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의대정원 확대요? 우리가 나서도 달라지는 것도 없잖아요?"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가 의대정원 확대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지만, 2020년 의사파업을 이끌었던 전공의들은 이상하리 만큼 조용하다.
지난 2020년 젊은의사 파업 당시 의대생 국시거부 세대가 본격적으로 전공의로 자리를 잡았지만 오히려 의대정원 확대 이슈에 대한 관심이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수도권에 위치한 수련병원 전공의 A씨는 "국시 거부까지 할만큼 가장 열정적으로 의대정원 확대를 반대했던 이들이 전공의 사회 주류가 됐지만 분위기는 예전과 많이 다르다. 아예 의대정원 이슈를 적극적으로 얘기하는 이들 자체가 많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메디게이트뉴스가 16일 5곳의 수련병원 전공의들(수도권3·지방2)에게 질의한 결과, 대부분 비슷한 답변이 돌아왔다.
파업 당시 대한전공의협의회 신비대위 공동대표를 역임했던 건양대병원 주예찬 전공의는 "우리라는 단어를 쓰기 민망할 정도로 공론화조차 되지 않고 있다. 말 그대로 모두 관심이 그다지 없는 상태"라고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현장 전공의들은 파업과 국시거부 이후 초반엔 분노가 치밀었지만, 더 시간이 지난 뒤엔 무관심이 전반적으로 팽배했다고 전했다.
특히 자신의 정치참여가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인 '정치적 효능감'마저 상실되면서 의료 현안 뿐 아니라, 전반적인 병원 내 이슈에 대한 관심마저도 무뎌졌다는 자조 섞인 평가가 나온다.
전공의 A씨는 "파업과 국시거부까지 감행했음에도 정책 철회를 이뤄내지 못했다는 분노가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나서봤자'라는 무관심으로 변한 것 같다"며 "정치적 효능감까지 박탈되면서 전체 의료현안이나 심지어 병원 이슈에 대한 관심도 적어졌다. 전반적으로 내 일에만 집중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주예찬 전공의도 "의대정원 확대로 인한 분노가 결과적으로 유효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특히 그런 분노가 자신에게나 외부에게나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공감대로 인해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의사 증원 반대 단체행동 이후 전공의 사회 분위기 자체도 많이 변하고 있다. 공동체 보단 개인이 우선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수도권 수련병원 전공의 B씨는 "벌써 가정의학과 1년차에서만 2명이 중도 포기했고 장기병가를 낸 사람도 있다. 국시거부 세대가 본격적으로 1년차가 되다보니 개인주의가 팽배한 것 같다"며 "조직이나 공동체 보단 '내 할 일이나 잘하자'가 우선인 듯하다"고 전했다.
다만 대전협 대의원들을 중심으론 의대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여론이 공유되고 있었다.
서울대병원 유호준 전공의는 "500명이든 1000명이든 의대정원을 늘려도 대부분 미용, 통증, 일반의로 나가지 절대 내·외·산·소·응 등 기피과는 채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주요 의견"이라며 "과거 레지던트 총 정원을 1000명 가까이 줄인 적이 있는데 그때도 비인기과 정원은 그대로 공석이었고 일반의 비율이 급격히 늘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