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존엄한 죽음, 조력존엄사법
‘존엄한 죽음’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지난 16일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존엄한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조력존엄사법’을 국내 최초로 발의했다.
‘조력 존엄사’란 말기 환자가 본인이 희망할 경우에 한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을 말한다. 환자 스스로의 의지가 있어야 하고,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세계가 선진화되면서 사람들은 점차 삶이라는 것의 의미를 재해석 해왔다. 삶이라는 것이 무의미한 연명이 아니라 적절한 건강과 높은 삶의 질로 구성돼야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고통 밖에 남지 않는 연명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것을 포기할 수 있는 죽음의 선택도 개인의 자유에 포함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런 논쟁의 결과 네덜란드가 2002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후 캐나다를 비롯한 유럽, 북미 국가들을 중심으로 안락사를 인정하는 국가가 점차 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그런 ‘죽음의 선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5월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연구팀이 1000명의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6%가 조력존엄사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존엄사나 안락사 제도보다 훨씬 가벼운 호스피스 완화의료법이 현재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음에도 말기 환자의 기적 같은 회복 가능성을 강하게 믿고, 보호자의 미래를 담보로 사재를 털어 사기꾼들에게 가져다 바치거나 무의미한 고통뿐인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 등을 환자의 사망 직전까지 밀어 넣는 경우가 여전히 흔하다. 또한, 회복할 수 없는 병에 끊임없는 간병으로 환자-보호자가 파산하거나 살해, 동반 자살을 하는 극단적인 사건 또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내가 체험했던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죽음에 대해 받아들이고 환자와 보호자가 스스로 그들의 삶을 정리하던 분위기를 잊지 못한다. 나 또한 말기 환자들을 자주 접하면서 삶과 죽음, 그리고 환자의 자유 결정권에 대해 깊이 생각해 왔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사회의 윤리라는 것이 강압적으로, 오히려 폭력적으로 침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내가 언젠가 그런 상태가 됐을 때 한국에 안락사 제도가 반드시 존재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안규백 의원은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온다. 존엄한 죽음, ‘웰 다잉(Well-Dying)'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오늘, 4년간 그려온 ‘만보의’가 200회를 맞이했고 오늘이 ‘만보의’의 마지막이다. 혹시 비정기적인 칼럼식으로 투고를 할지라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 일단 고정 연재를 내려놓고 정리하는 것, 이것을 여기서나마 실천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동안 ‘만화로 보는 의료제도’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존엄한 죽음’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지난 16일 극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가 ‘존엄한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조력존엄사법’을 국내 최초로 발의했다.
‘조력 존엄사’란 말기 환자가 본인이 희망할 경우에 한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을 말한다. 환자 스스로의 의지가 있어야 하고,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세계가 선진화되면서 사람들은 점차 삶이라는 것의 의미를 재해석 해왔다. 삶이라는 것이 무의미한 연명이 아니라 적절한 건강과 높은 삶의 질로 구성돼야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고통 밖에 남지 않는 연명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것을 포기할 수 있는 죽음의 선택도 개인의 자유에 포함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런 논쟁의 결과 네덜란드가 2002년 최초로 안락사를 합법화한 후 캐나다를 비롯한 유럽, 북미 국가들을 중심으로 안락사를 인정하는 국가가 점차 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그런 ‘죽음의 선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5월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연구팀이 1000명의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6%가 조력존엄사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존엄사나 안락사 제도보다 훨씬 가벼운 호스피스 완화의료법이 현재 한국에서 시행되고 있음에도 말기 환자의 기적 같은 회복 가능성을 강하게 믿고, 보호자의 미래를 담보로 사재를 털어 사기꾼들에게 가져다 바치거나 무의미한 고통뿐인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 등을 환자의 사망 직전까지 밀어 넣는 경우가 여전히 흔하다. 또한, 회복할 수 없는 병에 끊임없는 간병으로 환자-보호자가 파산하거나 살해, 동반 자살을 하는 극단적인 사건 또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내가 체험했던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죽음에 대해 받아들이고 환자와 보호자가 스스로 그들의 삶을 정리하던 분위기를 잊지 못한다. 나 또한 말기 환자들을 자주 접하면서 삶과 죽음, 그리고 환자의 자유 결정권에 대해 깊이 생각해 왔다.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사회의 윤리라는 것이 강압적으로, 오히려 폭력적으로 침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내가 언젠가 그런 상태가 됐을 때 한국에 안락사 제도가 반드시 존재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안규백 의원은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온다. 존엄한 죽음, ‘웰 다잉(Well-Dying)'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오늘, 4년간 그려온 ‘만보의’가 200회를 맞이했고 오늘이 ‘만보의’의 마지막이다. 혹시 비정기적인 칼럼식으로 투고를 할지라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 일단 고정 연재를 내려놓고 정리하는 것, 이것을 여기서나마 실천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동안 ‘만화로 보는 의료제도’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