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의정갈등이 종료되고 어느덧 1년가량이 지났다. 투쟁의 최전선에 섰던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지난 1년간 사태의 여파를 수습하는 한편 새로운 미래를 위한 밑그림을 그려왔다.
수련 질 저하 우려도 있었지만 지난해 9월 복귀한 전공의들은 전문의 시험 조건부 합격이라는 제도를 통해 무리 없이 다음 스텝을 밟을 수 있게 됐고, 의정갈등 과정에서 입영했던 전공의들도 전역 후 본인이 일하던 곳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됐다.
전공의법이 개정되며 연속근무시간은 기존 36시간에서 24시간으로 단축됐고, 전공의 휴게∙휴일, 연장∙야간 휴일 수련에 근로기준법이 준용되게 됐다. 수련환경평가위원회의 전공의 측 위원도 4명으로 늘어났다. 젊은의사정책연구원을 설립해 정책적 기반을 마련했고, 대전협 법인화도 목전에 두고 있다.
대전협 이의주 부회장(서울아산병원 외과 1년차)은 이번 집행부가 이뤄낸 이 같은 성과와 관련해, 직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물은 아니었다. 대신 뒤에서 각종 실무를 전담하며 한성존호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한성존 회장에게 바통을 이어 받아 무대의 전면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27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되는 제29기 대전협 회장 선거에 출마한 유일한 후보다. 주요 공약으로는 ▲산별교섭을 통한 임금 인상 ▲보호수련시간(Protected time) 보장 ▲수련 기록(E-Portfolio) 간소화 ▲젊은 의사 정책연구 확대를 내걸었다.
메디게이트뉴스는 지난 20일 저녁, 일과를 마친 이 후보를 만나 출마를 결심하게 된 계기와 주요 공약 및 각종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바쁜 업무로 인해 점심, 저녁조차 먹지 못한 상태라고 했지만 “전공의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이 후보의 눈은 인터뷰 내내 반짝였다.
현 집행부서 부회장 맡아 각종 실무 담당…새롭게 풀어야 할 과제 많아
- 이번 대전협 회장 선거에 단독 출마했다. 현 집행부 부회장으로 일해왔는데 회장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뭔가.
전공의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권익 보호를 위한 활동들을 하며 보람을 느꼈다. 그동안 많은 일을 했고, 앞으로 이어가야 할 과제와 새롭게 풀어야 할 숙제 또한 많다고 생각해 책임감을 갖고 출마를 결심했다.
- 현 집행부의 활동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대전협 공백이 길었던 만큼 바쁘게 달려왔다. 대의원총회를 개최하고 지역협의회를 활성화하며, 다양한 행사와 이벤트를 통해 전공의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노력했다. 정부와 국회, 의료계 타 단체와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전공의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수련 현실을 지적하고, 젊은의사정책연구원을 설립해 정책 역량을 강화했다. 무엇보다 기입영자·입영대기자의 수련 연속성을 보장받았고, 다음 도약을 위한 법인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 산별 교섭을 통한 임금 인상을 첫 번째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유는 무엇이고 구체적인 추진 계획은 어떻게 되나.
최근 실시한 전공의 수련 실태조사에서 업무 강도 대비 급여가 적절하다는 응답이 18.7%에 그쳤다. 전공의가 오랜 시간 과중한 업무를 감당해 온 배경에는 낮은 급여와 값싼 인력 구조가 있다. 수련 환경이 실질적으로 개선되려면 임금 인상이 필수적이다. 지금은 전공의 평균 임금에 대한 자료조차 없는 실정이다. 우선 전국 수련병원의 기본급과 통상시급 현황을 조사해 실태를 드러내고, 이를 근거로 전국전공의노동조합과 함께 임금 협상을 이끌어가겠다. 최소한 간호사 등 의료계 타 직역 수준은 받아야 하지 않겠나.
- 교섭은 전공의노조가 담당해야 할 부분이지 않나.
노조 자체적으로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전국적으로 움직임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전공의 대표 단체인 대전협이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이제는 노조와 대전협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서 공약으로 내세웠다. 아무래도 지난 1년은 의정사태의 여파로 전공의들이 지친 상태였던 게 사실이고, 대전협은 투쟁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래서 소통과 수련의 질 측면을 보다 집중적으로 다뤘다면, 이제는 임금 개선 등을 시작으로 다시 강하게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때가 됐다.
- 교육할 교수 부족, 재정 부담 등의 이유로 추후 수련병원 지위를 포기하는 병원들이 늘어날 거란 전망도 있다. 임금 인상이 이 같은 추세를 가속화할 우려는 없을까.
