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우리나라 ‘응급실 뺑뺑이’ 문제의 도화선이 된 2023년 대구 17세 낙상환자 사망 사건의 최초 진료 병원인 대구파티마병원이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처분 취소 소송에서 패소했다.
재판부는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적절한 진료를 제공할 수 없어 불가피하게 수용을 거부했다는 병원의 주장에도, 환자를 처음 대면한 병원이 충분한 환자 평가를 통해 정확한 중증도 분류를 하지 않은 채 내린 결정은 정당한 사유 없는 ‘응급환자 수용거부’라고 판단했다.
대구파티마병원, 정신과 진료 및 입원 불가로 1차, 2차 수용 거절…복지부 “응급의료법 위반”
최근 서울행정법원 제5부는 대구파티마병원 운영 재단인 툿찡포교 베네딕도수녀회가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등 처분 취소 청구를 기각했다.
지난 2023년 3월 19일 대구에서 4층 건물 높이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를 당한 만 17세 A양이 119구급대로부터 구조됐다. A양은 구급대 구조 당시 좌측 후두부에 부종이 있고, 우측 족관절 부위의 통증을 호소했으나 의식이 있어서 간단한 대화가 가능한 상태였다.
구급대는 병원병상 정보시스템으로 확인한 결과 사고 현장에서 최인근 병원인 대구파티마병원에 수용이 가능함을 확인하고, 해당 병원으로 A양을 이송했다.
대구파티마병원의 응급의학과 전공의는 이 사건 A양을 대면하면서 구급대로부터 ‘이 사건 환자가 2~3m 정도 높이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측되고, 구급대가 측정한 활력징후는 안정적이다’라는 정보를 들었다.
다만, A양에게 자살 시도가 의심된다는 정황을 들은 전공의는 ‘신체적 상태보다 정신과적 응급치료가 우선으로 보이는데, 이 사건 병원은 폐쇄병동이 없어 정신과적 진료는 불가하니 폐쇄병동 입원이 가능한 대학병원으로 이송하라’고 제시했다.
결국 구급대는 이날 오후 51분경 해당 병원으로부터 1차 수용 거절을 당하고, 여러 병원에 유선으로 A양의 수용 가능성 여부를 확인했으나, 다른 중증환자들로 인해 수용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구급대는 오후 3시 20분경 재차 대구파티마병원에 유선으로 수용 가능성 여부를 확인했으나 ‘이 사건 병원 응급실에서 정신과 진료 및 입원이 불가해 수용할 수 없다‘는 답변과 함께 2차 수용 거절을 당했다.
구급대는 오후 4시 29분경까지 수용할 병원을 찾다 대구가톨릭대병원으로 A양을 이송했는데, 인계 과정에서 심정지가 발생해 결국 A양은 오후 6시 27분경 저혈량성 쇼크 추정 심정지로 사망했다.
해당 사건 이후 복지부는 대구광역시, 소방청과 합동으로 A양의 이송이 의뢰됐던 대구파티마병원을 비롯한 의료기관과 구급대, 119구급상황관리센터 등을 대상으로 현장조사 및 서면조사를 실시했다.
이를 기초로 복지부는 대구파티마병원이 응급의료법에 따른 중증도 분류 의무를 위반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의료를 거부했다며 시정명령 및 이에 따른 보조금 중단처분, 과징금 부과 처분을 내렸다.
