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2020년 9.4의정합의 내용을 성실히 이행하라. 만약 의대정원 증원이 확정되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강력히 저항하겠다."
17일 대한의사협회 의료계 대표자회의 결과를 한줄로 요약한 내용이다. 간단해 보이는 문장이지만 대표자회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결의문이 채택되기까진 족히 2시간이 소요됐다.
애초 대표자회의는 저녁 7시에 시작해 늦어도 8시 반엔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회의가 대략 1시간 가량 지체되면서 이날 집행부 백브리핑 일정까지 모두 끝난 시간은 밤 10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이날 회의는 간단하게 끝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대표자회의에 앞서 의협 대의원회 박성민 의장은 '오늘 회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으로 예상하는가'라는 기자의 질의에 "강경 투쟁으로 가겠다는 내용이 나오지 않겠나"라고 즉답했다. 여타 다른 대표자들도 '강경 투쟁' 노선으로 회의 결과가 간단하게 나올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이날 회의 내용은 예상과 달리 간단치 않았다. 대표자회의에 참석했던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향후 대응 방침을 결정하는 데 있어 이견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견 합치에 난항을 겪은 결정적 이유는 정부가 '의대정원 확대 발표 내용' 자체를 전면 부인하는 만큼 구체적인 방향 설정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언론을 통해 의대정원 확대 발표 날짜와 구체적인 증원 수치까지 나왔음에도 공식입장이 아니라고 발뺌하는 정부 탓에 의료계 입장에서도 당장 파격적인 대응카드를 빼들기가 애매했던 셈이다.
이에 이필수 회장을 필두로 의협 집행부 인사들은 일방적인 정책 강행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속히 의정협의체를 열어 대화를 재차 속개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필수 회장은 대표자회의 직후 백브리핑에서 "주말동안 당정과 소통을 많이 했다. 우리의 의사가 전달됐고 정부와도 소통이 충분히 된 상태"라며 "최근 이어진 언론보도가 정부의 진심이 아니라고 본다. 의정 신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이필수 회장 "의대정원 확대는 가짜뉴스...정부와 신뢰관계 충분, 의료계와 협의 거칠 것"]
반면 일부 의료계 대표자들은 "의대정원 확대가 기정사실인 것처럼 정부가 언론플레이를 명확히 하고 있다"며 "관련 정부 담당자를 찾아 문책하자" 등 구체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의료계 관계자는 "정부 정책 실패를 의사 수 부족으로만 엮고 의대정원 확대가 확정된 것처럼 언론플레이가 계속되고 있다. 아무리 정부가 부정해도 전체 구도를 보면 이는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라며 "이 같은 정부 태도를 비판하는 의견이 다수 나왔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필수 회장은 믿고 기다려달라는 취지의 입장이었는데, 이는 개인적 판단에 불과하고 봤다. 언론보도 양상을 보면 누가봐도 이젠 정부를 기본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며 "복지부가 단독으로 이런 일을 벌이긴 쉽지 않다. 누가봐도 대통령 지시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회의가 간단하게 흘러가지 않자 구체적인 로드맵도 논의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대로 손놓고 당하고만 있을 순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후문이다.
특히 향후 의대정원 확대 문제가 현실화됐을 때 임시대의원총회 등을 통해 집행부에게 책임을 묻고 보다 세밀한 투쟁 방향을 설정하자는 의견 등도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다 보니, 실질적인 의료계 투쟁 로드맵은 정부 정책 방향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야 세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회의에 참석한 다른 의료계 관계자는 "19일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와 관련한 공식 발표가 예정돼 있는데, 이날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발표 수위에 따라 바로 임총이 개최될 가능성도 있다"며 "만약 구체적인 증원 수치까지 공개된다면 곧바로 파업 투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