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유진 인턴기자 순천향의대 본2] 과잉 진료와 환자의 진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시행되는 ‘포괄수가제’가 오히려 환자의 진료권 보장을 방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포괄수가제(DRG)란 환자가 입원해서 퇴원할 때까지 발생하는 진료에 대해 질병마다 정해진 금액을 내는 제도다. 행위별수가제로 인한 과잉진료와 의료비 급증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002년에 도입돼 백내장, 편도, 맹장, 탈장, 치질, 제왕절개, 자궁수술 등 7개 질병군에 대해 시행 중이다.
실제로 포괄수가제가 실시된 이후 포괄수가제에 해당하는 수술 환자의 입원 일수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 제왕절개의 경우 빅5 대학병원에서 입원 일수가 평균 9.6일에서 5.5일로 줄었으며 편도 수술의 경우 병원 급에서 4.16일에서 3.42일로 감소했다.
포괄수가제 가격은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하기 때문에 포괄수가제를 실시하면 당연히 진료비가 줄어든다. 가격이 정해져 있으니 의사와 병원은 비용을 최소화할 수 밖에 없다. 이로 인해 편도 절제술을 받은 아동은 짧은 시간 입원하고, 수술 후 나타날 수 있는 급성 합병증이나 후유증에 대한 치료는 미흡해질 수밖에 없다.
의사가 자신이 한 의료행위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다. 일례로 치핵, 치열, 치루 등의 항문 질환이 두 가지 이상 공존할 경우, 제1의 수술, 제2의 수술로 나눠 제1의 수술(주수술)은 산정된 수술비를 인정받지만 제2의 수술(부수술)의 경우 반값으로 책정된다.
이에 더해 ‘치핵과 치열 수술을 동시에 시행한 경우 치열 수술은 산정하지 않는다’라는 심사 원칙과 항문 질환이 포괄수가제에 속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치핵, 치열, 치루가 모두 있을 때 환자의 본인 부담금은 원가보다 약 55% 정도 절감된다.
포괄수가제는 이처럼 환자의 입장에선 진료비 부담을 덜고 질병군에 대한 진료비가 동일한 만큼 국가에서 효율적으로 진료비 통제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의사 입장에선 수술을 하더라도 환자의 치료보다 비용상의 문제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는 ‘소극적 진료’와 ‘의료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한의사협회를 통해 민원을 접수해도 수가 협상 때 이러한 내용이 반영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수도권 소재 한 종합병원 의사는 “포괄수가제 방식이 과연 국민을 위한 제도인지, 병원들의 수익 보장과 정부의 생색내기식 제도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고 일침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 인정받고 정당한 대우를 받고 싶어할 것이다. 의사도 예외는 아니다. A라는 치료법이 최상이란 걸 알지만, 정해진 진료비 내에서 의사가 할 수 있는 차선은 B이고 이는 곧 환자에게도 치료의 선택권 제한으로 연결된다.
지난해 1월 7개 질병군 포괄수가에 대해 대대적인 개편이 이뤄졌다. 하지만 산부인과의 경우 오히려 건당 진료비는 낮아지는 등 여전히 불합리한 부분이 존재한다.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해 조금만 더 인정해주고 보장해준다면 의사는 보다 적극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환자를 치료할 수 있으며 이는 곧 높은 의료서비스의 질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의사라면 당연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의사라는 직업은 사명감과 희생정신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의사는 환자에게 진료다운 진료를 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환자의 아픔에 그 책임을 묻기보다 위로와 공감이 필요하듯이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해서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환자는 제대로 진료받을 권리가 있으며 의사는 제대로 진료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해 합리적인 수가와 적절한 업무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런 의사들의 목소리에 정부가 조금만 더 귀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는 무엇이 환자를 위한 진정한 의료를 위한 길인지 물어볼 때다. 의사들에게 희생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서로 존중하며 화합하는 것이 더 올바른 의료를 위한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