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벌써 2019년 마지막 날입니다. 올해 메디게이트뉴스를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 해동안 독자들이 많이 본 뉴스를 살펴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교수, 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 故 신형록 길병원 전공의 등까지 모두 의사들의 ‘죽음’과 관계된 것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의사가 환자와 보호자로부터 의료소송을 당하거나 진료실에서 폭행을 당하는 등의 사건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회부 기자와 같은 활동은 여전했습니다.
독자들의 관심을 바탕으로 의료기자로 일하면서 올해 기억에 남는 취재 순간들을 꼽아봤습니다. 분주하긴 했지만, 주로 안타깝고 아쉬운 장면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①故임세원 교수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올해 첫날부터 지난해 12월 31일 피습된 임세원 교수의 죽음이 충격적으로 전달됐습니다. 목격자들에 의해 알려진 당시 상황은 끔찍했습니다. 임 교수는 그 순간에도 “모두 도망치세요”라고 외치는 의로운 분이었습니다.
임 교수께서 남긴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라는 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 나온 내용을 보고 그의 실명을 처음으로 공개하는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관련기사="평생 환자를 위해 헌신하신 故 임세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을 추모합니다"]
그의 책을 몇 날 며칠씩 반복해서 읽어보면서 환자들을 위한 그의 깊은 고민을 어렴풋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선생님은 제 병(우울증)을 몰라요"라는 환자들의 한 마디가 무척 괴로웠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이런 의사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감사했고 그래서 그의 죽음이 더 안타까웠습니다. 진료실 폭행이 근절되고 정신질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②이대목동병원 “00아빠, 00를 살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의 피고인 의료진 7명은 2월 21일 열린 형사 1심에서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최종 선고 전 피고인 마지막 진술에서 조수진 교수는 유족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00아빠, 00를 살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관련기사=이대목동병원 의료진들도 법정에서 눈물바다…"00아빠, 00를 살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한동안 이 장면이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의료 현실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죄가 있다면 분명한 죗값을 치러야겠지요. 하지만 이번 사건은 무슨 죄인지 불확실합니다. 재판부도 "분주 과정에서 시트로박터 프룬디균 감염과 신생아들 사망과의 인과관계가 불확실하다"고 했습니다.
"잘못은 했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는 유족의 말에도 공감합니다. 이대목동병원 경영진이, 아니면 이런 시스템을 방치한 정부가 책임있는 자세를 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후속대책으로 감염관리 수가가 일부 반영되긴 했지만, 중환자실에서 근무할 의료진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더군다나 이 사건으로 근무하는 의사들의 사기는 심각하게 떨어지고 지원자는 더 줄었다고 합니다.
앞으로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병원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지 아직도 의문일 따름입니다.
③무면허 의료행위 경찰 제보
올해 PA(Physician Assistant, 진료보조인력)들의 무면허 의료행위 문제가 상당한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하반기 들어 경찰과 검찰이 병원을 상대로 대대적인 조사를 하는가 하면 각종 고발도 있었습니다. PA가 각종 의료행위에 참여한다는 크고 작은 제보가 이어졌습니다.
그 중 두 건의 제보는 매우 심각해 보였습니다. 한 건은 PA가 해서는 안되도록 규정된 시술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한 건은 의료기기업자가 절개부터 봉합까지 수술 전체를 시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제보는 당장의 기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경찰에 제보했습니다. 제보자들이 혹시라도 보복을 당할까봐 주저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당신도 그렇고 당신의 가족들이 무면허 의료행위를 받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료행위를 하는 사람이 의사라고 착각하고 몸을 맡기겠죠. 만에 하나 의료사고가 나면 어떻게 될까요. 응급상황에 대한 대처는 가능할까요. 그리고, 의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시술과 수술을 하는 병원이 더 잘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합니다. 적어도 지금처럼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하거나 눈 감는 의사가 더 돈을 버는 행태는 막아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의사들이 늘어날 수 있고 국민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습니다.”
④조용히 묻힌 삼성서울병원 고원중 교수의 죽음
故신형록 전공의의 죽음은 유족과 대한전공의협의회의 도움으로 공론화될 수 있었습니다. 힘겹게나마 과로사로 판정돼 결국 산재로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삼성서울병원 고원중 교수가 8월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조용히 묻혀버렸습니다.
고원중 교수는 평생 결핵과 비결핵 항산균 연구에 매진해온 세계적인 대가입니다. 8월 말에 병원을 사직하기로 해서인지 관행적으로 한달 이내에 열리는 임직원 추모식마저 열리지 않았습니다. 고 교수 유촉측의 요구로 4개월이 지나서야 병원이 아닌 일원역사에 따로 마련된 의대에서 조촐한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고 교수의 유족은 전직 과장 등에 사과를 요구했지만 이들은 추모식에조차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관련기사=故고원중 삼성서울병원 교수 유족 "병원에서 모난 돌로 비춰진 아버지의 억울함 풀겠다"]
고 교수 사망 사건이 일어났을 때 측근 교수들이 불행한 소식을 전하며 “유족을 만나보라”라고 권유했습니다. 그리고 8월 말에 만났던 고 교수의 아들은 최대한 아버지 이름에 누가 되지 않기 하기 위해 지난 4개월간 침착하게 대응했습니다.
