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정부가 오는 8월 국립대학병원 소관 부처를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이관하는 데 맞춰, 지역 국립대병원을 서울 대형병원급 필수의료 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그동안 국립대병원은 국립 의과대학의 교육병원 성격이 강했지만, 앞으로는 지역 중증·응급·필수의료를 책임지는 최종치료기관이자 공공의료 컨트롤타워로 재편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큰 그림이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는 지난 15일 충남대학교병원에서 ‘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국립대학병원 종합적 육성방향’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국립대병원 소관 부처 이관을 앞두고 나온 정부의 후속 청사진이다. 정부는 국립대병원을 임상, 연구, 교육·수련, 공공정책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 핵심 의료기관으로 육성해 지역 완결적 의료체계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지역 의료 위기가 단순한 보건의료 문제를 넘어 지역 인구 유출과 산업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역에서도 중증질환과 응급질환을 믿고 치료받을 수 있어야 지역 정주 여건이 개선되고, 국가균형발전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자료에 따르면 서울과 충북 간 치료가능 사망률 격차는 12.7%p에 달하고, 지역 환자의 상경진료 비용은 연간 4.6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지역 주민 81%가 지역의료 위기를 우려하고 있으며, 중증질환일수록 서울 소재 상급종합병원을 우선 고려한다는 조사 결과도 제시됐다.
정부는 지역 국립대병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배경으로 수도권 대형병원과의 인력·장비·연구역량 격차를 꼽았다. 10병상당 전문의 수는 수도권 빅5 병원이 4.1~4.8명인 반면, 지역 국립대병원은 2.3~3.3명 수준이다. 서울 대형병원과 비교해 첨단의료기기는 4배, 연구실적은 5.9배 차이가 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정부는 국립대병원의 임상역량을 우선 강화한다. 지역 국립대병원이 암 등 중증질환을 지역 내에서 완결적으로 치료하고, 응급·심뇌혈관질환 등 급성기 필수의료를 24시간 적시에 제공할 수 있도록 인력과 인프라를 확충한다.
핵심은 의료인력 확보다. 정부는 국립대병원의 핵심 의료인력인 전임교원을 2027년부터 단계적으로 증원하고, 의대 정원 확대와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함께 고려해 지역 국립대병원 교수 인력 증원 수요를 반영하기로 했다.
우수 의료인력이 국립대병원에 유입·정착할 수 있도록 총인건비와 정원, 채용제도 개선도 추진한다. 현재 국립대병원은 민간병원보다 보수가 낮고 정원·채용 절차가 경직돼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기타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통해 총인건비 제한 적용 제외, 탄력적 정원관리, 신속채용 절차 도입 등을 검토한다. 이를 통해 국립대병원이 필수진료과 의료진을 보다 유연하게 채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시설과 장비도 대폭 보강한다. 노후화된 시설을 현대화하고 중환자실, 고위험 산모 집중치료실, 하이브리드 수술실 등을 확충한다. 첨단 암치료 장비, 로봇수술기 등 고난도 진단·치료 장비 지원도 추진된다.
AI 기반 진료체계 구축도 포함됐다. 단기적으로는 상용화된 AI 진료시스템을 도입해 중증질환 진단 정확도를 높이고 응급환자 신속대응을 지원한다. 이후 다양한 AI 진료시스템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장기적으로는 AI가 진단·치료·환자관리 등 임상 의사결정 전 과정을 지원하는 병원정보시스템 개발까지 추진한다.
정부는 응급·모자·심뇌·외상·어린이 등 5개 정부지정 필수의료센터도 국립대병원 중심으로 확대 지정한다. 적정 시간 안에 이송 병원을 찾지 못한 중증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국립대병원 등을 중심으로 우선 수용해 환자 안정화를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지역별 특화 발전도 추진된다. 각 병원별로 암, 심뇌혈관, 외상 등 대표 특화 분야를 선정해 집중 지원하고, 이를 서울 대형병원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한 마중물로 활용한다. 지역별 의료수요와 병원 강점뿐 아니라 바이오·AI 등 5극 3특 지역 전략산업과도 연계해 지역 성장동력 확보와 정주 여건 개선을 동시에 노린다.
연구 역량 강화도 진행한다. 정부는 국립대병원을 중증·희귀난치질환 R&D 거점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현재 지역 국립대병원은 임상데이터, 연구 인프라, 연구인력이 부족해 대형 임상연구와 신약개발 연구에서 소외돼 있다는 것이 정부 판단이다.
