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대한한의사협회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SARS) 사태 당시 세계보건기구(WHO)가 한의약의 효과를 인정하고 의·한방의 협진을 권고했다고 주장했다. 한의협의 주장이 과연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WHO는 한의약 치료의 가능성을 검토했지만 WHO의 공식 입장이 아니며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이 필요하다는 조건이 달려있었다.
한의협은 지난 29일 기자회견을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예방과 치료에 한의약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관련기사:“우한폐렴 치료제 없으니 한의약 치료하자? 근거 없는 주장으로 환자 혼란 안돼”)
이날 한의협 주장의 근거는 WHO가 사스 사태 당시 한의치료 효과를 인정했다는 것이었다. 특히 WHO가 '사스 치료사례 보고서'를 통해 의학과 한방의 협진을 권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중국이 중의약을 적극 활용하는 것은 사스와 메르스(MERS) 사태 당시 한의·양의 협진으로 탁월한 치료성과를 거뒀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며 "WHO는 의료종사자의 사스 감염억제, 임상증상의 개선, 폐의 염증 감소, 산소포화도 개선, 면역기능 활성화, 스테로이드 사용 감소, 사망률 감소 등 12개 임상연구를 통해 한의치료 효과 분석을 발표했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WHO의 사스 치료사례 보고서에는 비상사태 관리 시 의·한방 협진을 권고한다는 입장이 나온다. WHO의 권고에 따라 지금은(우한폐렴 사태) 한의·양의를 가리지 않고 운용 가능한 모든 의료자원을 동원해 대처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해당 발언이 사실인지 파악하기 위해 주장의 근거로 사용된 △2004년 WHO에서 발표한 '사스, 한의약과 의약품의 병용 치료에 대한 임상 시험(SARS, Clinical trials on treatment using a combination of Traditional Chinese medicine and Western medicine)', △WHO에서 2013년에 발간한 'WHO 전통의학 전략 2014-2023(WHO Traditional Medicine Strategy 2014-2023)', △쉐메이리우(Xuemei Liu) 교수가 2012년 발표한 '서양의학과 병행한 중약의 사스 치료 효과(Chinese herbs combined with Western medicine for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SARS))', △란셋에 실린 'ICD-11' 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보고서의 의학 자문은 대한의사협회 한방특별대책위원회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보고서, WHO 공식입장 아닌 중국 정부가 WHO에 제안한 제안서"
한의협 주장의 상당수 이상이 담겨 있는 WHO의 '사스, 한의약과 의약품의 병용 치료에 대한 임상 시험' 보고서를 살펴봤다. 한의학 효과에 대한 긍정적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는 WHO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 중국 정부가 제시한 제안서에 대한 가능성을 검토한 수준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는 "공공보건의 응급상황을 위해 한방의료를 임상 치료 시스템에 도입, 한방의료 자원을 활용하라(p.14). 사스 환자에 대한 의·한방 통합 치료는 안전하다는 충분한 데이터가 있다(p.8)"고 적혀있다.
또한 "이 문서의 목적이 중국 정부가 중의학 임상 연구결과를 알리고 국제 전문가 회의를 통해 해당 연구를 검토, 기록하는 것(p.9)"이라고 명시돼 있다.
즉 해당 보고서는 한방의료에 대한 WHO의 공식입장이 아니라 중국 정부가 기획한 임상 연구 보고와 전문가 회의를 기록하기 위해 작성됐다는 애기다. 오히려 공식 입장이라기보다는 중국 정부가 중국 전통의학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WHO에 제안한 제안서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보고서 8쪽에는 "중국 정부는 사스 환자에 대한 한방 치료의 가능성을 알리기 위해 13편의 임상실험결과를 제시하고 WHO에 전문가 회의 개최를 요청했다. 이 같은 제안에 WHO는 회의에 관한 기록을 보고서로 작성했다"는 대목이 실려있다.
"안전성과 유효성을 강화하고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의학 등 각국의 전통의학에 대한 WHO의 좀 더 명확한 공식적인 입장은 여타 다른 보고서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해당 문서들에 따르면 WHO는 각국의 전통의학이 안전하고 과학적 근거를 갖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WHO는 'WHO 전통의학 전략 2014-2023' 보고서를 통해 "전통·보완의학(T&CM(traditional and complementary medicine)에 대한 지식적 기반을 구축하고 기술개발을 통해 전통의학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해야 한다(p.59)"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구체적으로는 정책 개발과 규제, 교육의 발달 등으로 품질 보증을 이뤄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특히 'ICD-11(국제질병분류)'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5월 WHO 총회에서 테드로스 아드하놈 WHO 사무총장은 "(ICD-11 개정이 승인되면서) 전통의학이 주류의학에 들어간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통의학 치료의 어떤 형태도 참고하거나 지지하지 않는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의‧한방협진, 사망률 감소와 무관하고 연구 근거도 취약"
논문은 "640명의 사스 환자에게 12종의 한의약이 사용됐다"며 한의협의 주장과 같이 “한의약이 임상증상 개선, 폐 염증 개선, 스테로이드 사용 감소 등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때 각 문단에는 모두 'may'라는 단어를 사용해 완곡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수준에 그쳤다.
사망률 감소 주장에 대해서도 한의협의 주장과 다른 결론이 도출됐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의·한방 협진은 의학치료만 받은 것에 비해 사망률을 감소시키지 못했다.
특히 연구자들이 해당 연구가의 한계가 명확하다고 했다. 연구자들은 논문을 통해 "분석에 포함된 연구들의 질이 낮아 근거가 취약하다. 향후 연구에서는 참여자들에 대한 장기간 추적관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