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대한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는 6일 성명서를 통해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간의 9.2 노정합의는 의료 정상화나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는 무관한 정치적 거래에 불과하다. 오히려 피해와 부작용만 양산시킬 것이 자명하므로 폐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난 8월 17일 보건의료노조는 쟁의조정 신청을 하고 18일부터 26일까지 조합원들이 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해 찬성률 89.76%로 파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노조와 정부는 몇 차례 대화를 통해서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다가, 총파업 예정일인 9월 2일 새벽에서야 극적으로 협상 타결 소식을 알렸고, 노조는 파업 없이 업무에 복귀했다.
병의협은 “보건의료노조 요구안의 일부 내용과 노정 합의 내용을 보면, 다소 황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라며 "특히 보건의료노조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공공의전원 설립이나 지역 의사제 추진 등의 내용이 합의문에 포함된 것은 의료계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병의협은 “지난해 보건의료노조는 정부 및 여당과 다를 바 없는 비판과 공격을 의료계에 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정부와 한 몸인 듯 행동한 보건의료노조의 이러한 행태는 이번 투쟁 과정에서 제시했던 요구 내용과 9.2 노정 합의안의 내용을 통해 의심을 확신으로 변하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병의협은 “이번 합의안에 포함된 공공의료 확충 관련 내용은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보건의료노조가 보건의료 정책, 의료기관 경영 등을 포함한 전체 보건의료 영역으로 노조의 지배력을 넓히기 위해 공공의료 확충을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사노조도 없는 보건의료노조가 공공의전원 설립, 지역의사제 도입, 의료인 결격사유 확대 등의 정책을 요구한 것은 의료계를 적으로 규정해 정부와 함께 공격함으로써 정부와의 정치적 거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라며 "또한 보건의료노조와 정부는 불법의료 근절을 이유로 UA 불법 의료행위를 무리하게 합법화하고, 의료인 면허범위를 재조정하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다”고 했다.
병의협은 의료계에도 “앞으로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정책과 법안들이 실행되면 단체행동이 불가능하고 노조를 통한 투쟁 이외에는 어떠한 저항 방법도 없어진다”라며 “지금부터라도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전 의료계는 의사노조 결성 및 조직화에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병의협도 전체 의료계가 참여하는 의사노조 결성 및 조직화에 적극 참여할 것이며, 의사노조의 성공적인 출범과 안착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이라고 덧붙였다.
①합의문에 공공의료 확충 내용은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 그대로
지난 6월 2일 보건복지부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의 공공보건의료 계획이 포함된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의 핵심적인 내용들이 이번 보건의료노조와 보건복지부 사이에서 만들어진 합의안에 고스란히 포함돼 있다
당시 바른의료연구소 등 의료계는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은 공공보건의료의 개념을 민간의료까지 포함한 전체 의료 분야로 확대해 관치의료를 강화하는 정책이라는 점, 불필요한 지방의료원의 신증축 및 국립중앙의료원 이전 및 신축에만 대부분의 재원을 쏟아 붇는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점, 그리고 9.4 의정합의를 무시하면서 공공연히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전원 설립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 등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에 병의협은 “보건의료노조와 복지부의 합의안이라는 것을 모른 채 내용만 보면 마치 복지부의 계획 발표로 착각할 정도로 이번 합의안에는 기존 정부 정책과 똑같은 내용이 많다”라며 “굳이 정부가 원하는 내용까지 요구해서 합의안에 포함시킨 것은 정치적인 거래의 목적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국 정부는 이번 보건의료노조 파업 투쟁을 통해 기존 공공보건의료 정책 추진의 명분을 얻고, 보건의료노조는 처우 개선 및 공공의료 분야에서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 명분을 얻은 것으로 볼 수 있다"라며 "문제는 정부와 보건의료노조의 이러한 정치적 거래로 말미암아 피해를 입는 것은 선량한 국민들과 대다수의 의사 및 보건의료 종사자들이라는 점”이라고 밝혔다.
병의협은 “정부의 실효성 없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인해 세금이 낭비돼 국민들은 고통 받는다. 노조에 의해 의료 현장과 의료 정책이 휘둘리게 되어 의료 시스템의 왜곡이 심화되는 문제의 심각성을 정부와 보건의료노조는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②보건의료 영역으로 노조의 지배력을 넓히기 위해 공공의료 확충 주장
보건의료노조와 복지부의 합의안에는 노조가 공공의료 관련 정책이나 병원 경영 등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근거가 포함돼 있다. 합의안에 포함된 공공병원 확충 및 강화 방안에는 기존에 확정 및 발표한 대책 외에 추가 필요 사안에 대해서는 보건의료노조가 참여하는 '(가칭) 공공의료 확충 및 강화 추진 협의체'를 구성하여 논의한다는 문구가 들어있다.
병의협은 “결국 공공병원 신축 및 증축 과정에 노조가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이는 공공병원 설립 과정에서 노동자의 권익 보호라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겠지만, 비효율적인 의료기관 운용으로 이어지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했다.
