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의대생들은 인공지능으로 미래 의사의 역할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의대에서 관련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메디게이트뉴스는 17일 오후 의대생신문 기자들과 의대 특성화실습을 나온 본지 인턴기자를 대상으로 기자교육을 진행했다. 외부특강의 한 세션으로 신간 ‘의료 인공지능’을 펴낸 최윤섭 디지털헬스케어연구소장을 초대해 저자와 의대생들 간 독서토론을 진행했다. 참석하는 의대생들에게 책을 미리 보낸 다음 읽어오도록 했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자신들의 미래에 미칠 영향에 대한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의대생들은 ‘인공지능이 의사로서 자신의 미래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에 대한 질문에 ‘아주 크다’와 ‘크다’에 대부분 손을 들었다. ‘보통’은 물론 ‘거의 없다’ ‘전혀 없다’에 손을 든 의대생은 없었다.
최 소장은 “실제로 의대생들을 만나보면 인공지능을 배우면 좋겠다고 말한다”라며 “의대생들은 현재의 교육만이 아니라 변화의 흐름을 읽고 미래를 살아가야 하는 세대”라고 했다. 최 소장은 “기술의 발전으로 미래 의사의 역할이 바뀔 수 있다. 의대생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라며 "의료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의대생 8명과 최윤섭 소장 간 인공지능과 관련한 질의응답의 주요 내용이다.
-의대생들이 의대만의 교육을 받아 인공지능 시대에서 성장할 수 있을까. 모학교는 의대와 공대를 합쳐 융합 형태로 운영해보자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한다. (오윤서 본1)
"인공지능의 교육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 분야 자체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의대생들은 거의 임상을 하길 원하고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다른 일을 하더라도 임상과 병행하려고 한다.
의료산업 자체가 성장하고 있다. 의사들의 역할을 필요로 하는 곳이 늘고 기회도 많아지고 있다. 현재 의대생들은 부모님 세대에서 생각하는 의사상을 보고 의대에 오는 경우가 많다. 이미 의사의 역할이 전환되고 있고 과거의 사회적인 지위에서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의사의 역할을 진료에 국한하지 않을 수 있다. 의사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다만 현재는 의사와 공학자들이 협업을 하려면 서로간의 거리가 있어서 쉽지 않다. 앞으로 서로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을 한다면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고 본다."
-인공지능이 의료기기로 허가를 받는다면 IBM의 인공지능 ‘왓슨’ 등을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할 때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도 자동으로 업데이트되도록 연동할 수 있지 않나. 인공지능 자체가 의료기기인지 아닌지부터 많이 혼동된다. 여기서 규제의 흐름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유현수 예1, 김준엽 예1)
“의료기기 여부는 사용 목적과 위해도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인공지능이 진단과 치료에서 의료기기로 허가를 받으려면 그에 따른 임상 근거가 있어야 한다.
다만 미국은 지난해부터 FDA의 사전인증을 받은 기업에 한해 출시 이전의 규제를 아예 면제 받거나 간소화할 수 있도록 규제를 변화시켜 나가는 중이다. 출시 이후에도 필요하다면 FDA의 규제 절차를 거친다.
왓슨 등이 주기적으로 업데이트가 이뤄진다면 아예 새로운 종류의 알고리즘이 될 수 있다. 기존의 규제에서는 매번 새로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인공지능을 규제하는 방식 자체를 변화시킬 필요도 있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특성으로 '감정' 요인이 있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학습할 수 있을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공지능은 기계학습을 기반으로 한다. 기계학습이라고 하면 기계에 입력하는 다량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르치는 것이다. 특정 문제를 정량화해서 인공지능을 가르칠 수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봤던 IBM의 연구 중에 편지에서 감정을 파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메일 문장에서 기쁨 10%, 슬픔 40%, 분노 5% 등의 식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이렇게 분석하려면 분명한 문장에 대해 사람이 직접 매긴 정량적인 감정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목소리에서 판독하는 우울증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이 만든 트레이닝셋이 있어야 한다. 만약 인공지능이 스스로 데이터를 찾으려면 현재 기계학습 기반의 약한 인공지능이 아닌 '강한 인공지능'이어야 한다. 강한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을 가지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데, 아직 구현되지 않았다."
-현재의 인공지능에서도 기계학습을 시킨 다음 인공지능이 알아서 감정을 분류할 수 있지 않을까. (조한슬 예1)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서 사람의 감정을 정량화할 수 있을까. 특정 환자가 얼마나 우울한지를 점수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주로 주관이 많이 들어가는 정량화 과정으로 알고 있다. 아직까지 이런 방법을 인공지능 개발에 활용하기에는 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본다."
-앞으로 몇 년 이내에 강한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할 것인가. 일부 의사들은 인공지능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이는 현재의 인공지능이 아닌 강한 인공지능을 두려워해서 막자는 것이 아닌가.(이영민 본3·의대생신문 편집장)
"특이점(Singularity) 주의자들은 강한 인공지능은 2045년쯤에 도래할 것으로 예측한다. 그 시기를 더 이르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런 논의는 가설에 가설을 더해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인공지능은 막으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새로운 기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부분을 자세히 알려면 '파이널 인벤션'이나 '슈퍼 인텔리전스' 책을 추천한다."
