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코로나19 백신의 배송문제로 일선 개원가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일선 개원가 원장들은 참다 못해 온도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아예 백신 접종을 정지시켜 달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백신 배송 문제는 8월 초부터 모더나 백신 공급이 늦어지면서 급작스럽게 모더나 대신 화이자 백신이 제공되면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신속한 백신 배송을 위해 백신 물량이 적은 동네 의료기관은 직접 백신을 수령하라는 지침이 내려온 것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현재까지 대략 19만 7600회 분량의 백신이 개별 의료기관에 의해 직접 운송됐다.
그러나 모더나와 화이자 등 mRNA 백신은 일정수준의 저온 냉장상태가 지속적으로 유지돼야 하는 이른바 '콜드체인' 유지가 필수적이다. 즉 반드시 일정온도 유지를 위해 온도계, 냉매제 등의 장비를 갖추고 엄격한 관리 하에 운송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가 나서 "정부가 배송 책임을 의료기관에 전가하고 있다"며 비판을 내놓고 있지만 당장 접종을 진행해야 하는 개원가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직접 백신 운반에 나서고 있다.
자신을 소아청소년과 의사라고 밝힌 청원인은 지난달 30일 '동네병원한테 코로나백신 배송까지 떠넘기다니요"라는 제목으로 청원대 국민청원까지 게시한 상태다.
이 청원인은 "동네병원이 콜드체인 업체도 아니고 아이스박스로 이 더위에 4~8도를 유지할 수 있느냐"며 "아침 진료도 못하고 한 시간이 넘는 보건소를 가는 내내 제일 걱정인 것은 온도 유지가 잘 안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에서 해야 할 중요한 업무를 개인에게 위임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 처럼 개원가에서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백신의 온도 이탈이나 훼손의 우려가 높다는 점이다. 만약 의료기관에서 사용불가 백신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환자에게 투여되기라도 한다면 접종자의 건강과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동네병원 원장들 중에선 현실적으로 온도관리가 어려운 일부 의원급 의료기관은 아예 일시적으로 백신 접종을 중단하자는 궁여지책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26일부터 7월1일까지 폐기된 코로나19 백신은 8886회분으로 이 중 대다수인 86.2%가 온도 이탈로 인한 폐기였다.
반면 의협은 지금도 접종 의료기관이 부족해 의사 한 명당 접종 인원을 100명에서 150명으로 늘린 상황에서 예방접종 의료기관을 줄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의협은 이번 백신 배송 논란이 백신 공급 문제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정부가 책임지고 안전한 운송을 담당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염호기 의협 코로나19 대책 전문위원회 위원장은 "안 그래도 SNS를 통한 접종 예약 과정에서 노쇼 등이 많아 행정상 어려움이 많은 상황에서 의료기관이 직접 아이스박스로 백신은 운송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적십자 등 기존에 콜드체인 운송이 가능한 인력들을 활용하거나 정부가 교육 받은 전문인력들을 지원해 줄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온도 유지 등의 문제로 위탁의료기관을 줄이자는 주장도 현실을 모르는 말"이라며 "현재 1~2차 접종량이 대폭 늘어나면서 현재 위탁의료기관 수도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하루 빨리 정부가 나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