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키워드 순위

    메디게이트 뉴스

    "제약회사 의학부, 의사로서 환자의 건강을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은 동일하다"

    [의대생 인턴기자의 선배의사 인터뷰] 정형진 바이엘코리아 메디컬디렉터 "데이터+전문가 소통 역할 커질 것"

    기사입력시간 2022-01-27 06:28
    최종업데이트 2022-01-31 12:00

    정형진 바이엘코리아 메디컬디렉터는 "제약회사에 일하는 의사 역시 의사로서 환자의 건강을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why)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메디게이트뉴스 이동재 인턴기자 경희의대 예1] 코로나19로 국내외 제약회사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과연 어느 회사에서 변이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할 것인지, 혹은 어느 회사에서 경구 치료제를 만들어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인지 등 이미 우리의 삶 속에서 제약회사는 익숙한 존재다.

    신약 개발에서 필요한 방대한 의학 지식을 제대로 이해하며, 의료계 전문가들과 직접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의약학 전문가들의 수요가 많아졌다. 동시에 이 분야에 진출하는 의사들의 숫자도 늘었다. 
      
    글로벌 제약회사 바이엘코리아에서 메디컬 디렉터(의학부 부서장)를 맡고 있는 정형진 가정의학과 전문의와 함께 온라인 인터뷰를 통해 제약회사 의학부 내에서 의사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다양한 일을 하고 싶은 후배 의사·의대생들을 위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지난 1년 6개월간 제약회사 의학부에 대한 칼럼을 연재해온 주인공이다.   

    의학부, 전문 지식 바탕으로 이해당사자들에게 학술적인 정보·교육 제공 

    -처음에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임상의사 진로를 그만두고 제약업계에 입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전공을 선택할 때 다양한 의학 영역에 관심이 많아 가정의학과를 선택했다. 전공의를 하면서 의사로서 다른 역할에도 관심이 생겼다. 당시 의사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보험회사, 신문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할 수 있었는데 그나마 제약회사에 기회가 많았다. 제약회사에서 의학자문역으로 메디컬 어드바이저를 채용하기 시작했다. 당시 메디게이트 채용 게시판을 통해 제약회사로 입문했으니 메디게이트와 인연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가정의학과 진로를 선택한 것이 다른 진료과에 비해 이점이 있었나.

    일단 무슨 과를 전공하든지 제약회사에서 일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의학부에 국한해 말을 하자면 주로 내과 계열에서 약을 이용한 치료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외과보다는 내과 계열에서 수련을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외과 계열을 전공으로 하더라도 딱히 크게 불리한 것은 없다. 

    우선 가정의학과 전공을 하면 어떤 질환 영역을 맡아 업무를 진행하더라도 잘 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가정의학이 한 분야로 깊이 있게 들어가는 학문이 아니라서 전문적이지 않다는 단점은 존재한다. 따라서 종종 해당 전공을 한 의사에게 질문을 할 때도 많았다.

    또한 가정의학과 수련 과정이 적응력이나 대인관계의 측면에서 도움이 됐다. 가정의학은 다른 진료과 로테이션을 많이 도는데, 짧은 시간동안 그 과에서의 노하우를 배우고 익혀야 한다. 이 과정 속에서 유연하게 상황 적응력을 기를 수 있었다. 

    -제약회사에서 의사가 할 수 있는 업무가 의학부 내에서 ‘학술교류팀, 의학정보팀, 임상연구, 약물감시, 거버넌스’로 나눠져있다고 칼럼에서 소개했다. 이 중 제약회사에 들어가고 싶은 의사의 성향이나 특징에 따라서 잘 맞는 분야가 따로 있을까.

    일단 다양한 영역에 호기심과 변화에 대한 도전정신이 중요하다. 의대 6년, 인턴 1년, 전공의 3~4년 최소 10년 이상 의학을 공부하다가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인생의 큰 도전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본인이 관심사나 재능에 따라 방향을 정하면 된다. 글을 잘 쓰면 기자에 도전하고, 법에 관심있으면 로스쿨에 가고, 의료 정책에 관심이 많으면 정부기관에 가고, 신약개발이나 약에 관심이 많으면 제약회사로 가면 된다. 

