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에서 환자를 성추행하거나 생일파티를 여는 의사가 있다면 마땅히 단죄하고, 의사면허를 박탈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국회의원들은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마치 다수 의사들이 진료실에서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하는 것처럼 몰아세워 의사-환자간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올해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강석진(새누리당) 의원이 국정감사를 앞두고 ‘성범죄자 의사’ 보도자료를 가장 먼저 언론에 배포했다.
그것도 9월 15일 민족 최대의 명절인 한가위 날에 맞춰서.
상당수 언론이 이를 보도했고, 의사들은 졸지에 추석 차례 음복주 안주거리가 됐다.
강석진 의원은 "의사들의 성범죄는 최근 3년간 287명이었으며,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고 지적했다.
강석진 의원은 경찰청 자료를 인용해 의사 성범죄자가 2013년 95명, 2014년 83명에서 2015년 109명으로 크게 늘었으며, 대부분의 성범죄 유형이 가장 죄질이 안 좋은 강간 및 강제추행이라고 질타했다.
강 의원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환자가 마취된 상태에서 저항할 수 없는 점과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 진료가 진행된다는 점을 악용한 사례도 있어 수술실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까지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환기시켰다.
강 의원은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에 대한 사후 조치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면서 "사건을 일으킨 의사들에게 주어진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불과한 게 대부분이며, 이들은 다른 병원으로 옮겨 진료를 이어 나간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강 의원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재범 사례, 혹은 억울한 피해자 발생 등에 대해서는 의사면허 자격정지, 영구박탈 등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보도자료를 자세히 보면 그 역시 '죄질'이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우선 강석진 의원은 '의사' 안에 치과의사, 한의사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경찰청은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을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로 각각 분류하지 않고 모두 '의사'로 표기하고 있다.
의료법 상 '의료인'이란 보건복지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 및 간호사를 말한다.
따라서 성범죄자 '의료인' 또는 성범죄자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로 분류해야 하지만 이런 잘못된 방식의 통계를 매년 관행적으로 반복 생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성범죄자 의사' 보도자료를 배포한 박남춘 의원실은 "경찰청이 직종별로 구분할 때 의사와 한의사, 치과의사를 그냥 의사로 분류하고 있다"면서 "의사라고 하면 치과의사, 한의사가 포함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설명한 바 있다.
의사 안에 치과의사, 한의사가 포함돼 있다는 점을 보도자료에 명시하면 '기삿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이런 식의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면 스스로의 '도덕성'부터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또 하나 강석진 의원은 보도자료 표에 '의사 피의자 '검거' 인원’이라고 표현하고도 마치 범죄가 확정된 것인 양 표현하고 있다.
검거의 사전적 의미는 '수사 기관이 범죄의 예방, 공공 안전의 유지, 범죄의 수사를 위해 용의자를 일시적으로 억류하는 것'이다.
경찰청의 2014년도 경찰통계연보를 보면 한 해 동안 강제추행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1만 3584명이며, 이 중 1만 1287명이 검찰에 송치됐다.
따라서 강 의원이 2015년도 강간 및 강제추행 성범죄 의사 99명을 정확히 표현하면 성범죄 혐의로 '검거'된 의료인을 의미하며, 이들이 무혐의 처리된 것인지, 유죄가 확정된 것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성범죄는 장소를 불문하고 파렴치한 행위임에 틀림없지만 '검거'된 의료인들이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표현하면 일회성 기삿거리가 될 수는 있겠지만 팩트는 더더욱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의료인이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면 엄중 처벌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국정감사 '스타 의원'이 되기 위해 의사집단을 희생양으로 활용하는 듯한 행태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