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배후 수술인력이 다른 중증환자를 수술하고 있더라도 응급실에서 초기 처치를 제공하거나 다른 진료과가 대응할 가능성을 확인하지 않은 채 응급환자 수용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법원의 판단이 최종 확정됐다.
대법원이 계명대동산병원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행정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한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하면서, 앞으로 응급환자 수용곤란 사유를 판단할 때 특정 진료과의 수술 가능 여부가 아닌 병원 전체의 가용자원을 확인해야 한다는 기준이 법적 잣대로 남게 됐다.
8일 대법원 제3부는 지난 3일 학교법인 계명대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보조금 중단 처분 및 시정명령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이번 사건은 2023년 3월 대구에서 건물에서 추락한 17세 환자가 약 2시간 동안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숨진 사건에서 비롯됐다.
계명대동산병원은 당시 119구급대와 대구 119구급상황관리센터의 환자 수용 요청에 다른 중증외상환자를 수술하고 있어 추가 환자를 수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복지부는 병원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환자 수용을 거부해 응급의료법을 위반했다며 시정명령과 6개월간 응급의료 관련 보조금 지급 중단 처분을 내렸다. 계명대는 당시 외상외과 의료진이 모두 다른 응급수술에 투입돼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기 어려웠다며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병원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병원에 재직 중인 외상외과 전문의 전원이 응급수술에 참여하고 있었고, 응급실에 근무하던 전문의 2명과 전공의 2명만으로는 진료 여력이 충분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특정 진료과의 최종수술 가능 여부와 병원 전체의 응급환자 수용능력은 구분해야 한다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환자 수용 요청이 들어온 당시 계명대동산병원 응급실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2명을 포함해 의사 4명이 근무하고 있었고, 전체 28개 병상 중 13개 병상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항소심은 병원이 환자를 우선 수용해 기도 확보와 산소 공급, 수혈·수액 공급 등 초기 응급처치를 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활력징후를 관찰하면서 뇌출혈이나 복강·흉강 내 출혈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도 가능했다고 봤다.
응급의료법상 응급의료는 최종수술에만 한정되지 않고 상담과 구조, 이송, 응급처치와 진료 등 환자의 생명 위험과 증상 악화를 막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포함한다는 이유다.
다른 진료과의 대응 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점도 병원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당시 진행 중이던 중증외상환자 수술에는 외상외과 전문의 2명과 정형외과 전문의 1명이 참여했지만 신경외과 전문의는 투입되지 않았다. 다른 환자에게 혈관조영술을 시행한 영상의학과 전문의도 환자 수용 요청이 들어오기 25분 전 시술을 마친 상태였다.
항소심은 신경외과 진료나 영상의학과를 통한 출혈 확인·색전술 가능성 등을 확인하지 않고 외상외과 수술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환자 수용을 거부한 것은 최선의 조치를 다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환자 상태 역시 판단 근거가 됐다. 당시 환자는 의식이 명료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했으며 혈압 110/70mmHg, 맥박 분당 90회, 산소포화도 96%로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구급대원도 환자를 중증외상환자로 분류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병원이 전화로 전달받은 후두부 부종과 발목 외상 등의 정보만으로 환자에게 즉각적인 외상외과 수술이 필요하다고 단정하고, 직접 검사하거나 중증도를 평가하지 않은 채 수용을 거부했다고 봤다.
특히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대구 전역에서 2차 병원까지 환자 수용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알렸다는 점도 고려했다. 개별 의료기관이 특정 진료과의 사정만으로 환자를 선별적으로 거부할 수 있도록 하면 응급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려는 응급의료법의 취지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이 이 같은 항소심 판단을 확정하면서 의료기관은 최종수술을 담당할 전문의가 다른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수용곤란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워졌다. 응급실 병상과 당직 의료진, 초기 응급처치 가능성은 물론 다른 진료과의 검사·시술 가능성까지 확인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가 지난 7월 입법예고한 응급의료법 시행령 개정안은 최종진료 전문인력이 다른 중증환자의 수술이나 최종진료를 수행하는 경우를 정당한 수용곤란 사유에 포함했다.
다만 이번 판결은 ‘최종치료가 어렵다’는 사실과 ‘환자 수용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구분했다. 전문인력이 다른 환자를 수술하고 있더라도 병원이 제공할 수 있는 초기 처치와 대체 진료 가능성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소식에 의료계는 환자를 수용해도 치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의료사고 책임을 지고, 수용하지 않으면 응급의료법 위반 책임을 질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의료계 관계자는 "이 같은 법적 불확실성이 응급환자 수용을 확대하기보다 응급의료 현장에서 의사와 의료기관의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며 "응급환자 진료 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피한 결과에 대해서는 의료진의 책임을 합리적으로 감면하고 국가가 보상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개별 병원과 의사에게 수용 책임을 묻는 데 그치지 말고, 최종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환자를 배정하는 국가·지역 단위 이송조정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