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 문제에 대해 최근 대한민국의학한림원에서 적정 의사 수 집계를 위한 연구에 돌입한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논란이 많았던 국내 의사 인력 수를 제대로 파악하고 미래 상황에 맞는 적정 인력 수급을 위해서다. 의학한림원은 공정한 연구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정부나 별도 기관에서 연구비를 조달받지 않고 자체 연구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도 적정 의사 수 이견…‘OECD 통계’ VS ‘국가별 산정 기준 달라’
그동안 국내 적정 의사 수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서울의대 김윤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우리나라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줄곧 주장해왔다.
김 교수에 따르면 2008년 OECD 평균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3.08명으로 우리나라는 1.85명이었다. 2017년 OECD평균은 3.42명으로 늘었고 우리나라는 2.34명으로 미미하게 증가했다.
특히 절대적인 수 증원도 중요하지만 지역간 격차와 의료기관 종별, 전문과목별 불균형이 큰 현재 상태에서 의사 인력 증원을 기반한 지역 의료체계 강화가 필요하다는 게 의대 증원 찬성 측 견해다.
이 같은 주장을 골자로 문재인 정부는 공공의대 설립과 함께 의과대학 정원을 10년간 총 4000명 확충하겠다고 밝혀왔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OECD 통계만으로 우리나라 의사 인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을 입증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국가별로 의사 인력을 산정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일례로 미국이나 호주 등은 풀타임 근무자를 기준으로 의사인력을 산정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은 근무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인력을 산정한다. 즉 단순비교는 어렵다 게 의료계의 주장이다.
특히 의협은 잘못된 통계를 바탕으로 의사 수만 늘리게 되면 도시의 경우 과잉공급으로 인한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에 정밀한 의사인력 추계를 바탕으로 지역간 불균형 문제를 우선 해결하는 것이 선결과제라는 입장이다.
줄어드는 전체 인구‧베이비붐 세대 고령화 추세 등 고려사항 많아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이 같은 논란을 이젠 종식시키고 정확한 의사 수 통계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연구에 착수했다. 정부나 특정 기관이 개입할 경우, 연구의 공정성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비도 자체 조달하기로 했다.
의학한림원 관계자는 "현재 정부와 의료계도 그렇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적정 의사 수에 대한 이견이 많다. 의협에선 많다고 하고 또 일부 현장에선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런 문제를 제대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이번 연구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또한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 추세와 향후 줄어드는 인구 추계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미래 적정 의사 수까지 예측하는 게 이번 연구의 핵심 목표다.
미래 의사 수를 정확히 예측하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다양한 인구통계적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통계청 인구 추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인구는 2020년 기준 5184만명이지만 2070년 3766만명으로 줄고 100년 뒤엔 2000만명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먼 미래를 고려하면 의사 수 감소가 요구되지만 1953년생부터인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로 인한 의료 이용 증가를 감안하면 단기적으로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
이렇게 의사 수를 늘리고 난 이후 다시 베이비붐 세대가 100세가 되는 2053년을 기점으로 재차 인력 감축이 필요한 상황이다. 더욱이 무리 없이 이 모든 의사 인력 조정 대책이 성공하기 위해선 의과대학을 통해 의사가 배출될 수 있도록 적어도 15년 전부턴 개정된 정책 시행이 필요하다.
의학한림원 관계자는 "국내 현실에 맞는 적정 의사 수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측정하는 것이 목표다. 특히 의사 수가 정말 부족하다고 해 정부 말대로 의대 정원을 늘리려면 최소 15년이 걸린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미리 정확한 추계를 내고 통계에 맞는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준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의사 사회적 책무 강화 위한 의대 교육 개선 방안 필요
의사 수 조정 등 정책적 노력 이외에도 의료인력의 기피지역 현상을 개선하고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의과대학 내 교육적 해결대안도 모색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현재 보건복지부 의료인력정책과에서 연구비를 받아 의사의 사회적 책무를 강화할 수 있는 의과대학 교육 개선 방안을 연구 중에 있다.
의사 수 자체를 조절하는 일은 시간이 오래걸리기 때문에 교육 개선을 통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특히 교육적 차원의 접근을 통해 의료격차 문제 또한 해결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구가 시작됐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한희철 이사장은 "교육의 힘은 대단하다. 의사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는 교육을 통해 분명 자신이 속한 지역 사회에 남아 건강증진에 힘쓸 인력들이 많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복지부를 설득해 교육 개선 방안을 연구 중에 있다"고 말했다.
한 이사장은 "공공의대를 만드는 것은 대안이 되지 못한다. 대학 설립에만 수천억이 들고 기초와 임상의학을 가르칠 교수진을 새로 뽑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오히려 비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만약 의대 정원을 확대한다고 해도 실제 의사가 늘어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교육을 통해서 선제적으로 문제를 풀어보자는 것"이라며 "이 문제를 의료계가 덮어놓고 원칙적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방안을 찾아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