 보도를 쏟아냈다.
서 부회장은 "박능후 장관과 의협 협상단의 밀실 회담 이후 복지부와 의협이 잠정합의안을 마련했으나 대전협이 이를 거부해 집단휴진이 강행되는 것처럼 여론이 형성됐다"며 "이때부터 대전협은 의협 내부적으로도 입지가 좁아졌으며 전공의 내부적으로도 대전협이 논의에서 패싱당하는 것 아니냐는 질타가 이어졌다. 의도된 분열의 시작이었다"고 설명했다.
④험난한 범투위 단일 합의안 마련 과정…의협은 파업을 끝낼 궁리만
범투위에서 의료계 단일 합의안 마련 과정도 험난했다. 하지만 파업을 끝낼 궁리만 하는 의협의 모습이 대전협을 더 힘들게 했다.
서 부회장은 "의협이 왜곡된 의료사회에 대한 대안이 무엇인지 근본적 해결방안을 고민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의협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파업을 끝내려는 의지만 가득했다. 의협이 대체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대전협은 9월 1일 의대생, 전임의들과 함께 '젊은의사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투쟁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또한 서연주 부회장이 주도해 19장짜리 젊은의사비 대위 대정부 요구 정책안(복지부-여당 측 요구안)도 만들었다. 해당 정책안은 젊은의사 비대위가 직접 의료정책연구소 안덕선 소장을 찾아가 검수까지 받았다.
서 부회장은 "결국 젊은의사 비대위가 정부·여당 요구안을 만들었고 법안 '철회' 혹은 '원점 재논의' 의지를 밝히지 않는다면 단체행동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서 부회장은 "반면 이런 전공의들과 달리 의협 김대하 이사는 회의 과정에서 합의안을 도출하지 않으면 이번에도 전공의들의 반대로 협상이 격렬됐다는 발표를 하겠다고 협박했고 많은 전공의들의 공분을 샀다"고 말했다.
그는 "9월 2일 젊은의사 비대위 간담회에서는 의협이 대놓고 '우리가 복지부라고 생각하고 말해보라'며 파업 중단을 종용했다"며 "이날은 전공의 형사고발, 대통령 발언 등으로 전공의들의 감정이 격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의협의 미온적 태도까지 겹쳐지자 화가 난 박지현 회장은 철회가 아니면 수용할 수 없다는 발언을 했다"고 덧붙였다.
⑤시간이 없다며 마치 민주당 편인 것처럼 대응한 의협, 끝내 최대집 회장은 날치기 서명
서 부회장은 합의 과정에서 대전협이 철저히 의협에 의해 배제 당해왔고 결국 날치기 합의까지 이르렀다고 밝혔다. 그동안 의협이 오히려 여당 측과의 협상안을 수정하려는 대전협 집행부를 저지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에 따르면 9.4의정합의가 이뤄지기 하루 전인 9월 3일 오후 의협 송명제 대외협력이사와 김대하 홍보이사는 대전협 집행부를 국회로 불렀다. 당시 대전협 집행부는 더불어민주당 보건복지위원회 조원준 전문위원과 협상안 세부 내용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의견차이로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에 대전협은 이날 논의된 의견을 반영해 여당 측 협상안을 전달해 달라는 요구를 했지만 김대하 이사로부터 저지당했다.
서연주 부회장은 "대전협 측의 요구를 반영해 여당에 협상안을 요구했더니 오히려 김대하 이사는 그럴 시간이 없다며 시간이 촉박하다고 발언했다"며 "처음부터 논의를 위해 부른 것도 아니었다. 의협은 우리 편이라기보다 마치 여당 측에 서있는 것 같은 입장을 보였다"고 말했다.
특히 서 부회장은 의협 집행부가 대전협 집행부를 상대로 허위사실 등을 유포해 제대로 된 합의과정을 막았다고 해석했다.
