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투쟁으로 의사사회에 두 가지 커다란 교훈을 줬다. 하나는 경제학 근간이 되는 ‘공통지식(common knowledge)’, 촘촘하게 꼬리에 꼬리는 잇는 의사와 사회 간의 상호 인식 과정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의사회원 간 갈등으로, 투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연대와 협동 정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현재 국외에서 거주하지만 꾸준한 관심을 갖고 의협 집행부의 회원 의견 수렴과정과 정책결정, 대정부 또는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지켜보고 있다. 또한 미국의사협회(AMA) 등 미국 의사들이 협의회를 만들고, 이를 통해 회원 권익을 대표하는 과정을 보고 한국 의협과 비교해 보고 있다.
한국과 미국 의협은 비슷한 구성과 기능을 하고 있다. 회원들이 제안하는 정책을 만들어내고 대의원회와 이를 집행하는 회장, 이하 집행기구로 나뉜다.
한국과 미국 의협의 차이는 첫째로 미국의사협회는 농담으로 ‘악의 축 3대 기관 중 하나’(다른 두개는 총기협회, 담배협회)라는 부정적 사회인식을 줄이기 위해 JAMA(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미국의학협회저널) 등 과학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개척자(Frontier) 역할을 한다.
둘째, 미국 의협은 의대교육과 수련을 최종 조율하는 ‘교육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사회 속에서 깊게 자리잡고 있다. 대한의학회의 수련교육 기능을 의협이 갖고 있는 셈이다. 물론 각 임상과별 학회가 수련교육 내용을 개발하고 독립적인 수련인증기관 ACGME(Accreditation Council for Graduate Medical Education)로부터 수련교육 과정을 실사받는 과정은 별도로 이뤄진다.
한국과 미국 의협은 투쟁 대상에도 차이가 난다. 한국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 보건복지부 등 주로 중앙정부기관이다. 하지만 미국은 연방기관부터 주정부 보건기관까지 다양화돼있다. 투쟁의 동력이 한 곳에 집중되는 한국과 자치정부로 분산되는 미국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한국은 단일 보건의료체계(Universal Health System)로 이뤄진 것과 달리 미국은 개방 의료체계(Open Health System)로 여러 보험회사들과 협상을 통해 의료서비스 급여 여부와 가격을 결정한다. 미국의 보험회사는 의료서비스를 직접 제공하기도 한다. 보험회사가 병원을 소유하고 의사를 고용하고 약국을 운영하거나 건강정보기술 사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임상에 바쁘고 법 조항에 어두운 대부분 의사들은 직접 협상에 참여하기보다 변호사 등을 고용한다. 미국에서는 로비활동이 법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대개 메디케어(노인), 메디케이드(극빈층) 등 공공보험 급여보다 민간보험 급여에서 훨씬 협상의 여지가 많고 예외적 의료서비스 급여도 잘 받는 편이다.
한국 의협의 가장 시급하면서도 중요한 과제는 ‘문재인 케어’로 일컫는 강력한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에서 의료수가 현실화로 보인다.
이런 상황을 임상의 예로 든다면, 간신증후군(hepatorenal syndrome)이라고 할까. 심부전 환자에게 이뇨제를 투여(문 케어) 하면서 급성신부전 치료를 하려면 수액(의료수가 현실화) 투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보건학에서 보면 한국의 국민총생산(GDP) 중 의료비 비율은 기준 7.7%(미국은 17%)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포괄수가제 도입, 한방 의료서비스의 급여화 등도 또 다른 의미에서 도전이 되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 외부에 둘러싸여 있을 때 의협의 최우선적인 과제는 내부 연대와 협동일 것이다. 의사 구성원들 사이의 신뢰를 구축하는 게 가장 필요하다. 또한 13만 의사회원 중에서 그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상대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20~40대 의사 회원, 특히 여성 회원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의협의 의료정책연구소 역할이 강조돼야 한다. 의료정책 연구를 통해 나오는 보고서가 정확성과 시의성 측면에서 의료계를 벗어나 국민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사회 속의 ‘공통지식’을 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