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 도입과 함께 ‘의료 독재’(?) 40주년의 해를 맞고 있다. 의료에 관한 한 유독 과거 독재 정부의 오리지널 비민주적 적폐 요체를 계승 발전시켜 관제 중심적 독재 성향에 열을 올리고 있는 느낌이다.
정부가 기회 있을 때마다 자랑하는 세계 최단 기간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완성 이면에는 정부 주도 경제개발의 작동원칙인 유사 국가사회주의가 민주적 절차를 선행했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적폐 청산 방식과 국가성장률 감소라는 두 단어는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음에도 여전히 상호 관련성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국민소득 1000불도 안 되는 시절에 시작된 국가적 중요사안인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이제 3만 달러를 달성한 시점에도 관제 중심의 개발독재 원리가 작동하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건정심 의결구조, 공급자 8명 vs 정부 관련 위원 16명
대표적인 정부 주도 위원회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차관인 위원장을 비롯해 공익, 사용자단체, 근로자단체 대표 등 모두 25명으로 구성된다. 부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임명 또는 위촉한 위원 중에서 위원장이 지명하는 사람이 된다. 위원은 근로자단체 및 사용자단체가 추천하는 각 2명, 시민단체·소비자단체·농어업인단체 및 자영업자단체가 추천하는 각 1명, 의료계를 대표하는 단체 및 약업계를 대표하는 단체가 추천하는 8명,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소속 3급 공무원급 2명·국민건강보험공단의 이사장 및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원장이 추천하는 각 1명·건강보험에 관한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4명으로 구성된 공익 8명 중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이 임명 또는 위촉한다.
얼핏 한눈에 보아도 공급자 8인 대 16인의 정부 주도 위원의 일방적 구성은 준 정부기구로써 구조적 전문성과 수월성 위주의 편제를 갖는 선진국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정부가 만든 의료단체 무력화 구조가 이번에 발표한 건강보험 종합계획으로 복지부 자신의 발등을 찍었다. 건정심 구조는 의료인에게 매우 불리하고 교묘하게 만든 구조로써 정부주도의 의료인과 비 의료인간의 갈등 조장 정책에 정부 스스로 덫을 놓아 걸려든 꼴이다. 전통적 정부 우호적 가입자 단체의 반대로 종합계획이 건정심에서 통과되지 못하자, 각개 격파의 ‘서면결의’라는 규정에도 없는 치졸한 편법을 택했다.
이는 복지부가 일방적 통과를 목적으로 건정심 개별 위원에 대한 무언의 압력과 설득으로 정책 밀어붙이기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여 진다. 마이너스 역성장의 현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권 연장형 보건복지 정책의 추진을 위해 구시대의 망령인 삼선개헌용 날치기 통과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건정심 사안은 법적 허용 범위와 윤리적 문제와는 별개의 사안이다.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 치더라도 윤리적으로는 허용되는 않는 사안이 존재한다. 대개 서면 결의에 의한 의결 방식은 특별한 상황에 한해서만 국한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것이 곧 상식인 것이다.
건정심의 구조를 권투경기에 비교하자면 한 선수는 한쪽 팔이 묶인 채 양손으로 상대하는 선수와 싸워야 하고 기권을 할 수 없도록 돼있다. 기권을 하면 패배와 더불어 대전료 삭감이라는 또 다른 벌칙이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의료계에 대한 구조적 폭력도 모자라 이제는 건정심 위원에 대한 개인적인 위압적 설득에 의한 정당화 과정을 밟고 있다. 이런 준 날치기 통과 방식은 형태만 조금 다를 뿐, 이미 우리사회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익숙한 수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사악한 정치문화가 국민에게 미치는 나쁜 영향은 지대하다.