미래 의료 인력 양성은 개별 병원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과제이다. 수련병원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원인은 교수 확충과 교육 비용을 병원에만 떠넘겨 온 구조에 있다. 정부의 재정 지원이 뒷받침돼야 병원이 수련 기능을 지속할 수 있으며, 임금 인상 역시 이러한 국가 지원 논의와 함께 풀어가야 할 문제다. 병원협회나 수련병원협의회도 교육 비용에 대해서는 전공의들과 함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
- 보호수련시간도 주요 공약에 포함됐다. 다만 현재 전공의 근무시간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 업무 로딩이 늘어난 교수, 전임의 등의 근로환경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대전협은 지속적으로 전문의 고용 확대를 주장해왔다. 보호수련시간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려면 지도전문의의 진료 부담이 경감돼야 한다. 전공의 수련환경 혁신지원 사업이 그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련시간 단축 넘어 실질적 질 개선 필요…전공의 정신건강 지원 사업 신설 계획
- 역대 대전협 회장 선거에서 단골 공약으로 제시됐던 수련시간 단축 공약이 보이지 않는다. 이유가 있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22년 77.7시간에서 26년 70.5시간으로, 주 80시간 초과 근무 경험률은 52%에서 27%로 감소했다. 이는 근무시간 단축 시범사업과 전공의법 연속근무 제한 강화의 성과이자, 역대 대전협 집행부가 이어온 노력의 결과다. 이제는 수련시간 단축을 넘어 보호수련시간 보장, 대체인력 체계 구축, 1인당 담당 환자 수 제한 등 실질적인 수련의 질 개선을 위해 나아가려 한다.
- 젊은의사정책연구원을 통한 정책 연구 확대도 공약했다. 염두에 두고 있는 연구 주제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현재 보호수련시간 보장을 위한 전공의 수련교과과정 개편 연구가 진행 중이다. 개인적으로 지역의사제를 포함한 지역 수련에 관심이 많다. 전공의 정원이 비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지역 수련병원의 수련의 질이 뒷받침되는지, 지역의사제와 같은 정책이 실제 수련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현장의 근거로 살펴보고 싶다.
- 출마의 변을 통해 전공의법 위반에 대한 실효성 있는 제제 마련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언급했다. 어느 정도의 제재가 필요하다고 보나.
근무시간 상한이나 연속근무 제한 같은 전공의법 핵심 조항이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확인되지만, 위반이 드러나도 과태료나 시정명령에 그쳐 제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했다. 현장의 위반 사례를 체계적으로 수합해 공론화하는 한편, 반복되고 상습적인 위반에는 누진적 처분이 가능하도록 제재 수위를 높이고, 그 책임을 최종 책임자에게 물을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요구하겠다. 무엇보다 전공의에게 피해가 전가되지 않아야 한다.
- 복지 공약 중 정신건강 지원 사업 신설 계획도 눈에 띈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부탁드린다.
실태조사에서 2주 이상 지속되는 우울·절망감을 경험한 비율은 31.2%로 일반 인구의 약 세 배에 달했고, 자살 생각을 경험한 비율도 23.1%였다. 그러나 전공의가 편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담·지원 체계는 마련돼 있지 않다. 대전협은 전공의가 부담 없이 상담받을 수 있는 정신건강 지원 사업을 신설해 어려움을 홀로 감당하지 않도록 하겠다.
- 현 집행부에서 추진 중인 대전협, 젊은의사협의회 내용도 공약에 담겼다. 현재 추진 상황과 당선 시 이후 계획은?
지난 3월 정기대의원총회 의결 이후 곧 젊은의사협의회 발족을 앞두고 있다. 여러 젊은 의사 단체가 흩어져 내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자리다. 협의회를 통해 젊은 의사들이 공동의 의제를 만들고, 의료의 미래를 책임질 세대로서 그 방향을 함께 그려나가는 장으로 세우겠다.
-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와 관련해선 최근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대전협이 하위법령 협의체에 참여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하위법령 논의 과정서 어떤 부분이 중점적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보나.
여러 쟁점 가운데 중대한 과실의 판단 기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법에 12대 중과실이 명시됐지만, 세부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형사 부담 완화라는 개정 취지가 실현될 수도, 반대로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다. 불가피한 사고와 중과실이 명확히 구분돼야 전공의가 최선의 치료에 집중할 수 있다. 실태조사에서도 전공의의 76.4%가 의료분쟁에 대한 불안을, 78.1%가 그로 인한 방어 진료를 호소한 만큼, 젊은 의사의 시각이 이 기준을 세우는 과정에 반영되도록 하겠다.
- 마지막으로 할말이 있다면?
오늘도 환자를 포기하지 않는 전공의 선생님들께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대전협도 희망을 잃지 않고 나아가겠다. 기대를 갖고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 최선을 다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