고 교수 측근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고 교수에게는 전국적으로 치료가 어려운 결핵과 비결핵 폐질환 환자들이 몰려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환자들이 많아도 병원 수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 교수는 환자들의 기록을 정리하고 연구까지 하느라 번아웃 상태에 빠졌는데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고 교수의 아들은 추모식에서 "앞으로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고 교수는 항간에 들렸던 소문처럼 우울증으로 치료받은 적은 없고 가족들, 동료들과도 사이가 좋았다고 합니다. 그의 죽음이 이대로 묻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소외된 질환이더라도 환자를 위해 헌신하는 의사들이 인정받는 환경을 조금이라도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⑤한방,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This is not science)
영국의 생물통계학자가 SCIE 등재 저널인 '메디신(Medicine)에 의뢰된 한방 난임 논문 심사를 거절하며 트위터에 올린 글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임상연구도 아니다. 터무니 없다”라는 글이었습니다. [관련기사=한방,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종합)]
하지만 한의계와 보건복지부는 오히려 논문 심사자의 연구출판윤리 위반으로 몰아갔습니다. 심사자가 아니라 저널 에디터가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국 학자는 “사기꾼들이 자신의 업적을 쌓기 위해 비윤리적인 연구를 하는 것을 더 걱정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본지의 이메일 질의에도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CT)을 하지 않은 연구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결국 해당 논문은 저널에 게재되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지적은 국가적 망신과 다름 없습니다. 한방난임 연구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 받은 다음에 정부 사업을 지속하거나 건강보험 등재를 검토하길 바랍니다.
⑥아주대의료원 임상교수 노조 설립
전공의법 통과와 늘어나는 당직으로 의대 교수들의 삶도 녹록치 않아졌습니다. 마냥 인력 채용을 할 수는 없으면서도 수익 압박을 받는 이중고에 놓여있습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주대의료원은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임상교수 노조를 출범했습니다. 올해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교원이 아닌 진료교수의 교섭단위를 분리하는 것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교원인 의사는 노조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합니다. [관련기사=대학병원 임상교수 노조 왜 필요한가…국가·사회는 연구와 교육을 중시하지만 정작 수익에 내몰리는 현실]
아주대의료원 교수노조는 교원까지 노조법 적용대상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재성 교수(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아주대의료원 분회장)를 중심으로 행정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와 별도로 헌법재판소는 전임교원을 노조로 인정하지 않는 현행 교원노조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고, 내년 3월까지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토대로 아주대병원 교수회는 11월 병원에 연차수당 지급을 요구하고 근로감독을 신청했습니다. 의대 교수라고 하더라도 휴가라는 기본권은 매우 중요하며 수당 등도 챙겨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비록 힘겨운 싸움이지만 의대 교수들의 권익 보호가 이제 막 시작됐다고 봅니다.
⑦최대집 의협회장 불신임안 상정
대한의사협회 회장 불신임안이 매 집행부마다 올라가는 것이 바람직한지 여부는 개별적인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제40대 의협 집행부에 느낀 점은 대한병원의사협의회 등 집행부를 비판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매우 싫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갈수록 의료계 중요한 인사들조차 “내 말도 이제 전혀 안통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임시대의원총회를 발의한 박상준 대의원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를 들면 언젠가 “의협이 분석심사에 찬성하는 분위기였다”고 회의에 참석한 한 관계자로부터 제보를 받았습니다. 이를 의협에 확인하려 들면 확인할 수 없거나, 부정하는 한 마디가 전부였습니다. 대변인은 “예민하고 어려운 질문만 한다”라며 답변을 피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기사가 쌓이다 보니, 의협 일부 임원들이 서서히 저를 악의적 왜곡 보도를 하는 기자로 몰아갔습니다.
의협 출입기자는 의협 보도자료만 쓰는 기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기자로서 개인적인 생각을 집행부에 질문하지 않습니다. 의사 회원들의 관심사를 파악하거나 다른 의사단체 등으로부터 제보를 받고 회원들 대신 의협 집행부에 문의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거칠 뿐입니다. 의협으로부터 '악의적 왜곡 보도'라는 공문을 받았던 때도 행사 당사자와 다름 없는 전공의가 "일의 경중을 따지지 못했다"고 제보한데 따른 것이었습니다. [관련기사=국정감사에서 한마디 하고 급히 자리를 뜬 최대집 회장, 알고보니 광주 전공의의날 참석?]
대의원회는 12월 29일 임시대의원총회에서 집행부에 힘을 실어줬지만 남은 1년 4개월간 집행부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는 더 커질 것입니다. 집행부는 정책적 이슈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각종 질의를 받을 때 상세히 설명해서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친집행부와 반집행부 성향을 떠나 의료계 인사들로부터, 회원들로부터 집행부가 인정받고 사랑받는다면 있는 그대로 다루겠습니다.
이 밖에 올해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진료 외에 남는 시간을 모두 대정부 정보공개청구와 민원에 바치고 있는 바른의료연구소 김성원 고문, 매일 3~4시간씩 할애해 ‘의료계 주요 뉴스'를 전달하는 전라북도의사회 김재연 정책이사 등 자기 자신을 희생해가며 의료계를 위해 묵묵히 뛰는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모르는 것을 물어볼 때마다 친절한 설명을 아끼지 않는 여러 선생님들께도 감사합니다. 제가 의료계에서 일하는 가장 커다란 동력은 취재원분들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한 배움과 깨달음이 아닐까 합니다.
매주 냉철한 의료제도의 현실을 만화로 잘 표현하는 배재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겸 작가, 신약개발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진솔하게 전해주는 배진건 박사 등을 비롯해 칼럼 기고를 해주신 전문가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메디게이트뉴스의 칼럼을 모아 발간한 ‘사람을 살리는 신약개발-배진건 배진바이오사이언스 대표 저’, ‘유전체, 다가온 미래의학-김경철 강남메이저병원(구 강남미즈메디병원) 경영원장 저' 책이 올해 '우수과학도서'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습니다.
내년에는 의료계에 보다 밝고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소식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계속해서 열심히 뛰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