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을 활용한 차세대 보안 솔루션이 사회적으로 각광받으면서, 헬스케어 분야에서도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통해 혁신을 꿈꾸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아직 기대감만 있을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사례가 없는 가운데, 헬스케어에 블록체인을 적용하기까지 10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분당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정세영 교수는 1일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2018 KoNECT-MFDS 국제 컨퍼런스에서 '헬스케어 블록체인'을 주제로 발표했다. 정 교수는 클라우드 기반 병원정보시스템, 집단기반 건강관리(PHM), 블록체인 기반 의료정보 공유 등에 대한 병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헬스케어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 개인건강기록(PHR)에 대한 정부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다. 이번 발표에서는 헬스케어 분야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성공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인지 조명했다.
블록체인은 '블록(Block)'에 데이터를 담아 시간 순으로 '연결(Chain)', 즉 여러 대의 컴퓨터에 동시에 이를 복제해 저장하는 분산형 데이터 저장 기술이다. 블록기술이 사용된 가장 성공한 사례로는 1세대 가상화폐인 비트코인(Bitcoin)이 꼽힌다.
정 교수는 "가장 먼저 이해해야할 것은 블록체인이 정보보안에 관련된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없다는 점이다"고 설명했다. 정보보안의 3원칙인 기밀성(Confidentiality)과 무결성(Integrity), 가용성(Availbility) 가운데 블록체인이 해결해주는 것은 '무결성' 하나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생각해야할 점은 무결성을 확인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정 교수는 "비트코인은 10분에 한 번씩 무결성을 확인한다. 이더리움(Ethereum)과 같은 2세대 블록체인에서 이슈가 되는 것도 속도, 즉 무결성을 확인하는데 시간을 얼마나 소요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면서 "병원 현장에서 사용하는 데이터는 즉시 정보 유효성을 확인해야 하는데, 비트코인과 같은 방식은 효율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무결성 확인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정 교수는 "비트코인은 합의 방식으로 작업증명방식(Proof of Work)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는 작업증명 속도에 있어 항상 문제가 있다"면서 "최근 지분증명방식(Proof of Stake)이나 위임지분증명방식(Delegated Proof of Stake)도 나오고 있다. 이는 블록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검증 권한을 주는 것이다"고 했다.
정 교수는 "이러한 것들을 고려했을 때 헬스케어 분야에서 블록체인만 도입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평했다. 하지만 기술 파괴력이 높은 만큼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헬스케어 관련 프로젝트들이 시도되고 있다고 했다.
정 교수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로 ▲헬스케어 데이터 인프라 ▲개인건강기록 관리 ▲헬스케어 분석 ▲의료기기 및 사물인터넷 보안 ▲환자 신분 확인 ▲의약품 등 공급망 관리 ▲디지털 의료 및 보건전달체계 ▲자문 등을 꼽았다.
정 교수는 "환자의 증명과 관련된 그룹은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와 협업해 환자의 ID 변조 없이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고, 비트마크(Bitmark)는 환자에게 데이터 트랜잭션(transaction) 권한을 준 다음 기업이 임상시험 참여 환자를 모집하거나 데이터를 이용할 때 환자가 데이터 트랜잭션을 일으킬 수 있는 플랫폼을 구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 예로는 교보생명의 실손 의료험금 자동청구 연구가 있다.
정 교수는 "이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고객이 요청만 하면 바로 병원에서 보험사로 정보를 전송하는 시스템으로, 환자 입상에서는 편리하고 보험사 입장에서는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메디블록이 시도하고 있는 탈중화 의료정보 통합 시스템도 있다.
그러나 정 교수는 "환자에게 블록체인 기반 개인건강기록 서비스를 통해 데이터를 제공했을 때 인센티브가 있다는 것을 깨우치게 하는 것, 데이터에 대한 오너십 자각을 일으키는 것은 중요하지만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꿈같은 일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서울아산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을 주축으로 정보기록 확산사업을 하고 있는데, 표준문서양식을 만들고 시범사업을 하는데만 10년 이상이 걸렸다. 여기에 담을 수 있는 의료기룍의 양도 상당히 제한적이고, 모든 데이터를 블록체인으로 트랜잭션하는 것도 아직 먼 일이다"고 덧붙였다.
미국 하버드의대 조지 처치(George Church) 교수가 공동 설립한 미국 스타트업 네불라 지노믹스(Nebula Genomics)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DNA 정보를 공유하는 서비스를 구상하고 있다. [관련기사=블록체인과 유전체 분석 기업의 만남]
정 교수는 "네뷸라는 개인의 표현형(phenotype) 정보를 하나의 플랫폼에 모아 환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면, 환자를 중심으로 모든 데이터가 통합될 수 있지 않을까 꿈꾸고 있다"면서 "환자는 제공하기로 동의한 데이터가 어느 기관에 어느 정도로 흘러갔는지 언제든지 모니터링 가능하고, 제공한 데이터나 횟수에 따라 코인을 제공받을 수 있다. 기업은 광고를 통해 환자를 모집할 필요도 없고, 회사가 직접 시퀀싱(sequencing)하지 않아도 된다"고 장점을 소개했다.
하지만 반대급부도 존재한다. 정 교수는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다"면서 "병원만 하더라도 데이터를 가공 및 보관하는데 병원의 노력이 들어간만큼 데이터가 환자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시퀀싱 비용에 기여한 것이 잇다면 이를 환자에게 무상으로 제공할 이유가 없다. 코인 경제 하에서 누가 처음에 펀딩하고 이를 선순환적으로 이해당사자에게 최적의 양으로 흘러갈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블록체인 기술은 지금과 같은 임상시험 행태를 획기적으로 바꿀 것이라 기대되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빅데이터가 수집되고 생태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면 여러 데이터를 통합하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트레이닝해 이를 이용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헬스케어 블록체인은 아직 갈 길이 멀고, 실제 현장에서 보더라도 프로젝트 회의를 할 때마다 생각이 바뀐다. 너무 실험적이고 당장 구현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환자에게 본인의 데이터가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대학병원마다 앱이 있어 검사결과 등 정보를 다 확인할 수 있지만 환자들이 사용하지 않는다. 조회성 앱이기 때문에 별 효용이 없기 때문이다"면서 "그런데 데이터들이 잘 통합돼 어떤 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 여기서 어떤 가치가 발생할 수 있다, 특정 기업에 공유했을 때 경제적 보상을 얻을 수 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약이 개발돼 환자를 살릴 수 있었다와 같은 성공스토리가 쌓인다면 데이터가 모였을 때 얼마나 파워풀한지 깨닫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모든 데이터를 기관에서 컨트롤하는 상황에서는 합의가 힘들기 때문에 환자 중심 플랫폼이 실현돼야 빅데이터 통합도 잘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