병원 “A양 대면진료 후 타 병원 이송 제안했다”…법원 “충분한 중증도 평가 이뤄지지 않아”
대구파티마병원은 “구급대가 이 사건 병원에 1차 수용 문의를 했을 때, 병원 의료진은 A양을 대면해 병력 청취 및 증상 등에 대한 문진과 수상부위 확인 등 시진 등을 시행했다”며 “그 결과 A양의 외상 중증도가 높지 않고 정신의학적 중증도가 높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에 정신과 치료가 가능한 다른 의료기관에서의 진료가 더 적절하다고 판단해 이송을 제안했다”며 “병원 의료진이 응급의료법에 따른 중증도 분류를 시행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한 이 사건 처분은 그 처분사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처분사유 부존재를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대구파티마병원이 A양에 대해 활력징후를 측정하거나, 외상 등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등 첫인상 위험도 평가 등을 시행했다는 주장과 달리, 병원 의료진은 A양을 들것에서 내리지 않은 상태로 5분 남짓 대면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병원 의료진은 A양에 대해 중증도 분류를 실시하고 응급진료가 필요한 상황인지 여부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 만연히 구급대가 전달한 A양의 상태와 사고 경위만을 기초로 응급환자인지 여부 내지 진료과목을 결정한 다음, 외상이 심각하지 않으니 정신과적 진료가 가능한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라고 하면서 이 사건 병원에 수용을 거절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대구파티마병원은 A양에 대해 이러한 경우 중증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고 행정 편의상 관행이라는 이유로 환자를 대면하지 않은 의료진이 중증도 등급을 가장 낮은 5등급으로 입력한 후 접수를 취소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A양은 대구파티마병원 의료진을 대면한지 불과 1~2시간만에 대구가톨릭대병원으로 이송하는 도중 심정지가 발생해 사망에 이르렀고, 재판부는 1차 수용문의 당시 A양의 외상이 중증도 5등급의 정형외과 하지 손상뿐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법원 “제대로 된 중증도 분류 시행됐다고 볼 수 없는 한, 정당한 응급의료 거부 사유로 볼 수 없어”
대구파티마병원은 이어 “구급대는 이 사건 병원에 2차 수용 문의 당시 A양의 생체징후 저하, 의식상태 변화 등 외상으로 인한 상태 변화 등에 대한 정보는 전혀 제공하지 않은 채 단지 이 사건 응급환자가 정신과 진료는 나중에 받을테니 외상 진료만 받을 수 있는지 문의했다”며 “이에 병원 의료진은 A양의 상태가 이전 진료와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해 정신의학적 중증도가 높은 A양의 수용이 어려우므로 2차 수용거절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원은 “따라서 병원 의료진이 2차 수용문의에 대해 정신과 진료 불가능을 이유로 수용이 어렵다고 거절한 것은 구급대의 불충분한 정보 전달로 인한 것”이라며 “정당한 사유에 의한 응급의료를 거부한 사례”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응급의료종사자가 응급의료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는 의사가 응급환자에게 필요한 타 전문과목 영역 또는 고난이도의 진료를 수행할 전문지식 또는 경험이 부족한 경우, 응급환자에게 적절한 응급치료를 할 의사가 부재중이거나 신병으로 인해 진료를 행할 수 없는 상황인 경우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어디까지나 응급의료종사자가 응급환자에 대한 기초 진료를 통해 제대로 중증도 분류를 시행하였음을 전제로 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대구파티마병원이 1차 수용 문의 당시 제대로 된 중증도 분류를 시행하지 않은 채 당시 구급대가 전달한 정보만으로 A양의 외상이 심각하지 않고 자살시도로 추측되므로 정신의학적 중증도가 높다고 판단한 후, 병원이 정신과 치료가 불가능하므로 수용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봤다.
따라서 2차 수용문의에서도 마찬가지로 1차 수용 문의 당시의 제대로 되지 않은 중증도 분류를 토대로 정신과 치료가 불가능하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2차 수용거절을 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재판부는 “제대로 된 중증도 분류가 시행됐다고 볼 수 없는 이상, 정신과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사유는 이 사건 응급환자에 대한 응급의료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로 인정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구급대가 대구파티마병원 의료진에 2차 수용문의를 하면서 A양의 외상으로 인한 상태 변화 등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환자의 보호자도 외상에 대한 치료를 먼저 받을 것을 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병원에서 정신과적 치료는 물론 외상에 대한 응급치료가 수용 능력의 한계 등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며 구급대가 이러한 정보를 전달했다”며 “병원이 재차 정신과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A양에 대한 응급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재량권의 이탈·남용에 대한 문제도 “대구파티마병원은 두 차례에 걸쳐 수용 거절을 했고 결국 이 사건 응급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해 비난 가능성이 크다”며 “해당 처분은 시정명령 기간 동안 응급의료법에 따른 재정 지원을 중단하고 업무정지를 갈음해 과징금 부과를 명하는 것으로 병원 운영에 전면적 제한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해당 처분으로 공익과 병원의 불이익 사이에 현저한 불균형을 초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