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254개의 보건소가 있다.
의사들의 입장에서 보건소는 병의원 행정처분권을 거머쥔 껄끄러운 존재다.
또 일부 의사들은 보건소가 환자를 뺏어가는 달갑지 않은 존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보건소 담장 밖에서 바라보는 그쪽 풍경과 실제 그들의 세계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10년 이상 보건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베테랑 의사들이 처한 현실과 생각을 소개한다.
[3편] 설 자리 없는 보건소장들
의사들의 입장에서 보건소는 병의원 행정처분권을 거머쥔 껄끄러운 존재다.
또 일부 의사들은 보건소가 환자를 뺏어가는 달갑지 않은 존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보건소 담장 밖에서 바라보는 그쪽 풍경과 실제 그들의 세계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10년 이상 보건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베테랑 의사들이 처한 현실과 생각을 소개한다.
[3편] 설 자리 없는 보건소장들
보건소장은 반드시 의사가 해야 할까?
지역보건법에 따르면 의사면허가 있는 사람 중에서 보건소장을 우선 임용해야 한다.
보건소의 주요 기능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 모성과 영유아, 질병 관리 등이어서 반드시 의사가 소장을 해야 한다는 게 의사단체의 입장이다.
현직 의사 보건소장들 역시 메르스 사태에서 확인됐듯이 의사가 감염병 예방 및 관리 등을 보다 전문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 보건소장 B씨는 "감염병이 발생하면 의사들은 임상적 경험을 토대로 판단하지만 비의사 출신들은 피상적인 매뉴얼대로만 움직일 수밖에 없다"면서 "그런 면에서 보면 의사가 보건소장을 하는 게 지역사회를 위해 바람직하다"고 환기시켰다.
또 민간의료와 공공의료간 상생 구조를 만들고, 공공의료 역할을 재정립하기 위해서도 의사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분야 중 하나가 보건소다.
실제 일부 보건소는 일반 환자 진료를 자제하고, 민간 의료기관을 이용하도록 안내하는 대신 지역의사회가 저소득층 환자 무료 수술 등과 같은 의료봉사에 나서는 방식으로 협력 관계를 만들고 있다.
의사들이 비정치적이다 보니 선거와 정치 바람을 덜타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그런데 실상 의사 보건소장은 대가 끊어질 상황에 처해 있다.
의사인 D씨는 "전국의 의사 보건소장은 대부분 1~2년 계약직으로 전환되고 있다"면서 "실적을 중시하는 공무원들은 계약직 보건소장에게 협조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마저도 버티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30년 이상 근무한 보건행정직, 간호사, 약사 등에게 의사 보건소장은 눈에 가시일 수도 있다.
정년퇴임하기 전에 보건소장을 하는 게 마지막 목표인데, 의사가 낙하산으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어떻게든 내보낼 명분을 잡기 위해 '먼지를 털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본청의 충성스러운 부하 직원을 4급으로 진급시키기 위해 4급 의사 보건소장직을 5급으로 낮추는 자치단체도 있다고 한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보건소에 근무하는 의사들이 모두 계약직으로 전환되고 있어 보건소장 대를 이을 의사 자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B씨는 "자치단체들이 보건소 진료실에서 일하는 의사들을 5년 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있다"면서 "이들은 다시 계약하면 5년 전에 받던 호봉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 어느 의사가 자존심을 구겨가면서 보건소에 남으려고 하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그는 "요즘에는 보건소 의무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중간에 다 그만 둔다"면서 "보건소장 인재를 키우고 싶어도 사람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서울시 보건소에서 정규직 의사 공고를 내면 임금이 낮더라도 경쟁율이 5대 1 이상 올라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보건복지통계연보에 따르면 보건소에 근무하는 정규 의무직은 2007년 119명에서 2013년 70명으로 대폭 감소한 반면 계약직은 같은 기간 207명에서 282명으로 급증했다.
의사 보건소장 역시 2006년 122명에서 2013년 101명으로 줄었다.
의사 보건소장을 채용한다고 해도 사고를 치고 중도에 사표를 내는 사례 역시 적지 않다보니 대를 잇기가 더 어렵다.
물을 흐리거나 자질이 부족한 보건소장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는 게 의사 보건소장들의 의견이다.
여기에다 연봉도 높지 않다보니 실력 있는 의사들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의사보건소장으로 20년 이상 근무한 C씨는 "내가 민간병원에서 세금 다 떼고 400만원 받다가 보건소에 들어오니 78만원을 주더라"면서 "지금도 봉직의 연봉의 절반도 안될 것"이라고 전했다.
의사 보건소장은 갈수록 줄고, 자리가 있더라도 능력이 검증된 의사를 찾기 어려운 반면 비의사 공무원들은 조직력 우위를 앞세워 자리를 잠식해가고 있다.
C씨는 이런 상황이 답답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의사단체도 그렇고 일반 의사들도 그렇고, 이런 사정도 모르면서 무조건 의사가 보건소장을 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의사들이 전문성을 펼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지켜야 하고, 뭐가 부족한지 반성해야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보건소는 의사들의 공공의 적이 아니다"
그는 보건소 밖에 있는 의사들에게 4가지를 주문했다.
비의사가 차지한 보건소장을 의사직으로 바꾸는 건 생각보다 어렵고, 이는 자치단체장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는 "의사협회와 지역의사회는 자치단체장이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선거철이든 아니든 왜 의사를 뽑는 게 이익이 되는지 지속적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하나 공공의료적 인재 양성이다.
그는 "겨우 낙하산으로 의사 보건소장을 뽑았더니 개판을 치면 그걸로 끝장"이라면서 "의사단체에서 의사들이 공직에 많이 진출하도록 유도하고,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건소에 의사들이 관심을 가지기 위해서는 처우개선도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제발 보건소가 병의원의 밥그릇을 뺏어먹는다는 라이벌 의식을 갖거나 적으로 생각하지 말아 달라"면서 "의사 보건소장치고 민간과 경쟁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