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마침내 경찰이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살인범 장윤기의 증거 은폐와 고(故)장미란씨 실종사건 등으로 크게 실추된 경찰의 신뢰도를 만회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겼는지 모른다. ‘경찰 수사에는 성역은 없다’는 식으로 포장해서.
아니면 이른바 ‘검수완박’으로 인한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없어진 상황에서,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고 있는지 불안해진 국민들의 마음을 잡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번짓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았다. 이번 아주대병원 소아응급센터에 대한 전례 없는 압수수색은 경찰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국민에게 던져주는 만행이었다.
지난 15일 의협의 국회 기자회견이나 언론 기사 등을 통해서 드러났듯이, 경찰은 생명이 위험한 소아 응급환자를 한참 치료 중이던 의료진의 진료를 방해하면서까지 강압적인 압수수색을 자행했다. 의료진이 수사에 협조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환자 치료에 지장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필요한 자료를 충분히 수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점령군처럼 응급센터로 밀고 들어간 것은 경찰 본연의 임무보다는 보여주기식의 속셈이 있었다고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압수수색 사고가 터진 뒤, 네티즌들은 응급센터에 대한 이러한 수사가 다른 나라들에도 있었는지 조사를 했지만, 최소한 OECD 선진국에서는 유례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정감사에서 거짓말 해도 되는가
10월 12일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경찰 책임자는 소아응급센터 압수수색에 대해 '진료 방해가 없었고 신속히 종료했다', '증거 위·변조 우려가 있었다' 등으로 답변했는데, 소아응급학회 등 의료진들은 사실과 다른 말이라고 반박했다. 압수수색 당시 응급환자 진료에 상당한 지장이 발생하였고 대학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은 기술적으로 위변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또 기록의 확보가 주요 목적이라면, 굳이 응급센터를 거치지 않고도 확보할 수 있기도 했다.
또한 이번 압수수색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12조(응급의료 등의 방해 금지) 위반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수색영장 발부 후 2주라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동안 별다른 자료 요청이나 참고인 조사 등을 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응급센터로 들이닥친 건 이상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무리 수색영장을 받았더라도 어디까지나 응급의료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조사하라는 것이지, 영장이 있다고 환자 진료를 방해하면서까지 수사하라는 것은 아니라는 게 법조계의 의견이다.
이번 사건의 원인이었던 환아가 사망했던 지난 7월 15일에도 유사한 일이 발생했는데, 사망 직후 보호자가 경찰에 신고를 하니 바로 경찰과 과학수사대가 출동을 해서 당시 의료진들이 조사를 받느라 진료에 지장을 초래했었다. 응급이나 중증 환자를 많이 진료하는 대학병원의 특성상 응급실이나 수술실, 중환자실 등에서 매일 불가피하게 사망 환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매번 사망 환자가 발생할 때마다 경찰이 출동하고 진료가 중단되는 일이 반복되어야 하는가.
현장의 의료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는 분명하다. 의료분쟁이 발생했을 때 경찰 조사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환자 진료에 지장이 없게끔 받겠다는 것이다. 특히 일분 일초가 중요한 응급환자나 중환자 진료 시 경찰의 무리한 조사로 인해서 환자의 생사가 뒤바뀐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한 수사이고 또 누구를 위한 경찰인가.
다 떠나고 나면 응급실에선 누가 일하나
이번 사건의 충격으로 응급의료 현장의 의사들은 이런 수모까지 겪어가면서 계속 일을 해야 하는지 심각한 회의(懷疑)에 빠졌다고 한다. 벌써 응급의료 관련 전문의들의 사직서 제출은 물론이고, 일부 병원에서는 소아응급센터 지정 반납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른바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은 ‘매일매일 교도소 담벼락 위를 걷는 마음으로 일한다’고 자조적으로 말해왔다. 그런데 이번 압수수색을 지켜보면서 이젠 담벼락 정도가 아니라 이미 한쪽 발은 교도소 안에 들어간 것 같다고까지 하소연한다.
요즘 자고 나면 국회에서 응급의료에 관한 각종 법안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 취지는 대한민국의 응급의료를 살리겠다는 것이겠지만, 대개는 현장과 괴리된 ‘쌀로 밥 짓는다’는 식의 얘기들이다. 쌀도 없고 조리기구도 없는데 밥 짓는 방식만 얘기해선 무슨 소용이냐는 거다.
알다시피 2017년의 이대목동병원 신생아중환자실 사건에서 의료진을 무리하게 구속수사를 했으나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 우리나라 소아의료가 붕괴 되었다. 한번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지만, 다시 되살리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린다(어쩌면 영영 되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 이제는 이번 사건으로 우리 응급의료가 본격적으로 무너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아무리 좋은 법안이나 제도를 만들면 뭐 하는가. 응급의료에 종사할 의료진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의사를 무조건 보호해달라는 게 아니다. 의사가 진료 중인 환자를, 대한민국 국민을 보호해달라는 것이다. 이 말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의협 임원이 아닌 개인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