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지원금 미지급액이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조 5232억원에 달한다(2014년 1월 건보공단 발표).
요양기관과 가입자 등의 불법행위에 따른 환수 결정액이 2009년 1668억원에서 2013년 3838억원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해 건강보험 재정누수가 상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2014년 7월 건보공단 발표).
대한의원협회 김성원 고문
언론을 통해 이들 기사를 접한 대한의원협회 김성원 고문은 억울했다.
건보공단이 보험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않은 채 건강보험 재정 누수의 책임을 의사들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의료기관의 허위부당청구 금액도 기관에 따라 제각각이었다.
그래서 의원협회 윤용선 회장, 김성원 고문을 포함한 의료정책TFT 소속 10여명은 1년여간 재정누수의 주범이 누구인지 파헤치기 위해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공단 등을 상대로 끈질기게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예들 들어 2013년 복지부는 현지조사를 통해 확인한 허위부당청구액이 335억원이라고 발표했다.
반면 건보공단은 환수 결정액이 2764억원이라는 자료를 제시해 10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의원협회는 건보공단에 '환수결정액을 허위부당청구 금액으로 봐도 되느냐'고 질의했다.
건보공단 답변은 '그렇다'였다.
대한의원협회 윤용선 회장
그러던 중 김성원 고문은 심평원으로부터 "사무장병원은 요양기관(병의원, 약국 등)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서 환수한 금액은 허위부당청구 금액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
김 고문은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보건복지부에 다시 민원신청을 했다.
복지부의 답변은 이랬다.
'복지부의 통계는 현지조사에서 확인된 허위부당청구 금액이지만 건보공단은 복지부의 현지조사뿐만 아니라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청구 또는 수령한 보험급여비용 환수결정금액을 모두 합산한다'
다시 말해 허위부당청구 2764억원에는 실질적인 허위부당청구금액 335억원 외에 사무장병원 환수결정액 2395억원, 보험사기 34억원까지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요양기관의 허위부당청구 환수금액이 335억원(실제 확정 금액은 201억원)이지만 마치 2764억원인 것처럼 14배 뻥튀기해 발표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윤용선 회장은 "사무장병원은 의료법상 불법 의료기관이기 때문에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할 수 없고, 이에 따라 허위부당청구가 아니더라도 진료비 전액을 환수조치하는 것"이라면서 "사무장병원 부당이득금 환수 결정액은 결코 요양기관의 허위부당청구에 포함시킬 수 없다"고 못 박았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보험료 체납액도 1조 6926억원에 이르렀다.
복지부는 지난해 건강보험 자격 상실자와 급여 정지자가 보험급여를 부정수급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요양기관에 환자의 자격을 확인해 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윤 회장은 "건보공단은 보험자로서 체납자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요양기관에 보험자 관리를 떠넘기려고 한 것"이라고 환기시켰다.
의원협회는 이런 방법으로 지난 1년간 복지부, 건강보험공단, 심평원이 공개한 자료와 정보공개 요청, 국정감사 자료 등을 취합해 2007년부터 2013년 사이 재정 누수의 구체적인 요인을 분석, 지난달 ‘건강보험 재정누수 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다.
의원협회 분석 결과 지난 7년간 재정누수액이 총 21조 2268억원에 달했다
그 결과 7년간 재정 누수액은 총 21조 2268억원이었고, 이 중 정부 책임이 12조 5952억원으로 59.3%를, 건보공단이 7조 2889억원으로 34.3%를 차지했다.
이번 분석 보고서의 핵심 중 하나는 요양기관 허위부당청구로 인한 재정 누수액이 7년간 1634억원으로 전체의 0.8%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공단은 마치 의료기관의 허위부당청구로 인해 건보재정이 심각하게 고갈되는 것처럼 발표한 셈이다.
윤용선 회장은 "그간 정부와 공단, 심평원, 언론, 시민단체, 정치권은 건보재정 누수의 궁극적 책임이 의료 공급자에게 있다고 했는데 앞으로 어느 누구도 그런 주장을 할 수 없도록 객관적 자료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번 보고서의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서 느낀 점은 건보공단의 통계가 자의적이고, 허위부당청구 부분도 하나하나 캐물어서 진실에 접근한 것"이라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통해 재정누수를 방지할 담론을 마련해야 하는데, 뭔가 숨기려는 듯, 치부를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윤 회장은 "가입자와 공급자, 보험자, 정부 4자가 용인할 수 있는 표준화된 건강보험 통계를 생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재정누수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게 의사 입장에서는 적정수가로 갈 수 있고, 매도된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단언했다.
김성원 고문은 "사실 우리나라는 의사들이 제대로 된 수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이 유지되고 있는데 재정누수의 주범으로 몰아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용선 회장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의사들이 억울했던 게 이런 것이다. 의사들은 저수가로 묶어놓은 채 공단은 방만 경영을 하고, 약사 조제료, 약가 등은 거품이 많다는 점"이라면서 "앞으로 기회가 되면 이런 부분도 짚어볼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김성원 고문이 격려금을 받는 모습
한편 의원협회가 '건강보험 재정누수 분석 보고서'를 발표하자 의사들은 통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성원 고문은 의원협회 부천분회로부터 50만원의 격려금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