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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태 전 대한의학회장 "전공의 돌아와도 필수의료는 사망…미안하고 미안"

    저수가 속 전공의 막노동에 의존한 대형병원 줄도산 가능성…"정부 구체적 예산안 없는 '정치적 약속' 못 믿어"

    기사입력시간 2024-03-07 10:58
    최종업데이트 2024-03-07 11:26

    정지태 전 대한의학회장.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정지태 전 대한의학회장이 “전공의가 돌아오더라도 제자리로 돌아올 것 같지는 않다”며 “의업에 40년을 종사한 사람으로 모두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고 했다.
     
    정 전 회장은 7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그간 국내 대형병원들의 운영 방식과 사직한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는 이유에 대해 언급하며 필수의료 붕괴와 대형병원들의 도산 가능성을 시사했다. 선배 의사로서 지금의 사태를 막지 못한 데 대해 후배 의사들과 국민들에게도 사과했다.
     
    정 전 회장은 먼저 국내 대형병원들의 병상수가 세계 최고의 병원들로 꼽히는 메이요클리닉, 존스홉킨스 등 보다 훨씬 많지만 해당 병원들과 달리 전공의와 비정규직 의사의 비율이 높다는 점을 짚었다.
     
    그는 이에 대해 “나쁘게 표현하면 대한민국의 대형병원은 싸구려 의료수가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많은 수의 환자를 입원시켜, 싸구려 노동자인 전공의와 전임의를 피교육자란 신분을 이용해 혹사시켰다”며 “이것도 부족해 불법 의료인력인 PA(진료보조인력)를 다수 고용해 부족한 의료인력을 메꾸고 인건비를 낮춰 경영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대형병원 인력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전공의가 자리를 떴고, 절묘한 시기를 택해 의대증원을 발표한 정부의 혜안으로 전혀 불법적이지 않게 전임의가 사직을 하고 신규 전문의가 전임의로 들어오지 않고, 임상강사가 자리를 옳긴다”고 했다.
     
    정 전 회장은 남은 교수들만으로는 병원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병동 축소, 직원 무급 휴가, 불법 의료인력 활용 등이 이뤄지겠지만 근본적 대책은 될 수 없다고 봤다.
     
    그는 이와 관련해 정부가 이번 기회에 전문의 중심 병원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데 대해서는 "전문의 채용에 필요한 구체적 예산안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는 이유도 정부의 공언이 ‘정치적 약속’에 불과해 보이기 때문이란 점을 꼬집었다. 곪을대로 곪은 문제를 터질 때까지 그대로 두고 있던 선배 의사들에 대한 불만도 있을 거라며 후배 의사들에게 사죄하기도 했다.
     
    그는 “전문의 중심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전공의는 많은 시간 교육에 전념하도록 하는 데 필요한 것은 열정, 소명의식이 아니다. 전공의 교육비는 정부가 대겠다는 의지, 의료수가를 대폭 올리겠다는 예산안 이런 게 필요하다”며 “정치적 약속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했다.
     
    이어 “전공의들은 여태까지 해오던 선배들의 행태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선배들은 여론에 동조해 의사는 환자의 곁을 떠나면 안 된다는 원론적 얘기나 하고 있다. 우리 나이 먹은 의사들은 국민과 후배 의사들을 향해 일이 이렇게 된 책임에 대해 사죄하고 또 사죄해야 한다. 예방할 수 있었고, 차근 차근 개선할 수도 있었던 문제를 미루고 미루다 벼랑 끝에 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정부가 온 힘을 다해 압박하면 (전공의가) 돌아오기는 하겠지만, 제자리로 돌아올 것 같지는 않다. 필수의료는 그대로 죽고, 응급실 뺑뺑이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하늘을 향해 늠름한 자태를 자랑하던 막노동의 현장이 경영의 어려움을 겪고, 그런데도 이런 사태가 지속되면 벚꽃이 지는 시기와 반대로 대형병원들이 도산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