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시판되는 치료제의 종류가 많은 질병에 대해 우수한 치료효과를 보이는 신규물질을 발견했다면 이 물질을 치료약으로 개발하기 위해 자원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이 질문은 개발비 대비 수입을 창출해야 하는 개발사와 이와 무관한 규제기관의 신약승인 철학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기존 약물과 비교해 효능이 가장 좋거나, 사용하기에 가장 간편하거나, 부작용이 가장 적은 것과 같이 어느 분야에서 개선된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부담은 개발사의 몫이다. 앞선 질문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케이스마다 다른데 계속 개발한 예로 당뇨병 치료제의 승인과정을 알아봤다.
각국의 규제기관에서 신약개발을 독려하는 이유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약개발에 대한 입장이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치료방법이 없거나 치료가 어려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환자들에게 빠른 시간안에 제공하기 위해 개발사들에게 경제적인 동기를 부여한다." 신약을 개발하면 돈을 벌 수 있도록 보장해 주지만 돈을 벌도록 하기위해 신약을 허가해주지는 않는다는 입장이다.
시판되고 있는 약물이 많을수록 기존 치료제들 보다 우수하다고 증명해야 하는 요건이 증가하기 때문에 승인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진다. 증명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면 개발을 중단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가능성이 크지만 위험을 감수하면서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을 만큼 시장의 규모가 큰 경우도 있다. 당뇨병 치료제가 이에 해당한다.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는 2020년 1월 16일 당뇨병과 관련된 신약판매허가를 받았는데, 이 약의 허가과정에 대해 간단히 알아봤다.
노보 노디스크, GLP-1 이용해 리라글루타이드·세마글루타이드 개발
노보 노르디스크는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ucagon-like peptide-1, GLP-1)를 이용해 리라글루타이드(Liraglutide)라는 비만치료제와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라는 제2형 당뇨병 치료제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비만치료제 리라글루타이드는 상품명 삭센다로 FDA로부터 2014년 12월 23일 판매허가를 받았다. 비만치료제로 효과가 좋고 안전성이 인정돼 미국과 유럽에서 호평을 받았는데 한국에서도 다이어트 주사로 큰 인기를 모았다.
제2형 당뇨병 치료제 세마글루타이드는 상품명 오젬픽(Ozempic)으로 2017년 12월 5일 FDA 허가를 받았다. 2020년 1월 6일에는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제2형 당뇨병 환자들의 심혈관질환 위험을 낮추는 약으로 추가적인 판매승인을 받았다.
GLP-1은 사람의 장에서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대사성 호르몬이며 혈당량을 줄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계통의 호르몬들은 음식을 먹은 후에 탄수화물이 소화된 다음 장에서 흡수되어 혈당량이 증가하면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킨다. 혈당량에 따라 분비되는 호르몬의 양이 결정된다.
GLP-1은 혈액안에서 오래 지속되면 저혈당증을 유발시킬 수 있으므로 빠르게 분해된다. 신약으로 개발돼 사용되고 있는 GLP-1 유사체들은 GLP-1과 같은 기능은 유지하면서 사람의 몸에서 오랫동안 지속 될 수 있는 형태로 변화시킨 물질들이다.
오젬픽의 양이 혈중에서 절반으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1주일이다. 만약 이 약을 복용하다가 사용을 중지하더라도 마지막으로 복용한 후 5주일이 지나야 체내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이렇게 오랫동안 체내에 남아 GLP-1 호르몬처럼 혈당수치를 낮추기 위해 인슐린이 분비되도록 자극한다.
자연적인 GLP-1은 식사를 한 후에 탄수화물이 소화-흡수돼 혈당량이 증가하면 일어나지만 GLP-1 유사체인 오젬픽은 식사와 상관없이 혈당이 증가하기 전에 인슐린이 분비되도록 한다.
