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용익 이사장이 바라보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미래 과제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의사들 스스로 나서서 의료전문주의를 구축하고 의료제도를 이끌어나가는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25일 열린 한국보건의료포럼(KH포럼) 창립총회 특강에서 ①엄격한 의사면허 자율규제, 의료전문주의 ②의사와 환자 불신 초래하는 행위별 수가제, 비급여 문제 ③3차 병원 중심, 지나치게 많은 의원 ④병원 전문의수 부족 ⑤의료비 증가에 따른 비용 절감 대책 ⑥의사들 스스로 급여기준 등 내부 합의 등의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①엄격한 의사면허 자율규제, 의료전문주의
우선 김 이사장은 의사와 환자의 신뢰관계 회복을 위해 의사들의 의료전문주의(medical professionalism)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한국의 의사와 환자 관계는 매우 좋지 않은 편이다”라며 “서양의학 전통에선 수술같은 것은 의사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외과의사의 기원은 이발사였다. 서양에선 병원은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는 개념이 있었고 의사들은 대부분 왕진을 다녔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특히 서양에선 의사들이 자율규제에 대해 아주 엄격한 집단이다. 서양 의사들은 의사면허를 박탈하도록 하는 것을 무서워한다”라며 “국가가 의사면허를 주고 의사들은 의협 스스로 자율 규제를 강화하면서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 과정에서 전통이 형성된 것”이라고 했다.
김 이사장은 “의사들의 의료전문주의 형성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무상의료다. 사회보험 제도로 의사들의 질병관리에 대한 국제적인 지위가 향상되고 19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동안 의료전문가로 자리잡았다”라며 “한국 의사들은 기본적으로 사이언티스트지만, 과학적 의료에서가 아닌 의료윤리와 의료전문주의에 대해서는 깊이있게 수용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②의사와 환자 불신 초래하는 행위별 수가제, 비급여
그는 행위별 수가제와 비급여도 의사와 환자와의 불신을 초래해야 하는 요인이라고 해석했다.
김 이사장은 “진료비를 조금 받고 건강보험으로 부담이 줄어들더라도 의사와 환자의 불신 관계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라며 “행위별 수가제의 단점으로 의료기관간 서로 경쟁을 하고 의사와 환자의 불신이 초래된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행위별 수가제는 결정적으로 의사와 정부간 불신을 극대화한다. 가령 어떤 약은 2번까지만 쓸 수 있고 그 이상은 허용되지 않는다”라며 “국가가 의료행위에 깊숙히 관여한다. 건강보험 적용 항목이 많으면 많을수록 관여하는 정도가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맹장염은 총액으로 포괄수가제(DRG)로 수가를 책정했고 그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행위를 할 수 있다”라며 “DRG도 기본적으로 행위별 수가제지만 묶음(번들링)으로 가는 것이다. 묶음을 크게 설정한다면 그만큼 (행위별수가제가 아니더라도)충분한 치료가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③3차 병원 중심, 지나치게 많은 의원
김 이사장은 우리나라에 3차병원이 매우 많은 대신 지역거점병원이 될만한 300병상 이상 병원은 그리 많지 않다는 문제를 언급했다.
김 이사장은 “병원이 의원의 기능을 하며 3차 병원 중에서도 빅5병원만 팽창하고 있다”라며 “특히 요양병원 설립할 때 자본이 작게 들어가면서 병원을 세울 수 있어서 사무장병원을 만들 수 있는 제도적 허점이 되고 있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우리나라의 의원은 특별하게 많다. 서양에서 의원을 찾으려면 동네에 하나 있을까 말까인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라며 “의료기관간 서로 의뢰를 하거나 협조를 하는 의료전달체계가 성립되지 않아 의료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개원한 의사들이 전부 독자생존을 하려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로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의료생태계 기능이 갖춰지지 않다보니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 비용이 많이 든다”라며 “서양의 의원들은 하나만 있으면 검사는 병원에 가서 받도록 하는 식이고 장비를 별도로 사지 않는다. 한국의 병원들도 의원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④병원 전문의수 부족
김 이사장은 OECD 평균 병상수는 세계에서 2위지만 의사 숫자는 꼴등이라는 수치를 지목했다. 특히 의사들 스스로 문제를 고치지 않는다는 문제도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병상당 의사수를 보면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 보여진다”라며 “한국의 의사들을 보면 대부분 전문의가 개원을 하고 있고 병원은 기본적으로 전문의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만약 전문의가 대부분 병원에 있고 병원과 의사가 짝을 맞췄다면 한국에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형태의 의원이 많았을 것이다. 전문의가 다 의원에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렇게 많은 병상수를 가지고 있는데 의사수가 부족하다면 환자 안전이나 노동강도는 얼마나 셀 것인가. 의사당 환자를 보는 숫자, 간호사당 환자를 보는 숫자를 상상하면 환자 안전과 의료질은 담보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라고 비판했다.
⑤의료비 증가에 따른 비용 절감 대책
김 이사장은 향후 전망에 대해 의료비는 크게 수요가 늘어날 것이며, 이에 대한 비용 절감도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 이사장은 “인구학적 변동이 있고 소득의 변동으로 의료비는 늘어날 것이다. 다음으로 비용 증가 요인은 신기술과 고가약이 있다. 심지어 한번 투약에 25억짜리 치료제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2019년 기준 국민 의료비는 전체 157조원을 쓰고 있으며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8.2%에 해당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8.8%에 비해서는 다소 못미치지만, 의료비 증가폭이 커지다가 코로나로 2년째 증가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 2020년 기준 건강보험 진료비는 87조원이며, 비급여가 포함되지 않은 공단 부담금은 75.3%인 65조5000억원이다.
김 이사장은 “의료비 증가에 대해 진료비 지불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답이 나온다. 당장은 진료기준이나 급여기준을 바꾸고 단가조정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의사들이 경계하는데 비용 절감을 위한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했다.
우선 국민들을 건강하게 만들어서 의료수요가 적어지게끔 해야 할 것으로 내다봤다. 음주, 흡연, 운동 등을 건강한 행태를 위해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 인센티브, 건강생활 지원금 제도 등의 필요성도 주문했다.
김 이사장은 “올바른 의료예방을 통해 과다이용을 억제해야 한다. 환자 스스로 과학적인 셀프케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지역사회 건강관리, 연명의료 등도 필요하다. 의료기기나 약에 대한 국산화를 통해 의료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⑥의사들 스스로 급여기준 등 내부 합의
특히 그는 의사들 스스로 급여기준 등 다양한 의료 이슈에 대한 내부 합의부터 이룰 것을 주문했다.
김 이사장은 "보건의료 전문직은 한국 의료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 요인이다. 보건의료전문직 특히 의사들이 한국의 의료전문주의를 제대로 구축하고 의료제도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주체가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이사장은 “우선 의사들이 필요로 하는 의료행위를 정부가 가로막는 것이 타당한지 생각해야 한다. 의사들도 복지부, 심평원, 건보공단 등 관료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의사들끼리, 전문과목별로 자체적으로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김 이사장은 “의사들이 언제까지 과잉진료나 비급여에 연연하고 살 수만은 없다. 그렇게 되면 의사와 환자관계는 불신이 쌓일 수밖에 없고 여기에 대한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라며 “진료과간 영역 다툼이나 전문의 수 문제 등도 한국의 의사들이 주체적으로 제대로 나서지 않으면 이런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민간 자본으로 지어진 병원이 진료에 대해 개입하는 것이 굉장히 일상화돼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의사들 스스로 나름의 역할을 하고 강요를 하면 한국의 의료전문주의로 이를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