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배진건 칼럼니스트] 파라바이오시스(parabiosis)라고 불리는 병체(竝體)결합 실험의 기원은 180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젊은 쥐와 늙은 쥐를 외과 수술로 몸을 붙인 후 두 쥐는 몇 개월간 계속 혈액을 공동으로 사용했다. 과학자들은 쌍둥이와 같이 결합된 유기체가 서로 영향을 줄 수 있는 지에 관심이 있었다. 무엇보다 파라바이오시스 기법으로 노화방지 효과를 알아내고자 했다. 늙은 쥐와 젊은 쥐가 혈액을 공유하자 젊은 쥐의 피는 늙은 쥐를 젊게 만드는 듯 보였고 소모된 근육을 재생시키고 인지 능력을 회복시켰다.
노화가 직접적인 질병은 아니다. 하지만 수명을 단축하는 만성 질환의 위험인자라는 점에서 잠재적인 치료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노화 치료의 한 방법으로 거론되는 것이 파라바이오시스와 같이 젊은 피를 수혈하는 청춘요법이다.
2017년 미국 캘리포니아 몬트레이 소재 스타트업인 암브로시아(Ambrosia)는 혈액의 액체 성분인 젊은 혈장 수혈을 리터당 8000 달러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로부터 혈액을 강제적으로 채취하는 디스토피아(dystopia)적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시장의 흥분은 곧 사라졌다. 생명윤리학자 크레이그 크루그먼(Craig M. Klugman)은 부자들이나 권력자들만 이 건강보험에 의해 보장되지 않는 이러한 요인들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런 디스토피아적 생각을 사실로 행한적인 있다는 어느 나라의 원수도 있고 어떤 부자도 있다는 소문은 만연하다.
그러기에 혈장에 존재하는 단백질들의 변화가 노화에 따라 분명히 존재한다는 가설이 가능하다. 단백질은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의 workhorses이기 때문에 세포의 단백질 변화는 당신의 몸이 변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건강검진 후 알 수 있듯이 콜레스테롤 수치 관리는 꼭 필요하다. LDL·HDL콜레스테롤 수치를 적절히 유지하면 혈관·뇌 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5일에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발표된 미국 스탠포드대(Stanford University) 연구진의 논문 'Undulating changes in human plasma proteome profiles across the lifespan'에 따르면 노화는 평생에 걸쳐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세 번의 급진적인 노화 시기를 거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팀이 찾아낸 노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변곡시기(distinct inflection points)는 34살, 60살, 78살이다. 나이가 들면서 몸 안에서 노화의 급속적인 기어가 세 번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를 주도한 스탠포드대 신경과학자 토니 와이스-코레이(Tony Wyss-Coray) 교수는 "이 연구를 시작했을 때 우리는 나이는 점진적으로 먹는 것이기 때문에 노화도 상대적으로 서서히 진행될 것이라고 단순하게 가정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결과는 그런 예상과는 딴판이었다. 단백질 수치로 본 노화 그래프는 선형 곡선이 아닌 세 개의 뚜렷한 꼭지점을 형성했다. 단백질 수치의 급변은 생체 활동 프로그램의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연구진은 특히 30대 중반인 34살 무렵에 노화 관련 단백질 수치가 급등하는 걸 보고 매우 놀랐다고 했다.
연구진은 젊은이로부터 노년까지 18~95세에 이르는 4263명의 혈액에서 액체 성분인 혈장을 분리한 뒤, 여기에서 2,925가지의 혈장 단백질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새롭게 만든 bioinformatics기법을 이용하여 이 가운데 1379가지 단백질이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 수치가 non-linear하게 변화하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그러나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백질 수치의 비선형(non-linear) 변화가 노화의 결과인지, 아니면 그 원인인지도 불분명하다. 와이스-코레이 교수는 다만 "혈액 속 단백질 대부분은 다른 장기 조직에서 오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예를 들어 노화한 단백질의 출처가 간이라면 간이 늙고 있다는 걸 뜻한다.
