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전 세계적으로 의사 집단행동이 굉장히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며 보통 의료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국가에서 많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이미 우리나라 의료와 의학교육은 공공재에서 정치재로 변질된 상태라, 사태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시됐다.
영국 NHS 같은 변화 추진했지만 버거웠던 국가에서 젊은의사 주도 집단행동 많아
인제의대 의학교육학교실 노혜린 교수는 23일 오후 한국의학교육학회 학술대회에서 70여개국 의사 집단행동 관련 연구논문들을 메타 분석한 내용을 발표했다.
노 교수는 1904년부터 최근까지 70여개국에서 발생한 파업 등 의사 집단행동 300건 사례를 살펴봤는데, 이 중 임금체계 개선을 위한 집단행동이 101건, 근무환경 개선이 69건, 정부정책 반대 36건 등 순이었다.
집단행동이 발생한 국가도 다양했다. 최근 우리나라처럼 정부정책 반대를 위한 집단행동이 발생한 국가는 벨기에, 잉글랜드, 폴란드, 우크라이나, 나이지리아, 케냐, 짐바브웨, 이스라엘, 말레이시아, 멕시코, 칠레, 브라질, 엘살바도르 ,캐나다 등이다.
특히 캐나다와 영국 등 의료 사회주의를 지향햐는 국가에서 집단행동이 빈번했는데, 캐나다는 2020년까지 집단행동 22회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파업이 진행된 국가였다.
노혜린 교수는 "의사 집단행동 사례가 없다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호주, 뉴질랜드, 북미, 남미를 가리지 않고 모든 나라에서 의사 파업은 굉장히 빈번히 일어나고 있었다"며 "연구들에 따르면 일부 사회적 약자들 사이에서 건강 지표가 나빠졌다는 결과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파업 과정에서 환자 사망률은 평소와 비슷했거나 오히려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집단행동 행태를 살펴보면 보통 의료사회주의를 추진하는 국가나 공산주의, 군부독재 정권에서 집단행동 빈도가 높았다"며 "정부가 영국과 같은 국가주도 국민건강서비스(NHS)로 변화를 시도했지만 버거웠던 국가들이 젊은의사들을 중심으로 파업한 사례가 많았다"고 소개했다.
의사 악마화·면허 정지·파업금지법·의사협회 해체 등 정부 대응 전략 주목
의사 집단행동에 대한 각국의 대응 전략도 공통점이 존재했다. 의사 집단을 악마화하기 위한 선동과 더불어 임금 지급 중지, 면허 정지, 체포 등으로 압박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노 교수는 "영국 등 사례를 보면 우선 정책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의사들에게 소명 의식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을 무마시키려 했다. 이후엔 정부 친화적 인사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구속 논의를 진행했다"며 "보건부 장관이 해외로 출국하면서 구체적인 대화가 이뤄지지 못하게 하는 전략도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언론을 통해 의사집단을 악마화하는 선동과 의사 집단 내부 잠입을 통해 내부 분란을 만드는 사례도 존재한다"며 "임금 지급 중지, 해고, 면허정지, 수련 프로그램 중지, 외국의사 고용, 비의료인인 병원 종사자들을 교육시켜 의사를 대체하는 등 전략도 비일비재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독재 정권의 경우, 파업금지법, 조직해체 명령, 의사협회 해체 등 전략도 시행됐다. 특히 경찰이 병원이나 사무실을 점거하고 의사들을 체포, 구금, 억류, 고문, 추방하는 방법도 사용됐다"며 "영국과 미국은 의사협회 등 민간 전문가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편인 반면 소련이나 나치 독일, 멕시코 등 국가는 전문직 제도를 국가기관이 전적으로 주도한다. 한국은 말하지 않아도 어느 쪽인지 다 알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2024년 의대증원 사태에 대해서도 그는 "국가가 치안 등 공공재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턴 공공재가 아니라 정치재가 된다. 정치적 논리가 작동한다는 소리"라며 "현사태를 감안하면 이미 의료나 의학교육도 정치재로 변질됐다. 이를 똑바로 인지하고 대처해야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향후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더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노혜린 교수는 "집단행동 이후 사태를 재정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반드시 필요하다. 앞으론 집단행동이 더 많아질 것"이라며 "의학 교육 차원에서도 이를 대비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미리 체계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의료와 사회과학을 접목하는 차원에서 연구를 이어갈 연구회를 만들 예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