4일 새벽 4시 의협 김대하 이사는 대전협 부회장들에게 합의문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전송했다. "민주당에서 받은 내용인데 박지현 회장에게도 전달해 검토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새벽 6시쯤 잠에서 깬 서연주 부회장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등 합의의 핵심 내용이 빠진 부분을 지적하며 수정이 필요하다고 요청했고 김 이사로부터 "알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오전 8시부터 '의정합의 극적타결'이라는 기사가 도배되기 시작했다. 실시간 중계방송에 모습을 드러낸 최대집 회장이 민주당과 협약에 사인을 했다.
서 부회장은 "당시 수원에서 합의 관련 보도를 보자마자 차를 몰고 서울로 올라오며 손이 덜덜 떨렸다. 송명제 이사는 전화조차 받지 않았고, 김대하 이사는 어렵게 연락된 후 본인은 몰랐던 일이라 했다"며 "늘상 대전협을 챙기고 도왔던 조승국 이사마저도 이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던 눈치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서 부회장은 "언론에 비친 정부와의 합의장엔 수많은 동료들이 합의를 저지하려 온 몸으로 막아섰다. 울분과 배신감, 무기력함에 미칠 것 같았다.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그토록 바랬던 바른 의료의 가치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아쉬움에 마음 곳곳이 멍들었다. 합의를 위해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던 대전협 집행부를 비롯한 전공의 모두가 큰 상실감과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의정합의 이전에 최종합의안 도출할 때 분명히 추가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왔다"면서 "범투위 회의 과정에서 최종 합의할 때 전공의들이 참여한 상태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약속도 있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Q. 투쟁을 진행하면서 의협과 공조가 제대로 이뤄졌다고 생각하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8월 26일~28일 2차 총파업으로 넘어가면서 우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생겼다. 다수의 행정명령, 전공의 형사고발 조치가 이뤄지면서 이들을 지킬 방법을 찾고자 고군분투했다.
의협은 자체 법무팀을 꾸려 책임지고 보호하겠으니 창구를 단일화시켜달라 했다. 하지만 어떤 전공의는 명단에서 누락됐고, 어떤 전공의는 고발된지 일주일만에 겨우 의협의 연락을 받았다. 의대 교수들까지 파업에 동참하겠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이때부터 의협은 전공의들이 이야기하는 엔드포인트(End point)에 어떻게든 끼워맞춰서 파업을 멈추고 합의를 진행하고 싶어했다.
내가 본 의협 일부 집행부는 올바른 의료의 가치와 신념을 위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를 고민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들의 입지를 굳혀가면서 어떻게 파업의 최전선에 있는 의대생과 전공의들을 이용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공을 자신들에게 더 많이 돌릴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 같았다.
Q. 의협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구체적 사례가 있나?
애초에 최대집 회장과 집행부는 3차 의사 총파업까지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례로 9월 2일 의협은 젊은의사 비대위에 만남을 요청했다. 당연히 합의문 도출 과정에서 의견 조율을 위한 회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자리에 앉자마자 최대집 회장은 의정합의를 위해 우리를 설득했다. 최 회장은 '3차 총파업 전에 투쟁이 마무리되면 자신이 6개월만 실형을 살면 되지만 파업이 3차를 넘어가면 10년에서 15년 이상 감옥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투쟁으로 의대생들은 의사 국가고시를 보지 못할 위기에 처해있고 당시 전공의들은 형사고발 조치가 된 상황이었다. 사실상 개원의들의 투쟁 참여율은 저조했고 모든 책임을 젊은의사들이 져야하는 상황이었다.
