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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기관은 의료배급소가 아니다"

    正義도 哲學도 없는 차등수가제 해법

    [칼럼] 이명진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

    기사입력시간 2015-07-01 05:29
    최종업데이트 2015-07-06 08:02


    대한의사협회가 제작한 포스트


    대한민국에 황당한 제도가 많지만 대표적인 것이 차등수가제이다.
     
    상식을 벗어난 초월한 논리를 2001년부터 15년간 우려먹고 있다.
     
    차등수가제를 폐지하라는 국회의 지적이 있어왔고, 개선하겠다는 정부의 답변도 있었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하지만 2015년 6월 29일 열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전체회의에서는 차등수가제 폐지 안건이 무산되었다.
     
    왜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는 차등수가제가 폐지되지 않은 것일까?
     
    여러 가지 복잡한 변수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정부당국의 정의도, 철학도 없는 해법 때문이다.
     
    이번 결과로 정부의 속내가 드러나 버렸고, 그 동안 얄팍한 술수만 부려왔다는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떤 문제인지 짚어보자.
     
    첫째, 차등수가제 자체가 정의롭지 못한 정책이다.
     
    현행 차등수가제는 의사 1인당 일일 진료환자 수가 75건 이하의 경우 진찰료를 100% 지급하고, 100건까지는 90%, 150건은 75%, 150건을 초과하면 50%로 삭감해 지급하는 제도다.
     
    차등수가제 도입 당시 정부는 진료수가를 삭감하면 재정이 절감되고, 환자들이 여러 병원으로 분산된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환자들이 자유로이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있어서, 잘 낫고 친절하다는 소문이 난 의사를 찾는 것이 상식적이다.
     
    맛난 식당을 먼 거리에서도 찾아가고 줄을 서서 기다리듯이, 평판이 좋은 의사는 당연히 환자수가 많게 되는데, 이와 같은 사실을 무시하고 단순히 환자가 많다는 이유로 진료비를 삭감하고 있다.
     
    의료를 단순 수량화한 관료주의 의료정책이고, 실력과 노력을 통한 선의의 경쟁을 무시하는 폭력이고 착취행위였다.
     
    한 마디로 차등수가제는 정의롭지 못한 제도다.
     
    두 번째, 정의롭지 못한 건정심의 구성이 문제였다.
     
    절차적 정의가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다.
     
    절차적 정의가 합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공정한 기회와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은 구성원이 민주적 절차를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한다.
     
    공정한 구성과 표결방법 등이 민주적으로 구성되고, 각 구성원이 갑을의 관계가 아닌 수평의 관계에서 사안을 논의하고 결정지어져야 정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건정심은 공정한 입장에서 공정한 참여의 기회를 무시하고 강자와 약자의 입장에서 결정되는 구조이기에 정의롭지 못하다.
     
    이런 상태에서 지속되다 보니 공익단체가 공급자에게 패널티를 주니 마니 하는 비민주적인 협박행위를 하는 것이고, 메르스로 인해 쓰러져가는 병원계에 2016년 1.4% 수가인상이라는 말도 안 되는 횡포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각 공급자단체마다 차등수가제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계적으로 각 단체에게 적용시켜 결정하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약사회와 한의사회, 병원, 의원급이 각기 다른 상황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폐지안을 상정했다는 것은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얄팍한 전술을 구사한 것으로 밖에 이해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의료를 이해하는 바른 철학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의 정책입안자는 기계적 환산주의의 착각에 빠져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환원주의란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다.
     
    복잡한 구조와 속성, 현상의 원인이 보다 단순한 현상에서 구하고 설명될 수 있다는 신념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계론적 환원주의 세계관으로는 의료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의료(medical practice)란 기계적 환원주의로 해석할 수 없는 고도의 전문성과 복합성이 포함된 기예적 행위(art)이기 때문이다.
     
    의료가 이루어고, 환자들에게 공급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의사의 실력과 표현력, 의료기관의 위치에 따른 접근성, 의사와 직원들의 친절도, 의료기관의 시설, 청결도와 직원들의 상냥한 응대, 심지어 의료진의 외모 등 너무나 많은 요인의 복합체이다.
     
    어떻게 이렇게 복잡한 것들을 후속조치(시간당 환자 진찰시간 공개)라는 단순한 수치적 환산법으로 해석하고 억지로 끼어 맞추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단순한 생각으로는 병의원을 찾는 국민들의 선택 심리를 전혀 이해 할 수가 없다.
     
    국민들은 의료기관을 의료배급소로 생각하지 않는다.
     
    덜 붐비는 식량배급소를 찾아 가는 것처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맛나고 친절한 식당을 찾아가듯이 잘 낫고 친절한 평판 좋은 병원에서 치료 받고 싶어 한다.
     
    국민의 선택심리를 전혀 이해하지도 고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의료를 질이 아닌 양으로 보려는 유물론적 사고발상이고 탁상행정이다.
     
    국민 의식수준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것 같다. 의료기관은 의료배급소가 아니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차등수가제는 이미 9년 전 명분을 잃은 제도이다.
     
    5년간 한시적 운영 하겠다는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다.
     
    거짓말하는 정부가 싫다.
     
    의사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부를 신뢰하고 따르고 싶다.
     
    그런 정부를 바라는 것이 너무 순진한 것인가?
     
    비정상인 것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느껴진다.
     
    정의롭지 못한 차등수가제는 건보재정 12조 흑자에도 불구하고 15년 째 장수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정의도 철학도 없는 미성숙한 의식수준을 보여주는 슬픈 자화상으로 남아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