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사님, 저도 과연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바이오 강국으로 가는 통과의례일지, 더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 기본에 더 충실해야 하는 것인지...어떤 메시지를 산업계에 내보야 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헬릭스미스가 지난 9월 23일 당뇨병성 신경병증 유전자치료제 엔젠시스(VM202-DPN) 임상 3상 결과와 관련해 "피험약 혼용 가능성으로 플라시보와 엔젠시스의 효과가 크게 왜곡돼 명확한 결론 도출이 불가능하게 됐다"고 밝혔다. 임상진행 과정의 문제로 미국 3상을 마친 임상결과를 발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 바로 다음 날 어느 언론인이 보낸 카톡 메시지에 대한 필자의 답은 “Back to BASIC이 정답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였다.
이번 헬릭스미스의 뼈아픈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은 신약개발을 CRO에만 맡겨 두면 안된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느낀 것이지만 우리 개발자들은 CRO에 대한 의존성이 너무 높다. 예를 들어 GLP(Good Laboratory Practice, 비임상시험관리기준)는 의약품 등의 안전성을 평가하기 위해 실시하는 각 종 독성시험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직 및 인원, 시설 및 장비, 시험실시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규정이다. 적당한 가격의 GLP 전임상 기관을 선정하기만 하면 수탁기관에서 전임상 독성에 관한 모든 답이 긍정적으로 나올 것으로 잘못 생각한다.
“그렇게 맡겨 놓아서 다 될 거면 차라리 CRO가 가장 신약개발을 잘할 수 있지...”라고 농담조로 다른 분들과 말을 나눈다. CRO가 할 수 있는 것과 스폰서(Sponsor)가 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 CRO는 스폰서가 이렇게 이렇게 해주세요를 따라갈 뿐이다. 그리고 스폰서는 CRO가 제대로 진행하고 있는지 계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잔소리가 아니라 서로의 계속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전임상을 지나 임상 단계에서도 당연히 마찬가지이다. CRO와 스폰서의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 임상약의 공급은 스폰서가 하는 것이고 임상약을 환자에게 투약하는 것은 CRO가 하는 일이다. 따로 분리된 일이지만 결국 같이 임상약을 환자에게 투여하는 것이다. 헬릭스미스는 "위약군 환자 일부의 혈액에서 엔젠시스가 검출됐고 엔젠시스군 일부 환자에서 약물 농도가 지나치게 낮은 것을 발견했다"면서 "이는 데이터 혼용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현재의 데이터만으로는 혼용 피험자에 대한 정확한 확인이 불가능해 별도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무슨 설명인가? 어떤 일이 벌어졌나? 임상약의 공급은 스폰서가 하는 것인데 일부 약의 레이블이 잘못되었거나 임상약을 환자에게 주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드는 질문은 이런 잘못된 케이스가 몇 명이나 되는 것일까? 전체 환자의 몇 %가 이런 황당한 케이스인가? 헬릭스미스는 Clinical QA 전문가인 레너드 피쉬(Leonard Fish) 박사를 단장으로 하는 조사단을 구성해 정밀 조사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추후 법적 조치 가능성을 고려해 증거 수집과 정밀 분석을 거쳐 명확한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이번 조사는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다.
추후 법적 조치 가능성을 고려한다고 언급했는데 어떤 결과로든지 CRO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얼마나 승산이 있을까? 계약서를 작성하고 CRO를 쓸 때 정말 상대방에게 쉽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우리가 개발하고자 하는 치료 영역(Therapeutic Area)의 약을 개발하고 임상을 경험한 스폰서 사이드 MD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고 그가 지휘하는 철저한 CRO 모니터링(monitoring)도 매우 중요하다.
헬릭스미스는 그런 조직을 임상 3상이 진행된 미국에서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어떻게 대처했는지도 궁금하다. CRO를 쓰지만 관리를 잘 하면서 활용해야 하는데, 헬릭스미스는 전적으로 CRO만 믿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지난 9월 6일 칼럼에서 글로벌3상에 성공한 SK바이오 예를 들었는데 그들은 미국에서 3상 진행 중에 미국 지사에 미국인 의사도 고용했고 한국에서 3상 진행하듯 follow-up 했다고 한다. 그게 경험의 차이인 것 같다.
결국 임상 종료 후 맨 마지막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질문과 실사에 답변하고 대응해야 하는 것은 스폰서가 하는 것이다. CRO가 옆에서 대신 답해주지 않는다. 그러기에 실패라도 스폰서가 모든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헬릭스미스는 엔젠시스의 유효성과 관련해서는 모든 피험자를 분석 대상으로 하는 ITT(Intent-to-treat) 군에서 1차 평가지표인 3개월 통증감소 효과의 차이는 위약과 대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게 나왔지만, 오류 가능성이 높은 환자들을 제외한 분석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통증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우리 바이오제약사들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못 미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투명성(transparency)과 정직성(integrity)이다. 바이오 업계에 종사하는 연구-개발자들뿐만 아니라 투자자 등 금융 업계도 절박한 마음과 진솔한 태도가 필요하다. 거짓과 속임수가 사라지고 정직이 상식인 바이오 에코시스템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먼저 사람을 살리는 신약개발에 종사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일해야 한다. 돈을 벌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망가지게 되어 있다. 사람을 살리는 신약개발에 전념하다 보니 돈이 따라오더라 하는 경험들이 더 많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정직하고 일관적이고 책임감 있는 투명한 에코시스템으로 다시 태어나야 바이오가 산다.
최근의 한국 바이오 업계의 연이은 악재들이 코오롱, 신라젠, 핼릭스미스 등 개별 회사의 문제일까? 아니면 국내와 해외 언론에서는 한국 바이오를 싸잡아서 문제라고 보고 있는데 어느 것이 맞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개별 회사의 문제이지 한국 바이오 전체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개별 회사의 문제로 답이 나오자 세 회사의 공통점이 보인다. 세 회사는 교수님들이 시작한 회사라는 공통점이 보인다. 교수라는 직업의 특성상 조직 문화에 민감하지 못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 지금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라도 계속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바이오 스타트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제약사 경험이 많은 스타트업 CEO를 주목해보면 답이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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