이 와중에 최대집 회장은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회장 후보 시절 감옥에 보내달라고 읍소해 뽑힌 인물이다. 이제 와서 받게 될 형이 늘어난다고 투쟁을 멈추자는 모습을 보고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다고 회원들의 보호와 의정협의체 협상 과정에 대한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도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최대집 회장은 최근 3차 총파업이 진행될 시, 전공의 400명 추가 고발과 대전협 집행부 긴급체포가 예정돼 있었다고 발언했다. 이 때문에 추가 파업으로 얻는 이익보다 손해가 많았다는 견해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최대집 회장이 9.4의정합의 직전에 3차 총파업이 진행되면 상당히 많은 환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얘기를 한적은 있다. 그러나 전공의 추가고발이나 긴급체포 얘기는 금시초문이다. 의협과 복지부 측 어디에서도 전해 들은 바 없다. 해당 발언이 사실이라면 의협은 당시 전공의들과 함께 추가 고발에 대한 조치를 논의하고 치밀한 추후 대책을 논의했어야 한다.
Q. 9.4의정합의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
우리의 공을 알아달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매일 새벽 3-4시가 넘도록 회의를 하고 모든 집행부가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를 위해 사명감을 갖고 일했다. 이렇게 완성된 것이 '젊은의사 비대위 정부-국회 요구안'이다. 그러나 우리가 요구안을 만들 때 의협은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왜 의협이 해야할 일을 전공의들에게 떠넘기고 무대책으로 일관했는지 묻고 싶다.
당시 요구안은 한정애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등의 인사를 만나 견해를 듣고 합의가 될 수있다는 범위 내에서 만들었다. 즉 요구안은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뜻했다. 이런 점을 의협에도 분명히 명시했다. 또한 이 정도 합의도 이뤄내지 못할 것이라면 협상단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분명히 했다. 그러나 합의는 처음 요구안에 비해 핵심적인 내용들이 대폭 완화된 채 이뤄졌다.
Q. 최근에 공개된 최대집 회장과 박지현 회장의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보면 박지현 회장이 "며칠은 더 버틸 수 있겠지만 장기전이 되면 힘들다. 의대정원과 공공의대 정책 철회나 중단, 원점 재논의가 이뤄지면 파업을 중단할 마음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해당 발언에 대해 설명해달라.
앞뒤 정황없이 해당 발언만 보면 대전협이 먼저 투쟁을 접겠다고 의협에 통보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해당 내용은 업무개시명령으로 인한 전공의와 전임의에 대한 형사고발이 이뤄진 상태에서 전공의 보호 차원에서 나온 발언이다. 해당 발언만 보고 박지현 회장이 지속적으로 파업을 접겠다는 입장을 취했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회원 보호와 의협으로 위임된 투쟁 동력을 끌어올려 달라는 취지의 이야기다.
Q. 박종혁 이사는 대전협 집행부가 동지인 의협을 지속적으로 불신하는 태도로 일관했고 이는 오히려 자리에 연연하는 것 아닌지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고 언급했다. 해당 발언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
의협이 앞선 6월부터 지속적으로 불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전협은 한번도 투쟁과정에서 내부 잡음을 외부로 표출하지 않았다. 또한 젊은의사 비대위를 출범시켜 범투위가 협상의 단일창구라는 점을 명시했다. 대전협이 의협의 산하단체이기 때문에 계속된 의심스러운 행동에도 끝까지 의협과 최대집 회장을 믿으려고 했다. 투쟁의 선봉대에서 파업을 이끌면서도 협상의 단일창구인 의협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오히려 내부 분열을 조장하고 편 나누기를 한 것은 의협이다. 박능후 장관과의 밀실 회담 이후 오히려 대전협은 전공의 때문에 협상이 결렬됐다는 식으로 매도 당했다. 당시에도 불만이 있었지만 이런 사실이 알려지만 투쟁에 방해가 될 수 있어 최대집 회장이나 집행부 등 개인적으로만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되레 도대체 우리가 이번 투쟁을 통해 무슨 자리를 얻게 되는지 우리가 궁금하다. 오히려 전공의들은 을의 입장에서 병원을 포함한 다양한 곳에서 눈총을 받고 따가운 시선을 견디고 있다.
