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가 간호법에 대한 대통령 재의요구권을 이끌어 낸 가운데, 함께 본회의를 통과한 의료인면허취소법은 재의요구권 행사 대상에서 빠지며 법 시행 위기에 처했다.
게다가 간호법과 의료인면허취소법과 달리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 환자 본인확인 의무화법이 당장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으로 나타나 의료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모든 범죄 금고형 선고 받은 의료인 면허취소 "과도해"…복지부도 "당정협의 개정 논의"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먼저 의료인면허취소법, 의료인면허박탈법 등으로 잘 알려진 의료법 개정안은 앞서 4월 27일 본회의에서 간호법안과 함께 통과됐다.
해당 법안은 의료인에 대한 직업윤리와 사회적 요구를 반영해 범죄에 구분 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경우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도록 자격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의료인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 등이 해당된다.
다만, 의료행위의 특수성을 고려해 의료행위 중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범한 경우는 면허취소 사유에서 제외됐다.
의료계는 이렇게 의료인의 면허 취소를 강화하는 법안의 내용이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교통사고처럼 중범죄가 아닌 모든 범죄로 금고형을 선고받더라도 의료인의 면허가 취소될 수 있고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받아도 면허가 취소될 수 있어 구체적인 범행 정도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가혹하기 때문이다.
이에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과 의료인면허취소법을 세트로 묶어 재의요구권 행사를 요구해왔다.
하지만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의 관심과 역량이 간호법에 집중되면서 의료인면허취소법안은 당정협의회에서 조차 다뤄지지 않으며 이번 대통령 재의요구권 행사 대상에서도 빠지게 됐다.
이에 의료인면허취소법은 대통령이 법안을 공포하면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된다.
다만 16일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이 간호법안 관련 국무회의 의결 결과 브리핑을 통해 "의료인이 모든 범죄에 금고 이상의 형을 받는 경우 면허를 취소한다는 것은 과도하다는 여론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관련 법 개정 방향과 관련하여 당정협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혀 향후 법안 개정 및 재의요구권 행사 등의 여지가 남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계는 의료인면허취소법도 간호법과 함께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추후 헌법소원으로 대응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의사협회 간호법·면허박탈법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는 의료인 면허취소법에 대한 재의요구권 요청 및 의결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 유감을 표하며 "의료인 면허취소법은 입법 과정에서부터 법률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다수의 국회의원마저도 위헌적 부실 법안임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대통령 재의요구권의 대상이 충분히 될 수 있는 악법이었다는 점이 당정 협의 과정에서 누락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비대위는 의료인면허취소법의 위헌 소지를 없애고,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수준의 재개정안이 마련돼 국회에 상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 김이연 홍보이사는 "의료인의 직업 안전성을 흔드는 해당 법안은 헌법에 위배되는 부분이 많다"며 "법안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법 개정, 헌법소원 등을 통해 끝까지 독소조항을 제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의료기관에 건강보험 부정수급자 가려낼 책임 전가…진료 현장 분쟁, 진료지연 우려
간호법과 의료인면허취소법에 가려져 관심에서 벗어난 내원 환자의 본인 여부 및 건강보험 자격을 의료기관이 의무적으로 확인하도록 하는 건강보험법 개정안도 의료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해당 법안은 보험급여 및 보험급여비용의 부정수급자의 부당이득을 방지하기 위해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내원 환자의 본인 여부를 건강보험증이나 신분증명서를 통해 확인하도록 하는 것으로 이를 위반할 시 과태료 및 징수금 제재를 받을 수 있어 사실상 의료기관에 건강보험 명의 대여‧도용 사례를 색출할 책임을 전가하는 내용이다.
의료계는 일찍이 해당 법안에 문제를 제기해왔으나 간호법과 의료인면취소법과 같은 굵직한 현안에 가려져 관심을 받지 못해 4월 27일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현재는 수진자 자격확인 전산 시스템이 의료기관에 구축돼 현재 의료기관들은 환자에게 건강보험증 또는 신분증명서 제출을 요구하는 대신 시스템을 통해 이름,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 확인만으로 건강보험 자격을 확인하고 있어 해당 법이 공포돼 내년부터 시행되면 진료 현장에 큰 혼란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신분증과 건강보험증을 소지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환자들이 본인 확인을 요구하는 의료기관과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의료계는 또 최근 온라인‧키오스크 등 비대면 접수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단순히 신분증 사진만으로 부정수급을 예방하기에는 실효성이 떨어져 의료기관에 행정부담만 가중시키는 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물론 정부는 QR 코드 등 확인 방법을 다양하게 만들고 예외 사유를 검토해 하위법령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노인 환자 등 요양기관 접근성이 떨어지는 취약계층에 진료 장벽을 만드는 법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의협 김이연 홍보이사는 "법안 발의때부터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으나 본회의에서 통과됐다"며 "의료기관에 부정수급자를 적발하는 책임을 전가한 데 대한 의료 현장의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김 이사는 "법안이 시행되기 전 점검할 사안들이 많다. 법안의 의도대로 건강보험 대여, 도용 등 부정수급 방지가 될 수 있도록 의료기관이 환자의 본인확인을 할 수 있는 기술과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며 "환자들에게도 해당 의료기관 방문 시 신분증 등을 지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등 진료문화가 정착되지 않는다면 진료 현장에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