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국내 확진자가 늘어남에 따라 역학조사관들도 비상이 걸렸다.
현장 방역과 더불어 확진자들의 동선과 접촉자 확인이 중요해졌지만 이에 따른 충분한 인력이 없는 것이다. 역학조사관에 대한 추가 인력 충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우려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개선이 미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역학조사관은 감염병의 원인과 특성을 밝혀, 감염병 유행을 차단하는 방법을 찾는 역학조사 전문가다. 2015년 메르스(MERS)이후 감염병 예방법을 개정해 보건복지부 30명 이상, 17개 시·도별 2명 이상씩 역학조사관을 두도록 했다.
이에 따라 역학조사관의 권한도 강화됐다. 역학조사관은 확진 환자로부터 오염됐다고 인정된 장소를 일시적으로 폐쇄하거나 출입금지 조치를 내릴 수 있다. 이를 어길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 등 형사처벌 받게 된다. 최소한의 기초적인 법적 밑바탕은 마련된 셈이다.
11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역학조사관은 질병관리본부와 시‧도 소속을 모두 합쳐도 120명 남짓에 불과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문제는 더 심각한데, 질본에서 근무하는 중앙역학조사관 77명 중 역학 업무 전문성이 있는 전문임기제 인력은 정원 43명보다 11명 적은 32명에 그쳤다. 이 중 6년 이상 경력이 있는 의사 출신 '가'급 역학조사관은 3명뿐이었다.
부족한 인원은 일반 공무원 중에서 교육을 통해 역학조사관 업무를 수행토록 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자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시‧도 역학조사관 중 전문임기제 인력은 8명뿐이고 상당수를 공중보건의사들이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짧게 일하고 나가니 전문성 쌓이지 않아…한계 명확”
이처럼 유명무실한 역학조사관 제도가 이어지고 이유로는 임금, 불안정한 신분 등 부족한 처우가 1순위로 꼽힌다.
현재 역학조사관 대부분은 공무원 신분이 인정되지만 2년 단위로 재계약을 해야 하는 계약직 신분이다. 특히 보수도 민간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일반 의료인들과 비교해 매우 적은 편이라는 지적이다. 의사 출신의 '가'급 전문임기제 역학조사관의 경우 연봉 하한액이 5600만 원 수준이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의사 출신 역학조사관의 급여수준이 낮고 이들의 신분이 단기 계약직이다보니 이들의 역량을 키우는데 한계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기모란 대한예방의학회 총무이사(국립암센터 예방의학과 교수)도 "현재 국내 역학조사관 제도는 목표의 60%밖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공보의와 단기계약직 조사관으로 구성된 이들은 짧게 일하고 나가버리니 전문성이 쌓일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감염병 사태는 분명 또 일어날 것이고 역학조사관이 할 업무는 오히려 많아질 것이다. 이 때문에 투자 증대는 필수다. 정부는 향후 문 앞에서 지키는 조사관들이 아닌 미리 대사관 등 현지에 나가 감염 유행 사태를 파악하고 선제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학조사관 공백 매우는 공보의들도 ‘고충’ 토로
이와 함께 부족한 역학조사관의 공백을 매우고 있는 공보의들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 상황이다.
조중현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회장은 "최근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접촉자에 대한 조사도 증가했다. 인력이 부족해서 추가 근무는 기본이고 지자체에서 추가 파견까지 요청한 상황이다. 고충이 많다"고 말했다.
김형갑 대공협 정책‧법제이사(대공협 차기 회장 당선자)는 "현재 역학조사관으로서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공보의들의 사례를 수집 중"이라며 "자료가 정리되는 즉시, 문제 개선을 위해 앞장설 것"이라고 전했다.
대공협에 따르면 현재까지 18명의 공보의가 시‧도 역학조사관으로 파견된 상태다. 그러나 증상 의심자가 늘면서 파견 인력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조 회장은 "감염사태 서브인력으로서 공보의들의 사전 교육 등에 대해서는 지난해부터 지자체와 논의가 오고갔다"며 “지난 주 시도 대표들과의 회의에서 필요 인력을 미리 추계해 선제 대응하는 방향을 모색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역학조사관으로 파견된 공보의들은 현장에서 추가 근무로 인한 피로가 상당한 것으로 안다. 또한 추가수당과 숙식문제 등도 해결되지 않은 곳이 있다”면서도 “상황이 급박한 만큼 의사로서 권리보다 당장 부족한 조사관의 공백을 메우자는 내부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