또한 합의안에는 사립대 병원 및 민간 중소병원의 공공적 역할과 기능 강화를 독려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공익 참여형 의료법인 제도화를 통해서 사립 의료기관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해 추진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병의협은 “이는 제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에서 공공의료의 범위를 민간에서 제공하는 의료 영역까지 포함한 전체 의료 영역으로 확대해 민간 의료기관에 대한 관치의료 시스템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를 재확인한 것이다"라며 "공익 참여형 의료법인 제도화를 통해서 민간 의료기관의 경영에까지 노조가 공익 대표로 참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한 병의협은 “기존에 정부부처와 전문가 단체들로만 구성하기로 돼있던 공공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와 시도 공공보건의료위원회에 노동자 단체가 참여하도록 명문화해 공공보건의료 정책 결정에 노조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병의협은 “이번 합의안에서 드러난 보건의료노조의 의도는 전문가들이 결정해야하는 정책에 대한 고려 없이 거의 전체 보건의료 분야에 노조가 관여하려는 것이다"라며 "권리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보건의료노조는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서만 활동하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③의사노조도 없는 보건의료노조가 공공의전원 설립, 지역 의사제 도입, 의료인 결격사유 확대 등의 정책을 요구한 것은 의료계를 적으로 돌리는 행위
합의안에는 의사노조도 없는 보건의료노조와 정부의 협상안에 공공의전원, 지역 의사제 등의 의사 인력 증원 정책이 포함돼 있고, 최근 여당에서 9월 중 국회 통과를 자신하고 있는 의료인 면허취소 확대법을 염두에 둔 의료인 결격사유 확대 요구 내용도 포함됐다.
병의협은 “의사 인력 증원 정책 관련 내용은 의정합의 사안이므로 이를 노조와 정부의 노정 합의안에 포함시킨 것은 정부가 의정합의 파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라며 “또한 지난해 의료계 단체행동에 대한 보복성 성격으로 여당에서 몇 차례 발의됐던 의료인 면허취소 강화법 처리를 노조가 주장하는 것은 자승자박이며 의료계를 적으로 돌리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의정협의 당사자도 아니고 의사노조도 없는 보건의료노조와의 합의를 의정협의의 명분으로 사용하는 것은 어이없는 발상일 뿐이다. 만약 이를 근거로 의정협의 강행을 시도한다면 이는 명백한 의정합의 위반이자 합의 파기 시도”라고 강조했다.
병의협은 “지역간호사제와 관련한 내용은 빠졌다. 이는 지금까지 간호대 정원 확대 정책의 실패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인력 배출만 늘려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노조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사실상 개인의 거주 이전과 직업 선택의 자유를 박탈하는 위헌적인 정책인 지역 간호사제를 간호사들이 극렬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병의협은 더욱 황당한 것은 보건의료노조가 의료인 결격사유 확대를 주장, 이를 합의안에 포함시킨 것이라고 강조했다. 병의협은 “문제는 법안의 대상에는 의사만이 아니라 전체 의료인이 다 포함되고, 의료인인 간호사는 보건의료노조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차지하는 직역이라는 점이다. 즉, 보건의료노조는 정치적 거래를 위해서 자신들의 노조원들을 정부에 팔아 넘긴 것”이라고 밝혔다.
병의협은 “무분별한 간호사 증원 정책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향후 의사 인력 과잉까지 걱정해야 하는 우리나라에서 함부로 의사 증원 정책을 펼치면 안 된다"라며 "위헌적인 정책인 지역 간호사제를 간호사들이 반대하는 이유와 똑같은 이유로 지역 의사제를 의사들이 반대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보건의료노조는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내로남불 행태를 서슴지 않고, 정부의 폭압적 행태에 동조하여 의료계를 적으로 돌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④불법의료 근절 핑계로 무면허 의료인력(UA)에 의한 불법 의료행위를 무리하게 합법화, 의료인 면허범위를 재조정하려는 의도
보건의료노조와 복지부가 합의한 내용 중에는 불법의료 근절을 위한 요구안이 포함됐다. 불법 무면허 의료행위가 이뤄지고 있어 근절해야 한다는 당위성 설명, 불법 무면허 의료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법으로 의사와 진료지원 인력의 업무범위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내용, 불법 무면허 의료행위를 지시하는 경우 강하게 처벌해 면허를 취소하거나 정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병의협은 “현재 불법 무면허 의료인력(UA)에 의한 불법 의료행위는 대형병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종합병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라며 "문제는 해당 행위가 불법임을 알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를 유지하는 병원들, 불법을 눈감아 주고 있는 보건복지부, 불법이라는 사실도 알고 이를 거부할 수도 있음에도 불법 행위를 수행하는 UA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병의협은 “보건의료노조가 정말로 불법의료 근절을 원한다면 그동안 불법 행위를 눈감아 주고 있었던 복지부에 강하고 원칙적인 대응을 주문하고, 불법 행위를 수행하는 UA와 이를 지시하는 병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달라고 요구했어야 한다”고 했다.
병의협은 “노조에 소속된 UA들부터 불법 의료행위 거부 투쟁을 전개하고, 만약 불법 의료행위를 지시하는 병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고발하겠다고 밝혔어야 마땅하다"라며 "하지만 노조는 UA들에 대한 처벌 내용은 제외하고 불법 의료행위 지시 사례에 대한 처벌 강화만을 주문하고 있다. 노조의 이러한 요구의 기저에는 불법 의료행위의 양성화 및 합법화를 통해 의료인 면허범위를 재조정하겠다는 의지가 숨어있다”고 밝혔다.
병의협은 “노조는 전 세계적으로 의사들로 하여금 대부분의 의료행위를 수행하도록 범위를 정해놓은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하고, 자신들의 주장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라며 “보다 많은 의료행위를 하는 사람일수록 보다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과연 진료지원 인력들이 이러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 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병의협은 “UA 불법 의료행위는 의료의 질 저하, 의료 시스템의 왜곡 등을 통해서 국민 건강에 심대한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사안이므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라며 "하지만 불법을 근절하는 방법이 불법 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와 근본 원인 해결이 아니라 단순히 불법 행위의 양성화 및 합법화라면 곤란하다. UA 불법 의료행위 양성화 및 합법화를 도구 삼아 의료인 업무범위 재정립 시도를 하는 것은 책임질 수 없는 무모한 발상이며,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