의료선진국 호주, 의료기술평가 전문가 주도로 효율적 운영
대부분의 국민은 정부를 믿고 싶어 하고 선의에 의한 정책을 펴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애당초 건정심 구조는 가장 민주적으로 보이는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참여해 사실상 민주적 방식으로 포장된 거수기 부대나 들러리 관변단체로 의료계를 제압하기 위한 고등범죄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민주화의 쟁취가 실상 반윤리적인 방법과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문민정부식 독재형 민주화 절차를 서슴없이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단체와 의료인들은 고유의 의료가치 수호와 국민건강의 증진을 궁극 목표로 삼고 있다. 아무리 유능한 정부라 해도 의료에 관한 모든 사안을 정부가 직접 개입해 해결할 수는 없다. 선진국일수록 정부는 정부 조직이 아닌 산하 공공단체 혹은 공인된 민간단체를 육성해 공공의 영력에서 큰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보건의료연구원(National Evidence-based Healthcare Collaborating Agency) 10주년 행사에서 호주의 전문가로부터 소개된 의료기술평가 현황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호주 정부는 의료기술평가를 위해 법적인 제도의 구축과 운용을 위한 지원을 하고 실제 업무는 전문가 주도로 매우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있었다.
호주 인구는 2500만명 미만이고 국민의 개인 GDP가 5만 달러를 훨씬 상회하는 고소득 선진국이다. 의료비도 전체 GDP의 10%를 넘게 지출하고 있다. 700명이 넘는 전문직과 사회대표가 참여하고 70개 이상의 기술평가위원회를 두고 있다. 세부 위원회로 취합한 내용을 최종 위원회가 검토하고 결정해 정부에 건의하면 정부는 이 중에서 약 95% 이상을 받아들여 정책으로 활용한다고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약 95%의 수용률을 만들어 내는 최고위원회는 거의 대부분 임상의사로 구성돼 있고 소수의 시민대표는 전문가 집단의 업무 진행과정을 지켜보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특히 최고위원회는 정부와는 거리가 먼 집단이다. 이 때문에 매우 효율적이고 중립적으로 잘 운용되고 있다고 호주 전문가는 발표내용을 마무리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정부의 의료 관련 심의기구는 언제나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지 극명히 대비되는 장면이었다.
기대할 것 없는 올해 수가협상 등 전문가 집단이 정부의 부당한 간섭 막아야
크게 기대할 것 없는 2019년도 수가협상이 시작됐다. 수가협상은 행위에 대한 최저 임금협상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위원회는 노동단체 대표와 사용자단체 모두 9명이고 노동전문가인 교수 6인으로 구성돼 있다. 건정심의 바람직한 구조는 공급자와 사용자 반반의 구조에 건정심의 절차적인 정당성을 감독할 소수의 제3자 집단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과거 감사원과 국정감사 및 여러 채널의 국회토론회를 통한 강도 높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건정심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건강보험수지타산위원회로 무지의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현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외치며 최저임금을 인위적으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그럼에도 유난히 고강도 노동이 필요한 의료는 노동행위에 대한 기본정책이 어떤 근거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역사적 저수가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과도한 보장성 강화 정책의 야망에 필요한 의료비 지출에 대한 재정정책이 여전히 저수가 정책의 유지를 위해 사회제도적인 압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헌법재판소나 공정위원회가 과연 사회적 양심의 보루가 되어 줄 수 있을 지도 의심스러운 세상이 됐다.
아무도 도와줄 집단이 없다면 전문직종이 스스로 일어나 정권이나 정부의 부당한 간섭을 막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집단적 자각에 의한 전문직의 자주권(autonomy)과 독립성의 쟁취가 우선일 것이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부터 성장기를 거쳐 의과대학 입학과 인생의 중요한 결정에 어른과 담임선생에 의해 결정되고 있는 우리문화는 식민, 독재, 문민의 강점의 세뇌에서 과감한 탈출과 담대한 자유로의 확보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사회 제도의 전반에 걸친 포괄적 민주화는 의사 뿐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공통된 관심이고 염원이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관제 통제방식에 순종하던 사회에서 보다 더 투명하고 공공의 참여로 운영되는 진정한 민주국가에 살고 싶은 것도 모두의 희망일 것이다. 툭하면 아무 때나 전문직을 대상으로 겁주기 식 구속수사나 보복성 세무조사를 하지 않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국가에서 살고 싶은 것이다.
국가의 경영에 관료주의가 전문주의를 우선하는 나라는 대개 독재국가나 후진국이다. 이제 겨우 선거제도로 달성한 대의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완성은 아니다. 진정한 선진 민주화 즉,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해 전문직 집단의 자주권 확보는 최고의 지성인 집단이 반드시 쟁취해야 한다.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