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지난달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과 화산면 보건지소에서 시행하려던 원격의료지원 시범사업이 전라북도의사회의 항의로 유보됐다. 전북은 환자 편의와 의료전달체계를 내세웠지만, 전북의사회는 밀실행정과 의료법 위반을 내세워 강력하게 반대했다.
전북은 지난달 14일 완주군에서 운주면, 화산면에서 지역주민 40명을 대상으로 원격의료지원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보건지소를 이용하는 환자들에게 공중보건의사와 방문간호사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부터 각 지자체에 이 사업에 동참하도록 했고 전북 완주·김제, 충남 홍성·서천, 제주 서귀포 등 전국 9개 시도, 47개 시군구에서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강영석 전라북도 보건의료과장과 김재연 전라북도의사회 정책이사는 이런 내용으로 최근 '전주MBC 이슈 옥타곤에 출연해 '인사이드 : 원격의료, 이틀만에 중단된 이유는?' 주제로 설전을 벌였다.
① 거동 불편 환자 편의 vs 대면진료로 제대로 관리해야
강영석 과장은 “의료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주민들의 의료서비스 요구에 대응해야 하고 여기에 답을 줘야 한다”라며 “국가는 국민 건강권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확충하기 위해 원격의료가 나오게 됐다”라고 말했다.
강 과장은 “연세가 많거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 의료서비스 접근성이 떨어지는 환자, 만성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 등에 대해 40여명을 선정했다. 공중보건의와 간호사들이 그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해서 건강 문제를 지금보다 더 편리하게 풀어주기 위한 시범사업이다”라고 했다.
김재연 이사는 “원칙적으로 대면진료를 하면 의사와 환자가 눈과 눈을 마주치고 환자 상태를 꼼꼼하게 봐야 한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라면 당뇨병과 고혈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질환도 훨씬 많이 가지고 있다”라며 “그만큼 거동이 불편한 환자일수록 의료기관에서 주의깊게 관리해야 하고,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도록 의료기관에 방문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밝혔다.
김 이사는 “할머니가 보건소에 오는 거리가 아무리 길어도 30분이다. 방문간호사가 환자를 직접 보건소에 데려오면 이동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보건지소 사업의 취지가 그렇게 시작됐다”라며 “그러나 기존에 있던 방문진료가 갑자기 원격의료로 둔갑했다”고 말했다.
김 이사는 “원격의료를 하려면 첨단장비가 구비돼야 하고 3000만원에서 4000만원에 이르는 서버도 갖춰야 한다. 원격진료실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비용대비 실효성이 떨어진다”라며 “환자를 직접 보건소나 의료기관에 갈 수 있도록 하고 약국에 가서 약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환자 건강증진에 더 효과적이다”라고 했다.
② 의사가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vs 밀실행정이 문제
강영석 과장은 “의료계가 우려하는 대형병원의 원격의료는 불가능하다. 의사가 환자군에 따라 언제든 내가 달려올수 있거나 환자가 가까운 거리에서 대처할 수 있는 병원만 원격의료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지역에 있는 공보의 제도로 시범사업을 해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 과장은 “지역 의사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의사회(대한의사협회)가 다른 사안과 함께 묶어서 정부와 대화를 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대처에 늦어지고 변질될 수밖에 없다”라며 “사안별로 투쟁해서 얻을게 있으면 투쟁을 하더라도, 원격의료는 다르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강 과장은 “원격의료만큼은 전문가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고 전문가와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의사들이 이런 주체적인 자세로 생각을 갖고 임하길 바란다”라고 했다.
김재연 이사는 “오랜 시간동안 보건복지부와 의료계가 신뢰관계가 깨져있는 것이 문제”라며 “이번 시범사업도 해당 전문가들과의 상의가 없이 이뤄졌다. 의사 누구도 사전에 알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김 이사는 “당시 맨 처음에 완주군에서 기자회견을 해서 알게 됐다. 심지어 시범사업의 주체인 공보의들도 연락받은 것이 없었다고 했다. 행정을 할 때 당사자의 의견이 완전히 배제됐다. 밀실행정과 다름 없었다”라고 했다.
③ 시범사업 통해 법 개정 검토 vs 의료법 위반 공보의 책임
강영석 과장은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측면에서 정부에서도 충분히 검토했다. 의료법상 의사와 환자의 원격의료는 허용하지 않지만, 의료인간의 원격의료는 가능하다. 그래서 공보의와 간호사를 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강 과장은 “간호사는 의료법상 대리처방을 할 수 없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시범사업이라는 제한적인 방법을 취하는 것이다. 법이 문제가 된다면 그 법을 바꿔야 하는데 그 법을 바꾸려면 시범사업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라며 "이를 법에 어긋난다고 해서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시범사업을 통해 법을 개정해서라도 본사업을 추진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재연 이사는 “대리처방으로 의료법 위반 우려가 있는데도 보건소가 임의로 원격의료 대상자 환자 40명을 선정했다. 의료법 위반은 물론 만약 대리처방으로 사고가 난다면 공보의가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의 책임을 져야 한다. 이를 내버려두는 것은 선배 의사로서 도리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 이사는 “현재도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에게 하는 원격의료가 도서벽지에서 시행 중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원격의료 중 하나인 원격진료가 들어간 것이 문제다. 처방, 투약이 이뤄지는 원격진료는 혼란만 초래한다. 의료계와 협의했더라면 이런 혼란까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는 “원격의료를 시행한다면 모든 의사들 중 한 직능에라도 불이익이 돌아가서는 안 된다. 원격의료를 한다면 환자 접근성이 좋아야 하고 양질의 의료서비스, 효율적인 의료전달체계가 원칙이어야 한다. 하지만 원격진료는 하면 할수록 부작용만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④ 의료전달체계에 도움 vs 제대로 된 진료수가 산정부터
강영석 과장은 “원격의료는 의료전달체계를 바로 세우는 좋은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건강 문제를 갖고 있는 환자는 큰 병원에 가야 한다. 하지만 환자가 치료를 받고 나서 지역에 있는 병의원으로 다시 복귀해야 하고, 지역에 있는 의사들이 이 환자를 관리를 해야 한”라고 말했다.
강 과장은 “멀리 있는 큰 병원에서 지역 병원의 의사와의 정보 전달체계도 원격의료일 수 있다. 원격진료로 개념을 축소시킬 것이 아니라 폭넓게 의사의 원격의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상황에 따라 좀 더 적극적이고 유연하게 대처를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강 과장은 “의료계가 무조건 반대하기 보다는 의료계와 시행착오를 통해 사안에 맞는 방법을 모색하길 바란다”고 했다.
김재연 이사는 “미국은 건강보험 수가가 비싸기 때문에 원격의료가 돼있다. 전화로 상담해도 10분당해도 시간당 금액이 지불된다. 미국 의사 입장에서는 원격의료 하는 편이 훨씬 더 유리하다”고 했다.
김 이사는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환자 상담료를 받을 수 없고 제대로 된 진료비가 책정돼있지 않다. 환자 한명당 이야기를 다 들어주면 한 시간이 넘기도 하지만 이를 별도로 청구할 수 없다. 이런 상담에 대한 적절한 진료비를 인정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차의료는 다 고사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