    제약회사에서는 신약개발을 위한 R&D, 학술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의학부, 비즈니스 전략과 수행을 위한 사업부 등 다양한 분야가 있으므로 일단 입사 후 적응하면서 자신의 적성을 탐색해봐야 할 것이다. 나도 그랬고 의사라면 보통은 의학부에서 시작한다. 참고로 의학부의 역할은 “의∙약학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회사의 내∙외부 이해당사자들에게 학술적인 정보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과 사전에 갖춰야 하는 능력은 무엇인가. 

    일단 의사로서 환자의 건강을 위해 일한다는 사명감(why)은 동일하다. 환자를 위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직접 환자를 진료하면서 치료할 수도 있고, 환자를 위해 신약을 개발할 수도 있고, 보건의료정책이나 법에 관여할 수도 있고, 올바른 의학정보를 일반대중에게 전달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의사로서 개인의 비전(what)을 설정하는 것이고,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how)을 찾는 것이다.

    만약 본인의 비전이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것이라면 영어, 통계, 역학 지식이 있으면 도움이 된다.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장점은 신약개발을 통해 전 세계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올바른 의약품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의사들의 의사결정(informed decision)을 도와주고 결국 환자에게 의약품으로 인한 혜택을 극대화할 수 있다.

    -제약회사에서 의사로서 역량을 가장 잘 드러냈던 경험을 알려줄 수 있나.

    제약회사에서 어떤 약을 개발할 때 맨 처음 출발은 '환자'다. 어떻게 더 환자의 건강을 극대화할 수 있을지와 같은 고민이 선행된다. 따라서 임상의사로서의 경험이 환자 관점과 의사 관점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자산이 됐다. 또한 지금 학술 커뮤니케이션 부서에서 일하는데, 의사들이 제약회사에 바라는 니즈(needs)를 의사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장점도 있다. 

    -현재 제약업계에서 코로나19 백신 개발 이외의 가장 큰 장기적인 화두가 무엇인가. 또한 최근 다양한 IT 기술로 미뤄봤을 때 장기적으로 제약산업이 어떻게 변화할 것이라고 예상하는가. 

    제약산업은 R&D가 핵심인데 의학적 미충족 수요가 높은 암, 뇌신경질환, 희귀질환 영역에 집중하면서 바이오마커나 유전자 기반의 맞춤의학 또는 정밀의학의 시대로 갈 것이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퇴행성 질환도 줄기세포 등을 활용해 치료가 가능하다. 방법론적으로는 IT 발전과 데이터의 개방성으로 빅데이터를 활용해 신약개발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요즘 엄청난 화두인 메타버스처럼 임상시험도 비대면으로 진행하면 환자들이 쉽게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약이 갖는 데이터(정보)량 자체가 많아지면서 그 정보를 이해하고 해석해 보건의료전문가와 소통하는 의학부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물론 임상 환경과 환자의 미충족 수요를 잘 이해하고 있는 의사의 역할 또한 커질 것이다.

    -현재 IT공룡 기업들이 기존 제약 기업들의 영역이었던 분야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과연 그 기업들이 제대로 안착할 수 있을지, 또한 기존 제약기업의 대응방안이 있나. 

    제약산업은 고도의 경험과 전문성 및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고, 고위험 산업이므로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산업이다. 우리나라에도 제약회사가 500개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회사는 손에 꼽는다. 신약개발은 임상시험이 핵심인데 임상시험은 시간, 비용 및 퀄리티의 싸움이다. 아무리 빅테크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쉽사리 제약산업에 진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강점인 빅데이터나 알고리즘만으로 임상시험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쉽게 안착하기는 어렵겠지만, 후보물질을 스크리닝하거나 임상시험을 설계하거나 데이터를 분석하는 측면에서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 분석력과 기존 제약기업의 전문성과 노하우를 접목하는 윈윈전략이 필요하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다른 업무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비임상 영역 

    -비임상 진로를 선택한 의사들이 대부분 명확한 로드맵을 구상하고 있지 않은 이상 전문의까지는 수료를 한 후 진출하라고 한다. 게다가 웬만하면 의사를 선택하는 게 훨씬 안정적이고 수입도 더 많다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임상 진로의 길을 가는 것의 장점, 혹은 임상의사로만 활동했다면 얻지 못했을 경험이 있을까. 

