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정부는 지난 9월 16일 먹는 임신중지약 도입 방안을 공식 발표했다. 임신 9주 이내에만 쓰도록 하고, 도입 후 2년간은 의료기관 안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하며, 2027년 1분기에 들여온다는 계획이다. 검증되지 않은 약이 해외 사이트와 메신저로 거래되는 현실을 끝내고 국가 의료체계 안에서 관리하겠다는 방향에는 산부인과 의사들도 공감한다. 식약처가 2021년부터 올해 5월까지 적발한 온라인 불법 판매·광고만 3189건이다. 그중 수사 의뢰로 이어진 것은 7건뿐이었다.
그러나 ‘도입이 필요하다는 것’과 ‘법 없이 도입해도 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법제처는 약사법상 요건을 갖추면 품목허가를 내줄 수 있다고 해석했지만, 누구에게, 어떤 기준과 절차로, 누구의 책임 아래 약을 쓸지는 여전히 정해지지 않았다. 헌법재판소가 정한 개선입법 시한이 지난 지 6년 가까이 되도록 국회가 대체입법을 만들지 않은 탓에, 약은 들어오는데 약을 쓰는 규칙은 비어 있다.
이대로 시행되면 현장에서 벌어질 일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처방도 조제도 법적으로 불확실한 상태에 놓인다. 낙태죄 조항이 효력을 잃었다고 해서 처방이 적법하다는 근거가 생긴 것은 아니다. 현행 모자보건법 제28조가 형법 적용을 배제하는 대상은 “이 법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은 자와 수술을 한 자”로, 약물 임신중지는 아예 상정하지 않는다. 사회·경제적 사유의 처방을 뒷받침할 조항도 없다.
조제도 마찬가지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여성과 의사에 관한 부분만 다뤘기 때문에 형법 제270조의 ‘약제사’ 부분은 아직 살아 있다. 정부가 원내 조제를 택한 것은 법을 고치는 대신 우회로를 고른 셈이고, 법 개정이 없으면 이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2년짜리 임시 조치가 굳어질 수 있다. 법적 근거가 없는 의료행위를 행정지침만으로 요구할 수는 없다.
둘째, 처방을 거부할 권리도, 누구의 동의가 필요한지도 법에 없다. '의료법' 제15조는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거부하지 못하게 한다. 정부는 의사의 선택권을 존중하겠다고 했지만, 법률로 정해진 진료거부 금지를 지침으로 넘어설 수는 없다. '모자보건법' 제14조는 수술을 전제로 배우자 동의를 요구하는데, 이 조항이 약물 처방에 적용되는지조차 불분명하다. 미성년자의 보호자 동의 여부도 정해지지 않았다.
처방하지 않으려는 의사를 보호하면서 여성을 필요한 진료로 곧바로 연결하는 절차와 동의 요건이 법률에 담기지 않으면, 그 판단은 고스란히 진료실의 몫이 된다.
셋째, 합병증의 책임이 의사와 환자에게 남는다. 임신중지약은 불완전유산이나 과다출혈이 생기면 후속 수술과 응급 이송이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약이다. 그런데 어느 의료기관이 후속 처치를 맡을지, 응급 이송은 어떻게 연계할지, 수가는 어떻게 보상할지가 아직 없다. 정당한 처방에도 생기는 불가항력적 합병증의 책임도 정해지지 않았다. 결국 환자와 의사가 법정에서 하나하나 잘잘못을 따지게 된다.
넷째, 제도 밖의 여성은 여전히 제도 밖에 남는다. 합법적인 경로가 임신 9주 이내로 한정되면 그 이후의 여성은 계속 불법 시장에 기대게 된다. 불법 판매 사이트는 이미 주수에 따라 가격을 달리하며 약을 팔고 있고, 주수를 확인하지 않고 복용하면 임신 중기의 태아가 병원 밖에서 배출될 수 있다.
지난 9월 28일 충남 아산의 오폐수처리시설에서는 임신 16주가량으로 추정되는 태아 시신이 발견됐다. 그러나 가정에서 배출된 태아를 적법하게 처리하는 절차는 없어, 약 복용은 처벌받지 않는데 배출 후 처리에는 사체유기죄를 걱정해야 하는 모순이 생긴다. 처벌에 대한 두려움은 병원 방문을 늦추고, 늦어진 방문은 여성의 생명을 위협한다.
입법이 먼저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도입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가 국회에 요구하는 것은 다섯 가지다.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으로 임신중지의 허용 기간과 방법(약물 포함)을 명확히 할 것
·임신중지약의 허가·처방·조제·투약·부작용 보고 전 과정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것
·불완전유산과 과다출혈에 대비해 후속 수술 처치와 응급 이송이 가능한 의료기관의 요건과 수가 보상을 마련할 것
·처방에 참여하는 의료인이 형사처벌을 걱정하지 않도록 법적 보호 방안을 마련할 것
·양심에 따라 처방을 거부하는 의사를 보호하는 규정을 두고, 환자를 다른 진료로 연계하는 절차도 함께 마련할 것
·임신중지약의 허가·처방·조제·투약·부작용 보고 전 과정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할 것
·불완전유산과 과다출혈에 대비해 후속 수술 처치와 응급 이송이 가능한 의료기관의 요건과 수가 보상을 마련할 것
·처방에 참여하는 의료인이 형사처벌을 걱정하지 않도록 법적 보호 방안을 마련할 것
·양심에 따라 처방을 거부하는 의사를 보호하는 규정을 두고, 환자를 다른 진료로 연계하는 절차도 함께 마련할 것
산부인과학회와 의사회는 표준진료지침 개발, 처방 역량 교육, 24시간 상담창구, 부작용 모니터링 등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준비를 이미 시작했다. 그러나 현장의 준비가 법을 대신할 수는 없다. 이 요구는 도입을 늦추려는 조건이 아니다. 제도가 현장에서 안전하게 작동하기 위한 필수 전제다.
7년의 입법 공백을 행정지침과 진료실의 판단으로 메울 수는 없다. 약은 식약처가 허가하지만, 그 약을 둘러싼 책임의 경계는 국회만이 그을 수 있다. 정책의 속도보다 국민의 안전이 먼저다. 국회는 더 이상 책임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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