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의료 인공지능(AI)이 단일 기능 중심의 보조 도구에서 벗어나, 여러 AI가 상호 협력하는 '팀' 체계로 진화하고 있다. 기존에 개별 AI가 독립적으로 영상 판독, 진료 예약 등 특정 업무를 수행하던 방식에서 나아가, 여러 AI가 자연어 기반으로 소통하며 환자를 공동으로 관리하는 AI 협력 체계가 의료 현장에 적용될 전망이다.
최근 마이클 모리츠(Michael Moritz) 박사와 에릭 토플(Eric Topol) 박사, 프라나프 라푸르카(Pranav Rajpurkar) 박사는 국제학술지 Nature Biomedical Engineering에 'Coordinated AI agents for advancing healthcare'을 게재하며, '의료용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Multi-Agent Systems for Healthcare, MASH, 이하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을 소개했다.
분절된 AI 에이전트, 의료 서비스 연속성 저해…멀티 에이전트 시스템으로 극복
기존의 의료 AI는 위험 예측, 환자 모니터링, 진료예약, 병원 행정 처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각각의 특화 기능을 수행했다. 하지만 이러한 AI는 서로 독립·분절적으로 작동해 의료 서비스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의료 분야에서 AI 에이전트 네트워크를 구축할 때 고려할 사항 중 하나는 각 AI 에이전트가 서로 다른 데이터를 기반으로 훈련되고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개별 AI를 하나의 협력 체계로 통합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연구진은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을 제시했다.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은 여러 개의 AI 에이전트가 각기 다른 역할을 수행하면서 상호 협력하는 구조를 말한다. 각 AI 에이전트는 자율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판단하고 작동하며, 필요 시 정보를 주고받아 공동의 목표를 달성한다.
이 시스템은 중앙에서 모든 작업을 통제하는 '중앙 집중형' 방식이 아니라, 역할 분담과 상호 협력을 통해 유연하고 확장성 있게 문제를 해결하는 '분산형' AI 구조로 설계된다. 분산형 구조를 통해 각 AI 에이전트는 필요한 정보만 제한적으로 활용하며, 추가 정보는 인증된 AI 간 협력을 통해 요청하는 방식으로 보완한다.
연구진은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을 구성하는 기반 중 하나로 '연합학습(federated learning)'을 꼽았다. 연합학습을 활용하면 여러 기관이 환자 데이터를 중앙에 통합하지 않고도 AI 모델을 공동 학습할 수 있다. 이는 개인정보 보호와 알고리즘 편향 완화에 효과적이다.
연구진은 "모든 환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된 중앙 집중형 AI 모델은 환자의 개인정보에 치명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분산형 네트워크는 각 AI 에이전트가 진단, 치료 계획 수립 등 특정 의료 분야나 기능에 특화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전체 환자 기록에 접근하거나 저장하지 않아도 업무에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의 핵심은 'LLM'…자연어 소통으로 서로 업무 연결
이러한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의 핵심은 대형 언어모델(LLM)이다. LLM은 정보를 처리할 뿐 아니라, AI 에이전트가 사람처럼 소통할 수 있게 한다. 이는 기존의 정형화된 명령어 기반 통신 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접근이다.
연구진은 "과거에는 각각의 AI 에이전트간 인터페이스는 표준화된 프로토콜과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로 설계됐다. 이는 기본적인 정보 교환과 정형 데이터 처리에는 유용했지만, 의료 데이터의 복잡성과 의사결정 과정을 다루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진은 "LLM의 자연어 처리 기능을 활용하면, AI 에이전트 간에 사람 언어를 사용하는 상호작용이 가능해지고, 서로의 업무를 연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뿐 아니라 LLM 기반의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은 확장과 유지관리 등에도 유리하다.
연구진은 "새로운 AI 에이전트가 개발되거나 기존 AI 에이전트가 업데이트되더라도, 복잡한 API나 프로토콜의 재설계 없이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 네트워크에 통합할 수 있다. 이러한 확장성은 의료 AI, 특히 상업적 제품의 확산에 있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러 AI 에이전트가 연쇄구조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AI 에이전트에서 오류가 발생할 경우, 전체 시스템에 전파되는 리스크도 존재한다.
이에 연구진은 "전담 품질 보증(QA) 에이전트를 다양한 수준에서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 구조에 포함할 수 있다"며 "완전한 자율성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인간 개입 또는 인간 감독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밀화하고 개인화된 환자 맞춤형 의료, AI 팀워크로 구현"
연구진은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이 단순한 기술 고도화를 넘어, 정밀하고 개인화된 환자 중심 의료를 구현할 수 있는 차세대 의료 인프라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다양한 AI 에이전트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면, 의료진이 직면한 진료 결정의 부담은 줄이고 환자 개개인의 상태에 맞춘 세밀한 의사결정을 가능케 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의 집단 지성이 궁극적으로 개인화되고 정밀하며 선제적인 의료를 민주화하는 분산형 의료 형태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며 "의료 워크플로우가 간소화되고, 방대한 데이터 속에 숨어 있는 패턴이 가시화되며, 의료진이 중요한 정보로 보강되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결국 의료의 정합성, 지속 가능성, 환자 만족도 향상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연구진은 AI의 역할이 확장되더라도 의사의 전문성은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구진은 "복잡한 사례, 희귀 질환, 정교한 임상 판단이 필요한 상황은 여전히 인간 의사의 전문성이 요구된다"며 "의사는 모든 임상 AI 워크플로우를 감독하고 검증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이며, 이는 지속적인 안전성과 근거 기반 실천과의 정렬을 위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이 임상 현장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의료진이 AI 시스템을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AI 관련 교육을 전문의 자격시험 등에 반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