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불합리한 한방 첩약 건강보험 적용
며칠 전 한 일간지에서 한 달치 약값만 1000만원을 부담하게 된 어느 가족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했다.
이는 폐암 말기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치료제로 사용된 신약이 건강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한 달치 약값으로만 1000만원을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치료제는 국제 암 치료 지침에 최근 포함될 정도로 환자에게 뚜렷한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국내 급여 기준에 포함되지 않아 약값의 100%를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만약 보험 적용이 된다면 5%의 비용만 자기 부담을 하면 된다. 환자 보호자는 경제적 이유로 치료를 포기해야 할지 안타까운 고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날, ‘한방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소식이 전해졌다. 4000억원의 건강보험 예산을 들여 한방 첩약에 건강 보험을 적용해준다는 것이다. 한약 첩약은 아직 정확한 가이드라인이나 적용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 첩약의 안전성과 효과도 입증 자료가 부족하다 보니, 보건복지부는 시범 사업과 연구 용역을 병행한다고 밝혔다.
요약하자면, 안전성과 효과를 검증받은 최신 의료 지침은 발 빠르게 건강보험이 되지 않을 뿐더러 모든 치료가 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안전성과 효과가 아직 검증되지 않은 한방요법에는 보험 적용을 해주겠다고 한다.
이는 건강보험 제도의 근본적 취지에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기본 취지는 질병 발생 빈도가 낮지만 만일 질병이 발생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을 미리 대비한다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건강보험의 적용은 고액의 치료비이면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필수 불가결한 의료 행위부터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이는 시행 전에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철저한 검증을 거쳐 모든 사람에게 안전하게 일괄적으로 적용돼야 한다.
한국에서 어느 특정 질환이 첩약 치료로 인해 첩약 치료를 받지 않는 다른 국가보다 완치율이 높아지거나 사망률이 낮아지거나 예후가 좋아지거나 후유증이 적어진 통계가 있는지 묻고 싶다. 그런 자료가 있다면 첩약은 필수 의료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당 자료가 아직 없다고 먼저 건강보험을 적용해 행위량을 늘린 다음,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안전성과 효과를 입증하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국민들을 실험용 모르모트로 삼겠다는 뜻과 다름 없기 때문이다.
치료 효과에 논란이 있거나 치료에 필수적이지 않은 치료법에는 현대의학조차 건강보험 적용이 잘 되지 않는다. 이를 ‘비급여’라고 한다. 필수적이지 않고 효과에 논란이 있기 때문에 치료에 대한 선택권은 환자에게 넘어가고, 환자는 이 선택에 대한 책임 비용을 전액 부담한다. 왜냐하면 건강보험 재정은 한정적이고,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이런 필수의료가 아닌 선택적인 의료행위에 국가가 건강보험 보장을 해주면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 재정 낭비가 필히 발생한다.
세금을 무한대로 걷어서 필수의료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의료행위에 건강보험 적용을 하는 것도 좋을 수 있다. 다만 이로 인한 피해를 누가 입게 될지, 정책 입안자들이 꼭 생각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