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등 의료개혁이 아이러니하게 지방 필수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공공병원의 붕괴를 촉진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5년간 국가 예산 10조원을 투입하는 의료개혁을 예고하고 있으나 정부의 의료개혁 1차 실행방안은 상급종합병원 손실 보상에 불과한 내용으로 허리 역할을 하는 종합병원과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에 대한 방침은 전무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30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국회 앞에서 '올바른 의료개혁! 지역 필수의료 붕괴, 공공병원 살리는 재정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이같이 지적했다.
이날 보건의료노조는 정부가 코로나19이후부터 지역 필수의료를 책임지고 있는 지방의료원을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노조가 지방의료원에 대한 정부의 코로나 손실보상금을 2020년부터 2023년까지의 결산자료로 파악한 결과, 손실보상금은 총 1조 5935억원으로 4개년 누적 의료 손실 2조 988억원의 76%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충분히 손실보상 했다는 정부의 주장이 명백한 거짓으로 확인된 것이다.
문제는 코로나19 이후 손실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의대 정원을 증원하면서 발생한 의료대란 이후 지방의료원의 의료 손실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노조가 올해 상반기 결산자료를 확인한 결과, 2024년 한 해 동안 35개 지방의료원의 의료 손실은 5281억원으로, 당기순손실만 2510억원으로 예측된다.
이는 기관당 151억 원의 의료 손실과 72억 원의 당기순손실 규모다. 이러한 전망치는 올해 예산으로 지원되는 '공공병원 경영혁신 지원사업' 지원금 876억 원(국비 50%, 지방비 50%)을 반영한 것이었다.
노조는 "전국의 35개 지방의료원이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부터 5년째 5000억대 의료 손실을 이어가고 있다. 거의 제자리 수준의 회복세다. 정부가 외면하는 경영난으로 누적된 차입금이 1262억 원이고, 올해 새로 발생한 차입금이 310억 원이며 한 해 이자로만 40억 원 이상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방의료원 현장에서는 매달 임금체불을 걱정하는 실정으로 기능 회복도, 역량 강화도 요원한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의사 구인난으로 개설한 진료과목을 모두 운영하는 곳은 35개 지방의료원 중 3분의 1에 불과하다. 우리 노조가 올해 1월부터 8월까지의 병상이용률 추세로 산출한 결과 올 한해 병상이용률은 59%로 2017년부터 2019년까지의 병상이용률 81%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에도 아직 갈 길이 너무나도 멀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의료, 필수의료가 붕괴한 것은 국가가 의료를 시장에 방임한 결과이자 시장 논리로 투자수익률이 낮은 필수 진료과와 지역의료 기피 현상이 굳어진 결과"라며 "이러한 국가의 행태는 지역의료,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추진한다는 의료개혁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5년간 국가 예산 10조, 건강보험 10조를 투입해 지역의료, 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하면서, 지방의료원 관련 예산은 기존 예산을 답습하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정지환 보건의료노조 부산의료원지부장은 "부산의료원은 환자수 급감에 따른 의료수익 저하로 매달 15억 이상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그러나 정부와 지자체가 일부 지원하고 있지만, 이는 현재 위기를 극복할 만한 수준으로는 너무나 부족하다. 운영비 지원의 명목으로 의료원에 경영혁신과 자구책까지 요구하고 있다"며 "의료원장과 경영진도 비상경영, 긴축재정을 선포하고 인력감축, 정원축소, 직원복지 감소 등을 시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현장의 노동자들은 업무고충으로 신음하고 있고, 이는 진료서비스 질 저하로 의료원은 회복불능의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부산의료원은 올해 운영자금 부족으로 3월에 100억의 금융자금을 차입했지만, 끝내 6월에 직원들의 급여가 체불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 지부장은 "다가오는 11월에도 자금을 확보하지 못하면 다시 임금체불을 겪게 된다. 100억 차입으로 인한 부채 증가와 이자부담은 의료원의 경영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며 정부를 향해 "극심한 경영난으로 임금체불을 겪고 있는 공공병원이 정상화에 도달할 때까지 회복기 예산을 지원하고, 공공병원의 안정적인 필수의료 진료기능 유지를 위한 의료진 수급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헌 보건의료노조 남원의료원지부장은 "지방의료원이 행정안전부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한 지 20년이 됐다. 2005년 정부는 지방의료원을 국가 공공의료체계 거점공공병원으로 육성하기 위해서 행정안전부 지방공기업이었던 지방의료원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태껏 제대로 된 육성정책이 추진된 적이 없고, 여전히 착한 적자는 불순한 부채로 취급받으며 지방공기업 시절 독립채산제가 적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 중소도시에 위치한 지방의료원은 인구가 적고 환자 수가 적어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투자수익률이 낮아 민간이 기피 하는 분만, 응급 등 필수의료를 하고, 국가의 여러 공공의료사업을 한다. 이처럼 착한 적자가 불가피한데, 설령 수익이 나더라도 의료역량에 투자하거나 발전을 도모할 수 없고 지금처럼 굉장히 작은 규모로 근근이 유지할 수밖에 없다"며 "지방의료원이 필수의료 기능을 유지하는데 착한 적자가 90% 발생하는 수준이면, 인력․시설․장비 비용을 포함해 병원 단위의 획기적인 지원방안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공공병원 육성책 추진을 촉구했다.
이서영 좋은공공병원만들기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정부는 공공병원 없는 껍데기뿐인 의료개혁으로 발생한 의료대란을 수습한다며 2조3천억 건보재정과 추경예산을 물쓰듯이 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에는 10조원 척척 내놓으면서, 진짜 지역의료를 살릴 공공병원에는 그 10분의 1도 쓰기 아깝다 하는 정부"라며 "35개 지방의료원과 적십자병원 등 기타 공공병원들은 시장의료체계가 버린 지역에서 지역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2차병원으로 고군분투 하고 있다. 무한경쟁 시장체제와 정부의 재정압박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며 역할을 했기 때문에 적자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 당장, 이미 코로나19 떄부터 누적돼 발생한 재정위기를 해소할 수 있도록 당장 내년도부터 지원예산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 행위별 수가제로는 제 역할을 다할 수 없는 공공병원들에는 총액예산제 를 도입하고, 공공보건의료기금을 조성해 공공의료 확충과 강화에 충분한 예산을 보장하는 등 근본적인 공공의료 재정 국가책임 강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