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권미란 기자] “해외의 많은 국가 의사들도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단체행동을 하고 있다. 국내 의사들도 근로조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국가정책에 반대할 수 있도록 집회‧결사의 자유권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김진숙 책임연구원은 28일 ‘의사 단체행동에 관한 고찰'을 주제로 한 제1차 목요세미나에서 이같이 밝혔다.
먼저 김 연구원은 국내 헌법상 의사를 근로자로 볼 수 있는지 살펴보고 의사들의 단체행동이 정당한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노동조합법과 근로기준법에서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받고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 명시하고 있다. 사용자는 사업주 또는 사업 경영 담당자로 정의하고 있다.
그는 “병원과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월급이나 봉급을 받는 의사들은 근로자로 볼 수 있다. 개원의는 근로자로 볼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며 “그러나 2012년 세계의사회(WMA)가 발표한 의사 단체행동의 윤리적 의미에 대한 성명에서 개원의 또한 근로자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노동조합법에 따라 적법한 단체행동 요건으로 근로자의 근로조건 개선에 관한 구체적인 요구에 대해 단체교섭을 거부했을 때 개시할 수 있다”며 “다만 필수유지업무의 정당한 유지‧운영을 정지‧폐지 또는 방해하는 행위는 쟁의행위를 행할 수 없다”고 했다.
필수유지업무는 공중의 생명‧건강 또는 신체의 안전이나 공중의 일상생활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업무를 말한다. 병원사업의 경우 응급의료나 중환자 치료‧분만‧수술‧투석 등의 업무가 해당된다. 이같은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마취‧진단검사‧응급약제‧치료식 환자급식‧산소공급 등도 포함된다.
또 의료법 제59조 2항은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집단으로 휴업하거나 폐업해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 이유가 있으면 보건복지부 장관,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은 그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 연구원은 “국내 법령으로는 근로자의 범위에 개원의가 포함되지 않아 단체행동이 적법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의사들도 의료서비스라는 근로를 하고 진료비 수입, 급여 등을 받고 있는 근로자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해외 의사의 단체행동 사례를 소개했다. 첫 번째로 이스라엘은 총 6번의 의사파업이 진행됐다. 대부분 근로조건을 향상해달라는 이유였다. 한 예로 2000년 의사파업은 공립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와 전공의 1만5000명이 참여해 217일간 계속됐다. 구체적인 파업이유는 재무부 장관의 의사 임금동결안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응급실, 분만실, 종양내과 외래를 제외한 모든 외래진료와 비응급수술을 거부하는 단체행동을 했다. 파업결과, 의료제도 개선위원회 구성·운영과 봉급인상, 당직 24시간 이내 등에 대해 협상에 성공했다. 그러나 2011년에는 인력보강, 급여인상, 진료시간 단축을 위한 단체행동을 전개했지만 협상에 실패했다.
김 연구원은 "이스라엘은 단체행동을 굉장히 많이 한 국가다"라며 "다만 이스라엘의 의사파업은 공공의료기관의 근무의사들로 우리나라와는 조금 다른 측면이 있다"고 했다.
영국은 4번의 파업이 있었다. 그 중 1975년 1월부터 4월에는 전문의, 11월에는 수련의가 각각 파업을 진행했다. 당시 영국 보건부 장관이 전문의의 개인병원 운영 권리를 박탈하려고 시도했다가 파업으로 인해 무산됐다. 수련의 역시 새롭게 제시된 근로계약에 업무환경을 악화시킨다는 조항이 포함돼 파업을 진행했고 기존의 근로조건으로 돌아왔다.
독일의 경우 2006년에 대대적인 의사 파업이 진행됐다. 독일 정부는 임금 인상 없이 주당 근무시간을 38.5시간에서 42시간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의사 약 2만명, 병원의사 약 3만명, 공공의사 약 7만명이 파업에 나섰다. 이후 병원의사 급여 8~18% 인상, 의사 주당 최대 48시간 근무, 공공의사도 병원의사와 동등한 대우 등에 대해 합의가 이뤄졌다.
또 김 연구원은 캐나다의 서스캐처원 의사파업을 의사 단체행동의 유명 사례로 소개했다. 1962년 당시 서스캐처원 주의 수상 토미 더글러스는 무상의료제도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제도는 의사의 자율권 침해와 필수의료 위축 등의 우려가 제기됐다. 의사뿐만 아니라 일반인을 포함해 4000명이 파업을 진행한 결과, 메디케어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진료를 방해하는 모든 규제 폐지에 합의했다. 의사 임금지급과 청구방식 등을 포함한 법안도 수정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반대로 캐나다에서 의사파업이 실패한 사례도 있다. 1968년 온타리오 주정부는 진료비 중 환자본인부담을 의사들이 추가 청구하지 못하도록 법안을 추진했다. 지역의 1만7000명 의사 중 절반 이상이 휴진했지만 의사 직업 이미지 손상과 함께 아무런 성과없이 파업이 종료됐다.