Q. 박지현 회장이 범투위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메신저 대화방도 들락날락했다는 것은 사실인가.
박지현 회장이 범투위 회의 도중 식중독에 걸려 두통과 구토 증세로 고생한 적이 있다. 당시 건강상의 문제로 논의 도중 도저히 회의 진행이 불가능해 휴식을 취한 적이 있다. 해당 문제는 이후 범투위 위원들에게 이유를 밝히고 양해를 구했다.
또한 메신저 대화방은 두번 나간 적이 있다. 첫 번째는 6월 김원이 의원 토론회 당시 의협이 국회의 의료전문가 패싱을 묵인한 사안에 대한 불만이었고 두 번째는 9.4 졸속합의 이후다.
Q. 서연주 부회장을 비롯한 대전협 집행부는 최대집 회장의 탄핵안이 처음 올라왔을 당시, 탄핵을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는 무엇인가.
2014년 의사 파업 이후 전례를 고려했다. 회장이 탄핵 당하면 의정합의를 철저히 이행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억지로 함께 가더라도 최대집 회장이 필요하다고 봤다. 비록 보고 싶지 않더라도 의정협의체 구성과 합의 이행이라는 목표를 위해 최대집 회장이 있어야 했고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수많은 루머와 비판, 수모를 겪으면서도 침묵해 왔다.
Q. 최대집 회장 탄핵에 대해 지금도 의견이 같은가.
아니다. 이제는 견해가 바뀌었다. 최대집 회장은 의협회장으로 억지로 데리고 갈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지금의 구조가 유지되고 최대집 회장과 현 집행부의 잔재가 남아 있다면 튼튼한 의정협의체는 절대 만들어질 수 없다고 본다.
생각이 바뀌게 된 결정적 계기는 4차 범투위 회의에서 최 회장이 범투위를 해산하자고 언급한 대목이다. 투쟁 이후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피해가 속출하는데 의협은 침묵했다. 향후 의정협의체 구성과 논의과정에 대한 철학도 없었다. 범투위를 해산시키자고 말하면서 그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그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기 급급했다.
결국 전공의들과 일부 범투위 위원들의 반대로 범투위 해산이 무산되긴 했지만 의협 내부에 존재하는 모종의 카르텔이 무너지기 전까지 위협은 존재한다. 이대로라면 의협은 제대로된 투쟁과 협상이 불가능하다.
Q. 최근 9.4의정합의 이후 전공의 내부적으로도 분열이 있었다. 현 대전협 집행부 일원으로서 입장을 밝혀달라.
대전협이 투쟁과 협상의 과정 속에 이를 내부적으로 설명하고 의사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미숙하고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또한 그 과정에 상처받고 실망했을 전공의 회원들에게 죄송한 마음과 큰 책임을 느낀다. 매일을 밤을 샜지만 하루도 평온한 날이 없었다. 가까이 소통하고 자세히 설명하고 싶어도 마땅한 기회를 찾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협상 내용이 대외비였고 시도 때도 없이 변했다.
그러나 모든 변명을 차치하고서라도, 대전협 내부의 자정작용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부족한 소통구조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 이런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발전적인 방향을 논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파업과 의정합의에 대한 후유증이 크다. 나의 부족함으로 이런 일들이 벌어진 것이 아닌지 수도 없이 스스로를 자책했다. 정의를 실현함에 있어 옳고 선한 가치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최근 자주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악할 수도 있는 '정치적 부분' 등이 추가적으로 고려돼야 했던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됐다.
이번 투쟁을 통해 얻은 것도 분명하다. 이번 단체행동은 의료 최전선에 있는 전공의들과 예비 의사들인 의대생들이 대한민국 의료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점도 긍정적인 측면이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고 험한 것 같다. 끊임 없는 관심과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나 또한 젊은 의사들과 의대생들이 꿈꿨던 '옳은 가치'와 '바른 의료' 에 대해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낼 것이다.
모두가 다시 하나 될 수만 있다면, 이로 인해 의료사회의 정의를 구현해 낼 수만 있다면 나는 그 무엇도 아깝거나 두렵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