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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자들아 아프냐? 우리도 아프다”...외과 교수들도 ‘번아웃’ 호소

    외과 책임지도전문의 60% 번아웃 느껴...‘X호구’ ‘욕받이’ 자조적 목소리도

    기사입력시간 2022-11-04 06:37
    최종업데이트 2022-11-04 06:37

    경희의대 민선영 교수는 3일 대한외과학회 학술대회에서 책임지도전문의 번아웃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2022 대한외과학회 국제학술대회 및 추계학술대회 
    ①"외과의 절망감...자부심‧사명감 하나로 후학들에게 권하기엔 민망할 정도”
    ②외과 살리려면…수술 기피 부르는 ‘CCTV‧형사처벌’ 해결해야
    ③“제자들아 아프냐? 우리도 아프다”...외과 교수들도 ‘번아웃’ 호소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3일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열린 대한외과학회 추계학술대회 ‘책임지도 전문의 번아웃’ 세션에선 전공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외과 교수들의 하소연이 터져나왔다.
     
    지난해 추계학술대회에선 외과 전공의 80%가량이 사직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설문 결과가 공개되며 의료계에 적잖은 충격을 던져줬는데, 올해는 교수들이 번아웃을 호소하고 나선 것이다.
     
    이날 연자로 나선 경희의대 민선영 교수는 외과 책임지도전문의 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번아웃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에서 나타난 책임지도전문의들의 박탈감과 스트레스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번아웃을 실제 진단 받은 경우는 7% 정도였지만 스스로 자신이 번아웃 상태라고 느낀다고 답한 비율은 60%에 육박했다. 이에 책임지도전문의 자리를 다시 제안받는다면 수락하겠느냐는 질문에 84%가 거부하겠다고 답했다.
     
    과중 업무에 동료교수·전공의 무관심까지...“권한과 보상 강화 필요”
     
    책임지도전문의들은 외과 전문의로서 강도 높은 기본 업무에 더해 책임지도전문의 업무까지 맡게 되면서 큰 부담을 안고 있었다. 게다가 주로 연차가 낮은 주니어 교수들이 책임지도전문의를 맡다보니 목소리에 힘이 잘 실리지 않는다는 어려움도 있었다.
     
    이들을 더욱 허탈하게 만드는 것은 업무에 대한 전공의와 동료 지도전문의들의 무관심이었다. 설문 결과를 보면 동료 교수들조차도 책임지도전문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는 응답들도 있었다. 수련 의지가 없는 전공의들을 대상으료 교육을 해야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도 호소하는 교수들도 많았다.
     
    건양의대 문주익 교수는 과거와는 다른 전공의들의 태도로 어려움이 크다고 호소했다.
     
    문 교수는 “수술에 들어오라고 해도 환자를 관리해야 한다는 핑계로 거부하는 경우도 있고, 수술 중에 손이 계속해서 집도의 위로 올라오길래 다시 제자리로 했더니 한숨을 쉬는 전공의도 있었다”며 “수술을 멈추고 내보내려고 하다가도 대신 들어올 사람이 없어서 그냥 수술을 진행했다”고 했다.
     
    이어 “우리 때와는 전공의들이 너무나 다르다는 걸 느끼면서 과연 내가 잘 교육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고 회의감도 든다”고 했다.
     
    이러다보니 책임지도전문의들은 스스로도 자신의 업무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책임지도전문의를 한 마디로 정의해달란 질문에는 ‘X호구’, ‘욕받이’, ‘의미없는 희생’, ‘헛된 걸 알고도 감당하는 사람’ 등 부정적인 응답이 즐비했다.
     
    책임지도전문의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한 방안을 묻는 질문에는 ‘권한 강화와 보상’ ‘업무 부담 경감’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책임지도전문의 제도의 실효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들도 적지 않았다.
     
    외과 책임지도전문의들은 번아웃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교수 업무시간도 조절 필요...외과 교수로서 삶 꿈꿀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이어진 패널 토의에 참석한 교수들은 외과 책임지도전문의의 번아웃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들을 제안했다.
     
    동아의대 박은화 교수는 “올 초에 나온 국내 의대교수들의 번아웃에 대한 논문을 보면 번아웃 이유 중 두 번째로 근무시간이 꼽혔다”며 “전공의 80시간뿐 아니라 교수들의 근무시간에 대한 조절도 적극적으로 주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공의들의 태도에 대한 문제 제기도 계속 나오고 있는데, 전공의들도 개인의 행복이 중요한 것이고 마냥 뭐라고 할 수만은 없다”며 “그런 태도의 문제를 제도화해서 개선할 수 있도록 학회가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조선의대 김유석 교수는 “전공의들이 책임지도전문의를 포함한 교수들을 보면서 ‘멋진 삶이구나’라고 생각할만한 사회적 상황이 되지 않는 게 근본적 문제”라며 “특히 지방 소재 병원들은 전공의 3년제로 가면서 전공의 수급이 어려워지고 있고, 수술을 포함한 대부분의 업무를 교수들이 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주 80시간 제도에서 편하게 지내는 전공의들이 고생하고 번아웃을 호소하는 교수들을 보면서 과연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근본적 문제 해결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세의대 강정현 교수는 “주니어 교수들보단 시니어 교수들이 책임지도전문의를 수행하는게 업무적으로 수월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며 “번아웃이란 관점에서도 시니어 교수들이 책임지도전문의를 맡도록 권장하는 식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