-인공지능이 의료에 도입되고 이로 인해 역할이 제한되는 의사와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선도하는 소수의 의사로 나뉠 것이다. 앞으로 인공지능을 주도적으로 연구하고 이끌어가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김경훈 본2)
"일단 주도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현재의 의사는 50년 전에 비해 주도적인가. 정말 의학적인 판단에 따라 자신의 소견대로 진료할 수 있는가. 국민건강보험제도 체계에서는 '의사가 주도적'이라는 단어를 쓰기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새로운 기술을 사용한다고 해서 주도권을 갖거나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다빈치 로봇수술 개발에 참여하는 의사는 소수지만 다빈치를 이용하는 의사는 많다. 이 때 다빈치를 쓴다고 해서 의료로봇의 주도권을 잡는 것인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인공지능을 진료에서 사용했을 때 의사의 주도권 수준은 다양한 변수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을 진료에 어떻게 활용할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인공지능을 진료현장에 누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를 결정하려면 결국 근거가 필요하다. 이는 앞으로 의료계가 어떻게 할지에 대해 달려있다. 의료계 입장에서는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다니는 의대 예과에서 선택 교양으로 모바일 앱 개발을 도입한다고 들었다. 의대에서 코딩교육 등을 의무화해야 할 것으로 보나.(허재영 본1)
"코딩교육 등을 모든 의대생들이 의무적으로 수강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공선택과목 정도로 관심이 있는 의대생들이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은 준비돼야 한다고 본다. 아주 기본적인 코딩이라도 해보면 프로그램이 어떻게 돌아간다는 것을 대략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딥러닝을 배운다고 할 때 학습목표는 개발자와 말이 통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의사가 수퍼맨처럼 개발자까지 되려고 한다면 목표 달성 가능 여부는 둘째치고 의사로서 본인의 장점을 살리지 못할 수 있다. 수퍼 개발자와 같이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의 기준을 통한 처방 등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는가. (조한슬 예1)
"지금의 패러다임에서는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의사다. 인공지능은 소프트웨어일 뿐이다. 하지만 결국은 수가 문제로 귀결된다. 행위별 수가제에서는 사람이 하는 게 행위다. 몇몇 국가에서는 인공지능의 판독과 결정 과정에 수가를 매길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인공지능의 처방 등 의사결정이 의료행위 및 수가로 연결될 수 있을지 봐야 한다.""
-인공지능을 도입하면 환자가 의사에게 불신을 가질 수도 있지 않나.(이규원 본4·메디게이트뉴스 인턴기자)
"의사가 인공지능의 보조를 통해 더 신뢰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 역시 의사가 인공지능을 활용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의료전달체계가 무너진 한국에서는 암 환자들이 전부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몰려온다. 지방 병원들이 암 진단과 치료를 위한 인공지능인 '왓슨포온콜로지'를 도입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왓슨을 도입한 이후에 환자 신뢰를 얻고 병원을 홍보해서 환자가 유출되는 것을 막아보자고 하는 것이다.
이 때 환자들도 보다 합리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왓슨은 아직 임상적인 근거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IBM 입장에서도 왓슨에 대해 임상 연구에 기반한 근거를 갖추고 이에 따른 진료 가이드라인이나 원칙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의사나 환자 모두 생각해볼 과제다."
-우리나라도 이른바 '한국형 왓슨'을 만들면 어떤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가.(오윤서 본1) 여기에 다른 나라의 데이터를 넣는다면 진단 정확성을 높일 수 있지 않나. (조한슬 예1)
"한국 의료시장은 너무 작다. 이 때문에 인공지능은 결국 해외시장으로 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형 인공지능은 반대한다. 국내 환자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국내 병원에서 사용하는 데 그칠 것이다. 뷰노, 루닛 등 국내 대표적인 의료 인공지능 스타트업들도 세계 시장을 보고 뛰고 있다.
예를 들어 흑색종(멜라노마) 판독을 위한 인공지능을 보자. 개원가 피부가 전문의가 많은 한국에선 이런 인공지능의 의미가 없을 수 있따. 하지만 피부과 전문의가 없는 아프리카라면 인공지능을 통한 진단 보조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인공지능은 국가별로 진료과별로 세분화해서 살펴봐야 한다. 천편일률적으로 의미를 가지는 인공지능은 없다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이 개발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낮은 가격으로 의료서비스 혜택을 전달할 수 있나.(조한슬 예1)
"’의료의 민주화’는 왓슨을 개발한 IBM이 제시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우 의료전달체계가 워낙 잘 돼있다 보니 환자들이 동네 병원에 먼저 가서 진료를 받아야 나중에 대학병원까지 갈 수 있다. 일차 의료기관에서 희귀 암종을 진료해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때 왓슨의 도움을 받아 더 나은 진료를 받게 해주겠다는 것이 IBM의 설명이다.
혹은 종양내과 전문의가 부족한 제3세계 등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이를 활용해볼 수 있다. 다만 실제로 왓슨포온콜로지가 이런 방식으로 판매되지 않았다. 이론적으로 의사가 부족한 곳에 인공지능을 도입하면 의료의 민주화는 가능하지만, 이 역시 비용이 든다. 의사가 부족한 곳에서 그만큼의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인공지능을 통한 진단과 치료의 최종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 (오윤서 본1)
"아직은 책임을 논의할 만한 사례가 별로 없다. 최근에서야 인공지능이 의료기기로 인허가를 받기 시작하는 정도다. 이후 진료에 활용하면서 다양한 사례들이 나오게 될 것으로 본다.
다만 인공지능이 아니더라도 의료사고가 발생해서 법적 분쟁으로 가면 의사의 책임이 0%는 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는 의사가 개입을 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공지능이 얼마나 개입했는지, 어떤 임상적인 목적과 맥락에서 활용됐는지 등에 따라 의사와 인공지능의 책임 정도가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