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수요조사' 발표 이후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마주 앉았으나 결국 양측의 이견만 확인한 채 논의가 중단됐다.
의협은 정부의 수요조사 발표가 '여론몰이'에 지나지 않는다며 의협을 협상의 파트너가 아닌 들러리로 이용하는 정부에 비판을 쏟아냈다. 그리고 오는 26일로 예고된 '전국의사대표자 및 확대임원 연석회의'에서 의료 총파업을 비롯한 강경 투쟁 등 대응방안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22일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제18차 의료현안협의체를 개최했으나 본격적인 논의는 하나도 하지 못한 채 중단됐다.
"의대 수요조사는 고양이에게 생선 갯수 묻는 격…국민에 수치 발표는 '여론몰이'"
중간에 회의장을 박차고 나온 의협 의료현안협의체 새 단장인 양동호 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은 전날인 21일 복지부가 40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대정원 확대 수요조사' 결과를 발표한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향후 협의체 논의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양 단장은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앞서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의대정원 확대에 대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데이터를 갖고 충분히 논의하고 발표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의대정원 확대 수요조사를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여론몰이에 불과하다고 복지부에 항의했다. 정부가 의협을 협상의 파트너가 아닌 의대정원 확대 정책 추진의 들러리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양 단장은 정부의 40개 의대를 상대로 한 정원 확대 수요조사 자체가 고양이에게 생선이 얼마나 필요한지 묻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양 단장은 "의대에게 의대생이 얼마나 더 필요하냐고 물으면 학생 수가 많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학교 위상이 높아지기 떄문이다. 또 부속병원은 값싼 전공의가 많이 늘어나니 당연히 의사가 많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할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물론 의과대학에 의대 정원을 얼마나 늘릴 수 있겠는지 조사는 할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구체적인 결과를 국민에게 발표한 것이다"라며 "이에 의협은 26일 전국의사대표자 연석회의에서 강경 파업을 포함한 대응책을 논의할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복지부 정경실 보건의료정책관은 의협이 회의를 중단한 데 대해 유감을 표했다.
정 정책관은 "정부와 의협은 17차 회의를 통해 의료 현장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왔다. 의대정원 확대뿐만 아니라 필수 의료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정책 패키지를 논의해 나가던 중에 오늘 18차 회의가 충분한 논의 없이 종료된 것에 대해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정책관은 "정부는 앞으로도 의료현안협의체를 비롯한 여러 회의체를 통해 의료사고 부담 완화, 수가 정상화 그리고 의대 정원 확충 등의 논의를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의협이 이번 주말 전국의사대표자 회의를 개최하는 데 대해서는 "그 회의에서 의료인이 국민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한다"고 말을 마쳤다.
복지부 "의료계 의대 증원 반대는 '모순', 총파업 언급으로 국민 불안 커져 우려"
앞서 이날 회의는 모두 발언 때부터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전날인 21일 복지부가 '의대정원 확대 수요조사' 결과를 공개한 직후, 의협이 파업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먼저 인사말에 나선 정경실 보건의료정책관은 "복지부는 10월 19일 필수의료 개선대책 발표 이후 의료분쟁제도개선협의체를 만들어 의료사고 부담 완화를 논의하고, 의료계 전문위원회를 통해 지역필수의료전달체계 개선과 수가 보상 및 전공의 근무 여건 개선 등 양질의 수련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체계를 개편하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정 정책관은 "아울러 오랫동안 누적돼 온 현장의 의사 부족에 대한 현실적 해법으로서 의사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작업에도 착수했다. 그 첫 단계로 각 의과대학으로부터 현 교육자원 활용 또는 향후 추가 자원 투자를 통해 어느 정도 의대 정원을 늘릴 수 있을지에 대한 수요조사를 실시했다"며 "이는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한 기초 조사로서 의학교육 점검반을 통해 하교별 계획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동시에 지역별 의료 수요와 인프라 상황, 인구 고령화와 근로 시간 감소 등 사회 변화 요인을 고려해 증원 규모를 논의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정 정책관은 "그런데 이제 막 의대 정원 논의의 첫발을 뗀 상황에서 의사협회의 총파업 및 강경투쟁 언급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은 진료실과 응급실, 수술실에서 언제 다시 의사 단체가 국민 생명을 담보로 실력을 행사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의료계는 의사 부족으로 진료실 문을 닫는 현실을 직시하고 국민의 뜻을 들어야 한다. 의료계는 인력 부족으로 수억원의 연봉을 제시해도 의사가 오지 않는데도 의사 수를 늘릴 수 없다는 모순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소모적인 갈등으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된다. 지금 당장 시급히 해야 할 의사인력 확대를 추진하면서 장기적으로 어떻게 의료인력 수급을 추진할지에 대한 대비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뒤이어 인사말에 나선 양동호 단장은 결심한 듯 정부를 향해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양 단장은 "정부는 대한의사협회를 필수 지역으로 대체를 마련하기 위한 공식적인 협상의 당사자로 생각하고 있나"라며 "의협은 정부의 의료자원 확충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해 마지못해 협상 테이블에 앉힌 들러리에 불과한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그는 "복지부는 제10차 의료현안협의체에서 과학적 근거를 기반해 적정 의사 인력 확충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미래 의료 수요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필요 인력에 대한 수급을 추계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어제 발표한 의대정원 확대 수요조사는 과학적 근거게 의한 것이 아니었다. 대학과 병원을 대상으로 한 주먹구구식 수요조사 결과를 면밀한 분석을 통한 수급 추계라고 생각하나?"라고 반발했다.
양 단장은 "정부의 독단적인 졸속 수요조사 결과 발표로 의료계는 큰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정부가 의사협회를 협상과 협의의 당사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의협은 더 이상 이 자리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며 "정부가 의료계와 충분한 논의와 합의 없이 의대정원 정책을 밀어붙이고 이를 위해 비과학적이고 편파적인 수요조사 결과를 활용한다면 이는 지난 9.4 의정합의를 무참히 파기하고 정부에 대한 의료계의 신뢰를 짓밟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정부가 의료계와의 소통을 거부하고 신중한 검토 없이 의대 증원 정책을 강행하려 한다면, 의료계는 최후의 수단을 동반한 강경 투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며 "향후 발생하게 될 우리나라 필수 의료, 지역 의료 공백으로 인한 국민의 피해에 대한 모든 책임은 오롯이 정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의료계는 오는 26일 오후 3시 전국 의사 대표자회의 및 확대 임원 연석회의를 통해 의대정원 증원 대응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