    나는 가정의학과 전임의 1년을 마치고 제약회사로 왔다. 비임상으로 왔다가 후회하지 않도록 일단 최대한 임상 필드에서 일하는 게 좋다. 비임상도 진료를 안 하는 것일 뿐, 결국 의사로서 확장된 일을 하므로 무엇을 하든 임상 경험이 중요하다. 자신이 비임상으로 방향이 확고하더라도 일단 전문의를 마치는 것을 추천한다. 어떤 일을 하던 환자가 궁극적인 목표이므로 환자를 직접 보고 치료했던 경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비임상에서 얻을 수 있는 핵심은 인간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의사로서 해당 영역에서 계속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 수직적인 성장이라면, 비임상에서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다른 업무를, 다른 사람들과 하게 되므로 360도 성장이 가능하다. 병원은 의사 주도에 의해 운영되는 조직이지만 비임상 영역에서는 의사도 하나의 구성원일 뿐이다. 다른 전문가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또 다른 지식과 경험을 습득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 및 협력을 배우게 된다.

    -임상의사로 활동하면서도 기업에 자문을 하는 등 두 가지 활동을 하고 싶은 의대생들이 있다.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주로 어떤 방식으로 활동을 하는지 궁금하다. 만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외국에서는 임상의사로 진료도 하고 비임상 영역에서 자문 역할도 동시에 하지만 한국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회사에서는 보통 풀(full) 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의사를 원하고, 이해상충이나 회사 기밀유지 등 문제로 회사 이외 다른 업무를 보통 허용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가끔 특정 분야에 자문이 필요할 때 대학병원 교수들에게 의뢰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안별로 단회성인 경우가 많다.

    -의료경영학 석사 과정을 이수했다고 들었는데, 어떤 이유에서 선택했나.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려면 경영학 공부는 꼭 필요한가. 

    전공의 때부터 제약회사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의학대학원을 가지 않고 의료경영대학원을 다녔다. 그때는 제약회사로 가려면 뭐가 필요한지 몰랐고, 경영대학원을 다니면 뭐라도 플러스가 될 것 같았다. 의료경영대학원은 주로 의료정책이나 병원경영과 관리 등을 배웠는데 사실 제약산업과 크게 연결되지는 않았으나 진료 이외에 식견을 넓히는데 도움이 됐다.

    회사의 임원이 되면 회사의 전반적인 경영에도 관여하므로 경영 공부가 도움이 되긴 하지만, 회사에 와서 공부해도 절대 늦지 않다. 회사를 다니면서 야간 대학원을 다니거나 단기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된다.

    -많은 의사들이 제약회사에 들어갔다가 그 회사의 문화와 업무방식과 맞지 않아서 다시 되돌아온다고 한다. 일반적인 임상의사 진로와 비교했을 때 어떻게 다른가. 

    많은 의사들이 제약회사로 오면 ‘편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당직, 수직적인 위계질서, 주말근무도 없다. 하지만 제약회사가 절대 편한 곳은 아니고, 업무 강도나 스트레스는 더 높다. 그래서 단순히 워라밸이나 해외출장 같은 피상적인 것만 생각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앞서 언급했듯이 의사도 한 명의 직원이므로 동료들이 의사로서 존중은 하지만 의사이기 때문에 대우하지는 않는다. 회사에서는 의사 면허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직원의 역할과 성과만으로 평가하는 만큼 그 역할을 의사가 아닌 다른 전문가가 할 수 있다면 굳이 의사를 채용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제약회사에 오더라도 본인의 전문성을 계속 갈고 닦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비임상 진로를 원하는 의대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 부탁드린다. 

    의대생이라면 의학공부를 잘 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요즘은 부캐 시대인데, 명확한 본캐 없이 부캐가 있을 수 없다. 그 이후에 시간이 된다면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고 다양한 책을 읽거나 여행을 하면서 견문을 넓히는 것을 추천한다. 또한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 하고 현실적인 이유로 의대에 진학했을 수 있으므로 의사가 되는 것이 정말 나의 적성에 맞는지, 나의 재능을 잘 살릴 수 있는지 고민해 봤으면 한다. 참고로 본인의 재능을 파악하려면 ‘강점혁명(strengths finder)’ 책을 읽고 설문을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본인을 더 잘 이해하거나 향후 레지던트 전공을 선택할 때, 향후 비임상 쪽으로 진출할 때 등 많은 상황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의 경우 의대 학생시절 방학 때 약리학교실에서 학생 조교로 근무한 경험이 있고, 전공의 때는 영어회화 레슨을 했고, 의료경영대학원을 다녔다. 학생때는 일단 본캐에 충실하면서 여러 관계를 맺고 사회의 다양한 현상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요즘에 나오는 각종 의료 정책들을 보면서 의사들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법이나 행정 쪽으로 많이 진출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