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병리학자 김한겸 교수는 정착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유목민처럼 일을 위해, 봉사를 위해 비행기 타고 여기 저기 다니는 본인의 현대판 노마드의 삶을 마이크로 세계, 즉 현미경 속 세상에 담아냈다.
김 교수는 본인이 미대에 진학할 거라 생각하는 친구가 있을 정도로 중고등학교 내내 미술반 활동을 하며 미술에 관심을 보였고, 현미경 사진전에 앞서 2006년 몽골 사진전, 2016년 아프리카미래재단 사진전을 열었을 정도로 예술에 대한 감각이 살아있다.
그는 풍경 사진을 찍다가도 현미경 속 장면을 생각하기도 하고, 현미경을 보다 경치를 상상하며 현미경 사진을 찍기도 한다. 어느 나라에서 본 장면이 현미경 속에 숨어 있기도 하다. 국내 혹은 병원 내에만 있었다면 자유로운 생각을 하지 못했을 거라 말하는 그는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의사(혹은 의대생) 후배들을 위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가 이달 3일까지 전시회를 여는 갤러리 류가헌 2층의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에 미국 영화배우 짐 캐리가 활약한 1998년 영화와 같은 이름의 '트루먼 쇼'라는 작품이 놓여 있다. 이 작품 속에는 마치 몰래카메라 속 주인공처럼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말고, 과감히 거기를 벗어나라는 그의 메시지를 담았다. 오른쪽 위 모퉁이의 사선은 유리글라스를 이용해 촬영효과를 냈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봉사활동에 몸담아 온 그는 전시회에 있어서도 관객을 배려한 섬세함이 묻어난다. 전시장 밖에서부터 입구, 작품 배치, 영상 스크린, 스크린 옆 거북이 관람객(현미경 사진 작품) 배치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소홀함이 없다. 관람객이 작품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도록 작품명을 작품 아래 아주 작은 글씨로, 그것도 거꾸로 표시해두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또, 이번 전시는 홍대 시각디자인학과를 나온 사위가 매니저 역할을 톡톡히 한 덕분에 가족이 함께 참여해 준비한 전시회가 됐다.
그리고 그가 촬영한 작품은 병리학에서 현미경으로 주로 촬영하는 세포나 바이러스 등과 같지만 그 영상은 보통의 영상과 유사하지 않다. 그가 불어넣은 영감 외에도 그 사진들이 작품이라 불리는 이유다. 이번 전시회를 열게 된 갤러리에 사전에 가본(dummy book)을 만들어 보내 심사를 통과한 덕분에 사진전을 수락받았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한편, 이번에 공개한 작품들은 희귀한 영상이라 학회에도 증례보고할 계획이다.
김한겸 교수의 사진전에서는 꿀을 빨아먹는 벌새, 요산 결정체로 표현한 불속으로 뛰어드는 나방, 인체에 들어온 석면체로 표현한 로마 검투사의 검(칼), 아밀로이드 단백질로 표현한 색동우산, 방선균으로 표현한 산수화 등을 만날 수 있다.
한편, 워낙 왕성한 활동으로 경력만해도 몇 페이지를 채울 정도인 김한겸 교수는 ‘호기심 천국’, ‘침소봉대’, ‘자화자찬’, ‘칼잡이’ 등 별명도 다양하다. 현재 타이틀만도 대한병리학회 회장, 대한폐암학회 부회장, 대한극지의학회장, 고대구로병원 건강증진센터 소장을 비롯해, 국내 2대 미이라 연구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또 50년 넘는 세월 동안 검도를 수련하고 지도자이기도 한 그는 한국의사검도회를 조직해 전국 의대 검도대회를 16차례 치르고, 러시아 검도연맹을부터 지도자로 초정받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여전히 활약 중이다.
끝으로, 김한겸 교수에게 향후 작품활동 계획에 묻자 그는 "내년에는 지금과는 조금 다르게 미라 현미경 사진전을 생각하고 있다"며 "보통 미라의 겉 부분을 봐왔는데 현미경으로 조직을 들여다보는 것을 생각해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