연구진은 특히 이번 연구에서 373개의 단백질 조합으로, 사람의 나이를 3년 범위 내에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생리시계 시스템(Biological Cloak System)을 구축했다. 이를 개인의 혈액 단백질 구성과 비교하면 신장 같은 특정 장기의 노화가 다른 사람에 비해 빠른 지, 더딘 지를 판별할 수 있다. 연구진이 생리시계를 적용해본 결과, 측정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상당히 낮게 나온 사람들은 건강 상태가 매우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남성과 여성의 노화 경로가 다르다는 것도 확인했다. 나이에 따라 변화하는 1379개 단백질 가운데 거의 3분의2에 해당하는 895개 단백질은 남성과 여성 중 특히 한쪽의 노화와 만 관련성이 깊었다. 연구진은 앞으로 쥐의 파라바이오시스와 같은 긍정적 효과를 내는 혈장 단백질을 찾아내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이번 연구는 초기단계일 뿐이다. 이번 연구에서 드러난 혈액 단백질의 노화 패턴이 보편적으로 확인되는지, 각 단백질의 노화 기여도는 얼마나 되는지 등은 앞으로 연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연구진은 성급하게 이번 연구를 적용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임상에 적용되려면 앞으로 5~10년은 더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추후 연구가 의도대로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조만간 피 한 방울로 적어도 세포 수준의 생체 노화도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 것으로 연구진은 기대한다. 와이스-코레이 교수는 "AI를 이용하면 적게는 9개의 단백질만으로도 정확한 테스트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중앙대 약대 교수이며 하플사이언스 대표인 김대경 교수는 그동안 노인성 질환의 단서를 찾는 연구를 지속해왔다. 은퇴하기 전 세상에 도움이 될 물질을 개발해가겠다는 생각에 연구 속도를 높였다. 그는 6년 전 파라바이오시스라는에서 희망을 봤다. 늙은 쥐와 젊은 쥐가 혈액을 공유하자 늙은 쥐의 피부 상태가 좋아진 것을 발견했다.
김 교수는 혈액 속 1300여 개 단백질 중 어떤 물질이 노화 역전 현상을 일으키는지 조사했다. 하플(Harpln1)이라는 단백질이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하플은 세포외기질의 구성 성분인 히알루론산과 아그리칸을 연결해 세포 표면 장력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체내 하플 농도가 줄어들어 피부 조직이 힘을 잃는다.
이 같은 원리를 발견한 뒤 노화된 피부를 재생하는 약물로 개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인 최학배 대표와 하플사이언스를 2018년 만들었다. 골관절염과 탈모로 적응증을 넓혀 노화를 멈추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었다. 이번에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된 논문 Fig. 1-I에 사람과 쥐의 노화에 관련된 46개의 단백질에 하플(HAPLN1)도 존재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전통적인 노인 진입 나이인 만 60세 환갑이 그 셋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78세가 60세보다 더 급속한 노화가 되는 것은 그래도 이해가 간다. 그 나이가 되면 기력도 급속히 떨어지고 건강에 대한 자신이 확 줄어드는 것이 경험적인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 34세가 60세 보다도 더 심하게 노화가 되는 변곡점인 것에 그 또래 젊은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오늘이 2020년의 첫 금요일이기에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한다. 당신의 나이가 한 살 더 먹는 새로운 한 해에 내 몸 안에서의 단백질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한 해를 젊게 살 것인가? 2020년 당신의 나이가 아무리 젊다고 해도 34살이랑 멀지 않고 당신이 나이가 많다고 느껴도 결국 78살에 가깝다. 중년이라고 느끼기에 잔치를 건너띠는 환갑의 나이도 그렇다.
노화를 지연시키는 비결은 회춘 요인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노화를 촉진하는 오래된 혈액의 조직 유지 및 회복을 방해하는 요인을 차단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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