제2형 당뇨병 환자들을 치료하기위해 다양한 형태의 인슐린들이 오랫동안 사용됐다. GLP-1 유사체는 인슐린이 아닌 당뇨병 치료제인데 식이요법 및 운동과 함께 처방한다. GLP-1 유사체는 혈액에서 HbA1c(헤모글로빈 A1C)라는 특별한 포도당의 양을 내려준다. 처음에는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으며 점차 체중관리용 혹은 비만치료제로 개발됐다.
광범위했던 임상시험…8회 실시해 8회 모두 신약 효능 입증
여러 회사에서 허가를 받은 제2형 당뇨병 치료제들이 이미 시장에 유통되고 있었으므로 새로운 당뇨치료제 개발과정은 쉽지 않았다.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허가 받기위해 총 8회에 거친 임상시험을 시행했으며 8000명 환자들이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8회의 임상시험 중 1회는 심혈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치료효과도 같이 보기위해 고안됐다. 치료제를 전 세계에 있는 환자들에게 사용하기 위해 처음부터 남아프리카, 러시아, 멕시코, 미국, 영국, 이탈리아, 일본, 캐나다 8개국에 퍼져 있는 72개 임상시험처에서 시행했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을 선별하는 기준은 ①한달 동안 한번도 당뇨병약을 사용하지 않고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관리했으며 ②혈중 포도당 중에서 헤모글로빈 A1C의 농도가 일반인들보다 높은 7.0~10.0% 사이에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 환자들을 2:2:1:1로 나눠 후보물질과 위약(placebo)을 두가지 다른 용량으로 일주일에 한번씩 주사하도록 했다. 약물은 임상시험 참여자들이 스스로 주사했다. 식사시간이나 주사해야 할 날짜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환자마다 개인적인 편의를 고려해 요일을 선택하여 매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약을 투여하도록 했다. 임상시험기간 중에 인터넷이나 전화를 이용해 환자들과 소통했으며 연구자, 임상참여자, 주관회사 모두 임상에 참여한 사람들이 어떤 그룹에 속하는지 알지 못하게 했다.
1차 평가지수(primary end point)는 30주가 지난 다음 헤모글로빈 A1C의 평균 농도 감소 여부였으며, 2차 평가지수는 평균 체중의 감소 여부였다. 후보물질의 효능과 안전성을 치료약을 주사한 환자집단과 위약을 받은 환자집단을 비교해 분석했다.
분석결과 혈당 헤모글로빈 A1C의 농도가 위약을 주사했던 환자들은 변하지 않았지만 치료약을 주사한 환자들은 정상인 수준으로 감소했다. 체중도 위약을 주사한 환자들은 변화가 없었지만 치료약을 0.5㎎씩 받은 환자들은 10%, 1.0㎎씩 받은 환자들은 15% 감소했다.
이런 임상시험이 총 8회 실시됐으며 여덟 번 모두 통계적으로 확실하게 신약후보물질의 효능을 입증했다.
이렇게 광범위한 임상시험을 실시한 결과 통계적으로 약의 효능이 입증되고 부작용이 미미한 것으로 판단됐지만 FDA 자문위원회 모임(FDA Advisory Committee Meeting)이 소집됐다. 다행스럽게 17명 참여자들 중에 16명이 허가를 권고했으며 1명은 기권하여 개발사에게 유리한 결론에 도달했다.
소요되는 시간과 개발사의 노력…출시 2년만에 블록버스터 등극
각 임상시험은 약 2년씩 소요되었으며 몇 가지 임상시험들을 동시에 실시했다. 임상시험들 중에서 세번째 임상시험을 2015년에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2016년 4월에 마지막 8번째 임상시험을 마쳤다. 마지막 임상시험에서는 혈당 및 체중감소에 더하여 심혈관 질환 치료 효능을 함께 조사했다.
8회에 거친 임상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2016년 12월 신약판매승인을 신청(NDA)했다. 비슷한 계열의 신약개발을 몇 번이나 성공했던 제약회사에서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에도 판매신청(NDA)을 할 때 까지 8개월이나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리했다.