정부는 2025년부터 2027년까지 9개 지역 국립대병원 중 5개 병원을 선정해 연구장비, R&D, 전문인력에 3년간 총 500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후 2028년부터 2036년까지는 9개 전체 지역 국립대병원으로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중장기 사업도 추진한다.
특히 전체 국립대병원과 국립암센터 간 임상데이터를 클라우드 기반으로 연결하는 공공병원 통합 임상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검토한다. 개별 병원이 단독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대규모 임상데이터를 국립대병원 네트워크 전체가 함께 활용해 암·희귀난치질환 등 중증질환 연구와 고가 신약의 실제 치료효과 평가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 관리와도 맞닿아 있다. 정부는 국립대병원의 실제 진료현장 데이터를 활용해 고가 신약과 첨단 치료기술의 임상적 효과를 검증하고, 이를 건강보험 급여 의사결정 근거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교육·수련 분야에서는 국립대병원을 지역 의료인력 양성의 핵심기관으로 재정립한다.
정부는 전공의 정원 중 지역 국립대병원 배정 비율을 현재 17.8%에서 20%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모든 국립대병원에 임상교육훈련센터를 설립해 의대생과 전공의가 시뮬레이션 기반 첨단 술기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권역 단위 협력수련 체계도 강화된다. 국립대병원이 권역 내 수련거점 역할을 맡고, 지역 2차병원, 지방의료원, 전문병원, 의원급 진료협력병원 등 다양한 의료기관과 연계해 전공의가 다양한 환자군과 진료환경을 경험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지역의사제와의 연계도 담겼다. 정부는 권역별 국립대병원 내 지역의사 지원센터 설치를 검토하고, 지역의사 선발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이 학생 단계부터 전공의 수련, 전문의 정착까지 맞춤형 교육과 정착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공공정책 분야에서는 국립대병원의 권한이 한층 강화된다. 국립대병원을 지역 필수의료 협력 네트워크의 중심에 세우고, 지역 내 의료기관 간 진료 의뢰·회송 체계를 총괄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국립대병원장이 시·도 필수의료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는 방안을 검토한다. 이를 통해 국립대병원이 필수의료 네트워크 기획, 의료자원·진료정보 교류, 성과평가 등에 참여하고 지역 의료기관 간 협력체계 운영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질환별·상황별 진료 의뢰·회송 표준 프로세스를 정립하고, 중증환자는 상급종합병원이 수용한 뒤 안정화 이후 지역 2차병원으로 전원하는 방식의 협력체계를 구축한다. 이를 통해 상급종합병원이 중증환자 대응 여력을 상시 확보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국립대병원은 감염병, 재난, 노인·치매, 장애인, 재활, 호스피스, 정신건강 등 공공의료 사업에서도 적극적 역할을 맡게 된다. 공공임상교수제 제도화와 취약지 파견 인건비 지원 등을 통해 지역 의료기관과의 인력교류도 강화한다.
다만 정부는 국립대병원이 복지부로 이관되더라도 교육병원으로서의 기능과 자율성은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향후 국립대학병원 설치법을 국립대학병원 설치 및 지원법으로 개정하면서 국립대병원 의사결정체계와 교육기관으로서의 자율성은 현행처럼 보장하고, 종합발전계획 수립 과정에도 교육부가 참여하는 별도 위원회를 설치한다.
재정 측면에서는 2027년 1월 지역 필수의료 특별회계를 신설해 국립대병원의 인력, 인프라, AX, 네트워크 구축을 지원한다. 필수의료 협력체계 구축을 통한 진료공백 해소 등은 상급종합병원과 포괄2차병원 성과지표에 반영해 건강보험 보상 강화도 추진한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역에 믿고 치료받을 수 있는 국립대학병원이 있다는 것은 곧 지역에서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라며 “국립대학병원 육성은 의료정책을 넘어 지역 정주여건 개선과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핵심투자”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현장과 소통해 국립대학병원이 지역 필수의료의 책임기관이자 연구·교육·공공의료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재정·제도적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도 “국립대학병원이 지역·필수의료의 중추 기관이자 의학교육과 연구의 핵심 기관으로 성장할 것을 기대한다”며 “교육부에서도 국립대학병원이 국립 의과대학의 교육병원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