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필수의료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특례를 담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이 신생아중환자실(NICU) 의료진에게는 오히려 상시적인 조사와 소명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연속적이고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NICU 진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개별 의료사고가 아닌 입원 기간 전체가 분쟁 조정과 감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5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김윤·박희승 의원,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 주최, 대한신생아학회 주관으로 ‘의료분쟁조정법과 신생아중환자 진료’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대한신생아학회는 NICU 진료 기반을 지키기 위한 방안으로 ▲소아청소년 기본 특별법 제정을 통한 고위험 신생아 중증장애 국가 지원 ▲신생아 세부전문의의 의료사고 감정 참여 의무화 ▲NICU 내 모든 의료행위의 필수의료 행위 명시 등 3가지를 제안했다.
조정 절차 '자동 개시'…NICU 사망∙중증장애 전수조사 가능성
토론회에 참석한 신생아 진료 의료진들은 특히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의 취지와 큰 방향성에 대해선 공감하면서도 NICU 현장에 미칠 영향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대한신생아학회 최창원 부회장(분당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은 “의료분쟁조정법은 의도와 달리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며 의료분쟁 조정 절차 자동개시 규정을 문제로 지적했다.
개정된 의료분쟁조정법은 고위험 필수의료 행위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의료분쟁 조정 절차가 자동으로 개시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NICU 진료가 분만처럼 단일 행위로 끝나는 의료행위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처방과 판단이 이어지는 연속적 의료행위라는 점이다.
최 부회장은 “NICU는 수주에서 수개월간 수천 건의 처방과 판단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속적 의료행위”라며 “단일 의료행위를 전제로 만든 제도를 신생아중환자 진료에 적용할 경우 NICU 입원 기간 전체에 대한 소명으로 변질되고, 의사는 치료 행위마다 중과실 여부를 판단받아야 하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구조가 실제 현장에서는 사실상 모든 사망과 중증장애 사례에 대한 전수조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병원의 동의 없이 조정 절차가 자동으로 개시되는 데다, 국내에는 미숙아의 사망이나 후유장애에 대한 국가 차원의 충분한 경제적 지원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최 부회장은 “미숙아의 사망이나 후유장애에 대한 국가 차원의 경제적 지원이 없는 국내 현실에서 이 법은 부모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선택지가 된다”며 “무과실이면 국가가 보상하고 과실이 밝혀지면 책임보험으로 배상받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병원 동의 없이 조정 절차가 자동개시되기 때문에 NICU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사망과 중증장애가 전수조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결국 1년 내내 조사와 소명이 진료와 동시에 돌아가고, 신생아과 의사의 책상 위에는 관련 서류가 쌓이는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개별 행위로 따지면 원인을 찾을 수 없고, 입원 기간 전체를 묶으면 사실상 신의 영역인 무결성을 요구하게 된다”며 “신생아중환자 진료에 대해서는 잘잘못을 가리는 방식이 아니라, 의료진이 진료를 지속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달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학회는 NICU 내 모든 의료행위를 ‘필수의료 행위’로 명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신생아중환자 의료는 최선의 진료에도 불구하고 사망이나 중증장애가 발생할 위험이 높은 특수성이 있는 만큼, 이를 시행령 등에 명확히 반영해 법적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개정 의료분쟁조정법은 12대 중과실에 해당하지 않는 필수의료 행위의 경우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형사 기소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과실 여부는 의료사고심의위원회가 판단한다.
초극소 미숙아 PDA 사건, 감정 과정 문제…신생아 의료사고엔 세부전문의 참여 필수
이날 토론회에서는 초극소 미숙아의 뇌성마비가 의료진의 동맥관 개존증(PDA) 수술 지연 때문이라는 법원 판결도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법원은 26주, 900g으로 태어난 초극소 미숙아에게 발생한 뇌성마비가 의료진 과실에 따른 것이라며 병원에 3억2500만원 배상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대한신생아학회 전지현 법제위원장(차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은 해당 판결을 두고 사후확신 편향과 신생아 세부전문의의 감정 미참여 문제를 지적했다.
전 위원장은 “해당 사건의 100일간 경과를 살펴보면 표준을 벗어난 의료행위는 단 한 건도 없었다”며 “일반적 잣대로 사고를 심의할 경우 결과 중심의 사후확신 편향이 발생할 위험이 크고, 고위험 신생아의 태생적 한계가 간과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생아중환자실 의료사고 감정 및 심의 시 신생아 세부전문의 2인 이상의 참여를 명문화해야 한다”며 “생존을 위한 신생아중환자실의 모든 진료를 필수의료 행위로 명시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
대한신생아학회 장윤실 회장(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은 분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고위험 신생아와 중증장애 아동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뇌성마비 등 중증장애를 갖게 된 신생아의 NICU 치료뿐 아니라 이후 재활치료, 심리·정서 지원, 경제적 지원까지 정부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장 회장은 “신생아중환자뿐 아니라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우산을 씌워달라”며 “그래야 분쟁 조정이 남용되는 사례를 막을 수 있고, 신생아 의사들도 마음 놓고 진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의료분쟁조정법 발의했던 국회의원들은 의료진과 환자들이 상생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은 자동 조정 개시에 대한 우려에 대해 “현재 법에도 감정과 조정 절차에 대해선 시행령, 시행규칙으로 위임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 조정 신청이 남용되는 경우에는 사전 스크리닝이나 간이 조정 등의 법적 근거가 있다”며 “그런 형태의 사전 스크리닝 제도를 만들면 된다. 그리고 이는 현재 법에서도 허용하고 있다”고 했다.
또 “의료사고의 법적 부담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의료진의 반대편에는 의료사고에 고통을 겪는 환자와 보호자가 있다”며 “의료진 입장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게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선 최선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중간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은 “이번 법안을 가장 반대했던 게 환자들”이라며 “이번 법의 방향성은 맞지만 취지에 100% 부합하지 않는 부분도 있을텐데, 오늘 나온 의견들을 반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