자문위원회 청문회가 2017년 10월에 개최됐으며, NDA를 신청한지 1년만인 2017년 12월 FDA는 신약판매를 승인했다. 매우 성공적인 임상시험을 8번이나 마친 후 분석결과를 대중매체에 공개한 날부터 판매승인까지 1년 8개월이 소요됐다.
신약의 사용목적을 나타내는 라벨(이하 처방전)에 표시하는 내용은 시장에서의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개발사에서 의도한 내용이 반영되도록 임상시험계획 단계부터 FDA와 협의하지만 임상시험이 끝난 다음에도 협의는 계속된다.
개발사에서는 라벨을 확장하려고 하며 FDA에서는 가능하면 좁히려고 하는데 이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개발사에 우호적으로 선정됐다. "식이요법과 운동과 함께 일주일에 한번 주사하면 제2형 당뇨병 환자들의 혈당을 조절할 수 있다. 일주일에 한번 같은 요일에 아무 시간에나 음식을 먹거나 먹지않고 주사할 수 있다." 이렇게 우호적인 처방전과 약의 효능 덕분에 출시한지 2년째인 2019년 1조원(10억달러)이상 판매한 블록버스터가 됐다.
오젬픽은 당뇨병 환자들에게 인슐린이 분비되도록 할 뿐 아니라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을 FDA가 2020년 1월 16일에 인정했다. 8번째 임상시험 결과를 2년간 분석한 결과 개발사에서 주장하던 내용을 FDA에서 승인했다. 이제 이 약에 대한 처방전을 더 강력하게 쓸 수 있게 됐으며 더 많은 환자들에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당뇨병은 합병증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비만과 심혈관질환, 신장병들이 흔하게 나타나는 합병증들이다. 당뇨병치료제를 판매하는 제약사들은 당뇨병 뿐 아니라 이런 합병증 치료효과도 있다고 선전하고 싶어한다.
당뇨병 환자들은 합병증들 중에서 심혈관위험이 가장 높다. 노보 노디스크에서도 합병증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8번째 임상시험을 고안했던 것이다. 임상시험시험 결과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하는 빈도와 가벼운 심장마비가 일어나는 빈도가 기존치료법에 비해 26%나 감소했으며 개발사에서 의도한 대로 FDA의 승인을 획득했다.
2019년 일라이 릴리에서도 마켓 선도 주자였던 GLP-1 유사체 트루리시티(Trulicity)로 비슷한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했지만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이에 비하면 오젬픽은 임상시험 방법에도 차이가 있었지만 결과에서 큰 차이를 보여 마켓 선두 주자로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당뇨병 치료제는 종류가 많기 때문에 새로운 물질을 치료제로 승인 받으려면 넘어야할 비교대상 약물이 많다. 개발초기에 아무리 효능이 뛰어난 신약 후보물질을 발견했더라도 이미 비교대상 약물이 몇 개 출시돼 있는 질병 치료제로 개발하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질병 치료제로 개발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며 치료약이 없는 유사질병 치료제로 개발한 이후에 적응증을 확장하는 경로를 선택하는 것이 더 좋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오젬픽은 이런 통상적인 개념을 넘어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고 적응증까지 확장시킨 예외적인 성공사례다.
8000명을 참여시킨 임상시험의 규모와 참여자들이 병원을 방문하는 횟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비디오와 오디오 소통을 하면서 임상시험 과정을 확인해 임상비용을 줄인 점은 인상적이다. 아무리 줄여도 임상시험 3상에 소요된 비용은 5000억원(5억달러) 이상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규모의 자금을 비축하고 있는 회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회사들이 자신들의 전문분야에서 자금의 어려움없이 독자적으로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신약개발에 성공한 사례를 종종 듣게 될 날들을 기대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메디게이트뉴스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