프랑스는 제3자 지불의무제도 도입이 시도되면서 의사들이 파업에 나섰다. 2014년과 2015년 수 천명의 의사와 4만여명에 이르는 보건의료 종사자들이 지속적인 반대 시위를 전개했다. 파업결과, 기본 진찰료 23~25유로 인상, 제3자 지불의무제도 폐지 등의 합의를 이뤄냈다.
또 스페인 마드리드 정부는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려고 시도했다. 병원 직원, 환자, 지역주민의 무기한 연좌 농성이 시작됐고 전문의협의회(AFEM)는 주4일 근무, 5주간 1일 파업을 전개해 의료민영화 저지에 성공했다.
일본도 1961년 인력감축, 임금삭감, 연장근로 반대를 위해 파업을 진행했다. 파업결과, 진료보수 14.8% 인상, 제한진료 완화 등에 합의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약분업, 의료법 개정, 원격의료 및 영리병원 추진으로 3차례 단체행동이 진행됐다. 의약분업은 반대투쟁에도 2000년 8월부터 실시됐다. 2007년 의료행위에서 투약을 제외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 추진에 궐기대회, 집단휴진과 집회를 진행해 법안이 폐기되는 결과를 얻었다. 원격의료 및 영리병원은 19대 국회에서 폐기됐다가 20대 국회에서 재발의됐지만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면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된 상태다.
김 연구원은 "한국의 의사들만 단체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해외의 많은 국가들도 의료체계 개선을 위해 단체행동을 하고 있었다"며 "전 세계 의사들의 공통된 단체행동 이유는 바로 근로조건 향상이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임금 소성, 수가, 지불제도 개선 ▲근로시간 조정 ▲인력 증원 ▲의학 연구 지원 ▲의료체계 및 시스템 개선 ▲기타 근로환경 및 조건 개선을 위한 이유 등을 꼽았다.
김 연구원은 "향후 한국 의사들은 단체행동을 함에 있어 필수진료를 하면서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얻어낼 필요가 있다"며 "의사들에게도 근로조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국가정책에 반대할 수 있도록 헌법에서 보장하는 집회·결사의 자유권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 이를 강조하고 홍보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진 자유토론에서는 현행법상 근거를 분명히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의사들의 단체행동에 대한 정당성에 힘이 실렸다.
의협 이서민 보험정책팀장은 "기본적으로 의사라고 얘기하지만 사업자인 의사(개원의)가 있고 공직화된 병원의사가 있다"며 "우리나라는 근로자기준법이나 공정거래법 등 달리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각기 다른 대응방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노동자의 권리로 인한 단체행동과 사업자로의 단체행동은 다른 개념으로 비춰질 수 있어 타당성부터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정책연구소 안덕선소장은 “병원이나 개원의나 공단에서 급여를 타는 사람들이다"라며 "급여를 지급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상위 주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료정책연구소 이얼 연구원은 "공정거래법은 사업자들이 모여서 단합해 가격을 통제하거나 인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과징금 부과 등을 하는 것이다"라며 "우리 협회는 가격 인상 등과는 성격이 다르다. 공정거래법이 적용된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그는 "사업자들이 목적이나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액션을 취했을 때 정당한 사유를 듣지 않고 강제로 진료를 개시하도록 한 부분이 무자비하고 잔인하다"며 "이 법령조항 자체가 가장 문제라고 보여진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원은 "특히 외국사례를 참조해보면 단체행동을 할 경우 국민 관심을 얻기 위해 공공병원, 대학병원 등 큰 병원들이 같이 참여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서울대병원이 정부 입장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때와 동네병원이나 정치적 성향이 강하지 않은 협회가 행동하는 것과는 국민들이 받아들이는 것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뒤늦게 세미나에 참석한 최대집 회장도 꼭 필요하다면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최 회장은 "즉각적인 집단행동이 필요하다는 분들도 있지만 지금 의료계는 집단행동 역량이 갖춰져 있지 않다"며 "역량을 고도화 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사전 작업들이 필요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의 경우도 7개 전문학회와 입장을 같이 하고 있는 상황에서 1개 학회라도 부당하게 불이익을 당한다면 협상을 결렬시킬 수밖에 없다"며 "기본적으로는 의사의 집단행동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갖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나서야 할 때는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고 했다.
최 회장은 "의사의 집단행동은 40대 집행부가 우리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이고 필요하다면 병행하겠다"며 "집단행동을 강행할 경우 국내 의료계 역사에서 전례가 없었던 수준의 강도를 낼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끝으로 안 소장은 "독일은 의사파업에도 협상이 안되자 1만9500명의 의사가 독일에서 주변 국가로 떠난 경우도 있었다"며 "우리도 지속적인 압박과 좌절감을 맛보면 구조적으로, 직간접적으로 영향이 올 것이다. 규제나 통제만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