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신경정신의학회 모든 회원들은 2018년 마지막 날 저녁에 날아온 청천벽력과 같은 비보에 애통하고 비통한 감정과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러할 진데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유족들의 심경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또한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해 왔던 동료들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고인이 돌보던 환자분들 역시 받을 심적 충격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고 임세원 교수를 잃고 크나 큰 슬픔에 잠겨있을 유족, 동료들과 그 고통을 함께 하고자 합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1일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피살사건에 대한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고인은 그의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신이 통증으로 인한 우울증의 고통을 경험한 치유자다, 본인에게는 한없이 엄격하면서 질환으로 고통받는 많은 이들을 돌보고 치료하고 그들의 회복을 함께 기뻐했던 훌륭한 의사이자 치유자였다”고 회고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고인은 직장 정신건강 영역의 개척자였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국형 표준자살예방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의 개발책임자다. 우리나라의 자살예방을 위해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던 우리 사회의 리더였다”고 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별도의 추모 과정을 통해 고인을 뜻을 애도하고 기억하기 위한 마땅한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진료현장은 질병의 고통과 슬픔을 극복하는 아름다움이 넘치는 희망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러나 재발과 회복의 반복을 일선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치료현장은 결코 안락한 곳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우리나라 정신보건의료 제도는 의사에게 안전한 치료환경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환자에겐 지속적 치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고의 위험은 온전히 정신과 의사와 치료팀의 스탭들이 감내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정신과 환자를 위해 일하는 모든 이들이 겪을 수도 있는 비극이었다”고 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이런 문제와 해결책에 대한 섣부른 논의를 지양하고,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완전하고도 안전한 치료 시스템 마련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나가겠다”고 했다.
신경정신의학회는 마지막으로 고인이 사망하기 보름 전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글을 소개했다.
얼마 전 응급실에서 본 환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신 선생님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긴박감과 피냄새의 생생함 그리고 참혹함이 주된 느낌이였으나 사실 참혹함이라면 정신과도 만만치 않다. 각자 다른 이유로 자신의 삶의 가장 힘겨운 밑바닥에 처한 사람들이 한 가득 입원해 있는 곳이 정신과 입원실이다.
고통은 주관적 경험이기에 모두가 가장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보다 객관적 상황에 처해 있는 관찰자 입장에서는 그중에서도 정말 너무 너무 어려운, 그 분의 삶의 경험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혹함이 느껴지는,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는 도대체 왜 이 분이 다른 의사들도 많은데 하필 내게 오셨는지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스스로 되뇌이면서 그 분들과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한다. 이렇게 유달리 기억에 남는 환자들은 퇴원하실때 내게 편지를 전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20년 동안 받은 편지들을 꼬박꼬박 모아 놓은 작은 상자가 어느 새 가득 찼다.
그 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시고 나또한 그 분들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전수돼 더 많은 환자들의 삶을 돕게 될 것이다. 모두 부디 잘 지내시길 기원한다.
이번 주말엔 조금 더 큰, 좀 더 예쁜 상자를 사야겠다.
(과연 예쁜 상자를 샀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인으로 인해 새로운 삶을 찾을 수도 있었던 여러 환자분들의 편지는 갈 곳을 잃었습니다)
고통은 주관적 경험이기에 모두가 가장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보다 객관적 상황에 처해 있는 관찰자 입장에서는 그중에서도 정말 너무 너무 어려운, 그 분의 삶의 경험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혹함이 느껴지는,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는 도대체 왜 이 분이 다른 의사들도 많은데 하필 내게 오셨는지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스스로 되뇌이면서 그 분들과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한다. 이렇게 유달리 기억에 남는 환자들은 퇴원하실때 내게 편지를 전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20년 동안 받은 편지들을 꼬박꼬박 모아 놓은 작은 상자가 어느 새 가득 찼다.
그 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시고 나또한 그 분들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전수돼 더 많은 환자들의 삶을 돕게 될 것이다. 모두 부디 잘 지내시길 기원한다.
이번 주말엔 조금 더 큰, 좀 더 예쁜 상자를 사야겠다.
(과연 예쁜 상자를 샀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인으로 인해 새로운 삶을 찾을 수도 있었던 여러 환자분들의 편지는 갈 곳을 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